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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들여 해안가 소나무 심었건만, 제 역할 못하네

강원도 해송 식재 현장 둘러보니... 산불에 연악침식 악화까지

등록|2024.11.18 10:07 수정|2024.11.18 10:07

▲ 해안가에 어린 해송 묘목을 식재한 삼척 맹방해변, 우측으로는 울창한 송림이 조성되어 있다(2024/11/15) ⓒ 진재중


강원도 동해안 해안가에 연안 재해 방지용으로 심어진 해송이 해안 침식과 산불 위험을 높이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고성, 양양, 동해, 삼척 등 동해안 주요 지역에서는 해안 방재를 목적으로 해송이 곳곳에 식재되고 있다.

해송은 바닷바람과 염분에 강한 바닷가 소나무로, 짧고 억센 잎과 흑갈색 껍질이 특징이다. 동해안 해안가 논과 밭 앞에는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해송이 식재된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기자는 강원도 곳곳의 해송 실태를 10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 현장 취재했다.

산에도 바닷가에도 '소나무'

한때 수려한 해변으로 유명했던 삼척시 맹방해변은 점점 과거의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해송과 염생식물들이 군락을 이루며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해변이었다. 그러나 최근 화력발전소 건설 이후 심각한 연안 침식 문제에 직면했다.

지난 15일 오후 찾아간 해안가. 어린 해송이 심어져 있고, 그 가운데엔 비스듬히 서 있는 수영 금지 팻말이 무기력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강원특별자치도가 2023년 맹방해변의 연안 침식을 막기 위해 약 1300그루의 해송을 심은 곳. 하지만 해안선에서 약 20m 떨어진 곳에 심어진 어린 해송들은 큰 파도가 칠 때마다 바닷물에 잠길 위험에 놓였다. 방문객 김광문(72)씨의 말이다.

"길 건너에 해송보호 군락지가 있는데, 왜 굳이 모래 해변에 소나무를 심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심었으면 관리를 잘해야지 모래 위에 버려둔 것 같아요. 공사로 인한 해안침식도 문제지만 보여주기식으로 식재된 해송이 더 큰 문제입니다."

▲ 해송이 식재된 곳에 소나무 보호와는 아무런 관계없는 수영금지 팻말만이 서있다(2024/11/15) ⓒ 진재중


고성 송지호 해변은 강원도가 연안 방재를 위해 해송을 심은 곳이다. 원래 이곳은 사구식물이 잘 자라 연안 침식과는 무관한 해변이었다. 지난 10월 25일 드론을 통해 하늘서 내려다 본 해안가 뒤편에는 건강하게 자라는 소나무와 해변 모래밭에서 뿌리내린 사구식물들이 보였다.

모래를 잡아주는 갯그령, 통보리사초, 좀보리사초 등 염생식물이 제거된 자리에 해송이 심어지면서 자연의 균형이 위협받고 있다. 해송 식재 지역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모래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지해야 하지만, 되레 인위적으로 차단막이 설치되면서 모래 이동이 방해받고 있다.

최광희 가톨릭관동대 지리교육학과 교수는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자연적인 모래 흐름은 해안 생태계의 중요한 요소로, 이를 방해하는 인위적 개입은 장기적으로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염생식물 복원을 포함한 생태 친화적 관리 방안 역시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 송지호와 해안가 사이에 인위적으로 소나무를 이식한 현장이 보인다(2024/10/25) ⓒ 진재중


▲ 사구식물 자생지를 파헤치고 소나무를 이식한 고성군 송지호 해변 현장(2024/10/25) ⓒ 진재중


10월 28일 찾은 양양군 현남면 포매호 앞 해변에서도 해송을 식재한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이곳도 사구식물이 자생하던 지역으로, 연안 침식이나 주변 농작물 피해가 없어 해송을 굳이 심을 이유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해송은 겉보기에는 수려하고 잘 자라지만, 해송이 연안 침식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광희 교수는 해안 침식에 미치는 영향을 지적하며 "해송이 빽빽하게 심어지면 바람이 바다에서 육지로 부는 것을 차단해 모래가 해안으로 공급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해안선과 나란히 불게 된 바람은 모래 이동을 막아 침식은 지속되지만 회복이 되지 않아 결국 해안선이 후퇴하게 된다는 것.

▲ 포매호와 갯마을 해변 해송 조성지(2024/10/28) ⓒ 진재중

▲ 염생식물 군락지에 소나무를 이식한 양양군 갯마을 해변(2024/10/28) ⓒ 진재중


왜 '탄소제로숲'이 해송인가

10월 28일 동해시 망상해변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넓고 고운 백사장과 오토캠핑장으로 많은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명소다. 그러나 해변에서 10m가량 떨어진 곳에 해양레저 시설이 있고, 바로 옆에는 해송이 심어져 있어 큰 파도가 칠 경우 시설과 해송이 바다에 잠길 위험이 있다.

입간판에는 "서울에너지공사 임직원이 조성한 탄소상생리본 숲은 탄소 배출 저감을 목표로 한 숲"이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다. "탄소를 흡수하고 해안방재 역할"을 한다는 내용도 함께 있었다.

동해시민 김진갑씨는 "해안 방재 역할을 하겠다고 해송을 식재했지만, 오히려 방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역효과를 내고 있다"면서 "이곳은 보기 드물게 염생식물이 잘 자라던 해변이었다"라고 주장했다.

많은 기업이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나무심기나 숲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환경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자임하고 있다. 그러나 활동이 실제로는 긍정적인 효과가 미미하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규송 강릉원주대 생물학과 교수는 "기업이 ESG 경영을 내세워 해안가에 해송을 심고 있지만 이것은 실제로 환경을 위한 것이 아니다. 겉으로만 친환경 이미지를 얻기 위한 활동"이라고 안타까워했다.

▲ 동해시 망상해변 해안가 모래바위에 조성된 소나무(2024/10/28) ⓒ 진재중


해송군락지해안가에 조성된 해송길은 시민들의 산책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 진재중


산불에도, 해안침식에도 '취약'

그런데 동해안 산불과 연안 침식 피해의 주 원인 중 하나로 소나무가 지목되고 있다. 동해안 지역의 숲을 이루는 주요 수종인 침엽수 소나무는 불에 쉽게 타는 송진을 갖고 있어 산불 위험을 높인다. 특히 소나무 솔방울은 바람을 타고 멀리 퍼지면서 불이 더욱 확산되기 쉽다.

해안가 해송 또한 문제로 꼽힌다. 해송의 뿌리 구조가 연안 침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해안식물들은 깊이 뻗은 뿌리로 지반을 단단히 고정해 침식을 방지한다. 반면 해송은 표면에 넓게 퍼지는 얕은 뿌리를 가지는데, 지반 깊숙이 뻗는 뿌리가 부족하다. 이로 인해 해송이 식재된 해안가에선 강한 바람과 파도가 몰아칠 때 모래가 쉽게 유실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해송이 빽빽하게 자라면, 사구식물 같은 해안 침식 방지 식물들이 자라기 어려워진다. 이로 인해 토양과 모래층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침식에 더욱 취약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해안침식이 크게 발생했던 해변들은 해송군락지가 있었던 곳이다.

▲ 군사도로 앞에 조성되었던 소나무는 바닷속으로 잠기고 더 큰 침식을 일으킨 강릉시 하시동. 안인해안사구 앞 ⓒ 진재중


▲ 뿌리채 뽑힌 소나무가 해안가에 넘어져있는 삼척시 원평해변 ⓒ 진재중


▲ 침식이 심각한 해변에 소나무가 뿌리채 뽑혀 쓰러져 있다. ⓒ 진재중


해안 개발로 인해 해안선 변화가 가속화한 것도 해송으로 인한 침식을 악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해송을 방풍림으로 심는 조경 방식이 오히려 파도·바람의 영향을 막는 데에 한계가 있으며, 이는 모래층 유실로 이어진다. 태풍과 폭풍 등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강력해진 자연재해 속에서 해송만으로 해안을 보호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김희석 반려식물연구원 박사는 15일 기자화의 통화에서 "해송이 방풍림 역할은 하지만 해안선 고정과 침식 방지에는 적합하지 않다"면서 "해안 특성에 맞는 사구식물이나 뿌리가 깊고 단단한 해안식물을 심어 모래층을 안정화하고 해안을 보호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해송 군락지강원특별자치도 동해안 바닷가를 따라 군락을 이루고 있다. ⓒ 진재중


심각한 해안가 침식현장에 해송이 있다

동해안에서 심각한 해안 침식지대로 알려진 삼척 원평해변과 강릉 안인해변은 과거 해송이 잘 자라던 곳이었다. 침식이 발생하기 전에는 바다 모래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했었다.

삼척 원평해변은 궁촌항 건설 이후 해안 침식이 발생하며 인근 해변인 원평해변까지 피해를 입었다. 원평해변은 해송 군락지로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였고,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야영에 적합했었다. 그러나 큰 파도를 견디지 못한 소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바닷속으로 잠기게 됐다.

▲ 연안침식이 심각했던 삼척시 근덕면 원평해변(2022년 촬영) ⓒ 진재중


삼변 원평해변소나무 숲사이로 나있던 레일바이크 철길이 무너지고 그 앞에있던 소나무는 쓰러져 바닷속으로 잠겼다(2022년 촬영). ⓒ 진재중


강릉 안인해변은 인공시설로 인해 사구지대가 깎이고 도로가 유실되는 피해를 입었다. 안인화력발전소 공사가 시작되면서 연안 침식이 발생했고, 강한 파도에 소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해안 사구를 보호하던 소나무는 결국 제 역할을 잃었고, 도로 유실이라는 큰 피해로 이어졌다.

아래 사진을 보면, 소나무가 있던 자리에 3~5m 높이의 절벽이 생겼고 도로까지 유실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안침식을 연구하는 장성렬 박사는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서 해안침식이 심각했던 지역은 대부분 해송군락지대였다"며 "삼척의 원평해변과 안인해변은 해송이 뿌리째 뽑히면서 침식 속도를 높였고, 그로 인해 피해가 더 커졌다"고 진단했다.

강릉시 하시동.안인해안사구(2023년 7월 촬영)해안사구에 소나무가 뿌리채 뽑히면서 연안침식이 가속화 되는 현장 ⓒ 진재중


사구식물 복원 목소리 커져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송을 대체할 수 있는 적합한 식물 연구와 조경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안방재를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조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동해안의 해안선은 점차적으로 유실되며 해양 생태계까지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사구식물의 가장 큰 장점은 그 뿌리 시스템에 있다. 사구식물은 모래와 토양 속 깊이까지 뻗는 뿌리 구조를 가지고 있어, 해안가에서 바람이나 파도에 의해 토양이 쉽게 유실되지 않도록 고정시킨다. 특히 동해안은 태풍과 같은 기후 영향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구식물은 자연적인 방어벽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사구식물로는 순비기나무, 통보리사초, 좀보리사초, 갯그령 등이 있다. 이 식물들은 염분에 강하고, 바닷바람에도 잘 견디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척박한 환경에서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특히 갯그령은 뿌리가 땅 속 깊게 뻗은 뿌리로 모래층을 단단히 붙잡아 준다. 사구식물을 심으면 해송 식재에 드는 예산도 절감할 수 있다. 이는 해양 환경의 안정성과 생물 다양성 유지에도 중요하다.

이규송 강릉원주대 교수는 사구 지역의 생물 다양성을 보호해야 한다며, 고산대 생태계, 암벽지 식생, 사구 식생 등은 훼손 시 회복이 어려운 만큼 우선적으로 관리해야 할 생태계라고 강조했다. 그는 해당 지역에 적응해온 고유 생물들을 보호하는 것이 생물 다양성 유지의 핵심 정책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각종 염생식물모래의 이동이 심한 전사구에 주로 분포하고 바람에 날려온 모래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 진재중

고성군 송지호해변사구식물이 파도나 바람의 완충역할을 함으로서 연안침식을 막아준다 ⓒ 진재중


덧붙이는 글 글쓴이 진재중씨는 전 KBS PD로 현재 강원대학교 해양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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