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한국으로 무작정 1년 살기 여행 왔어요"
한국어 공부하며 새로운 한국 만난 폴란드 청년 주잔나
▲ 주잔나는 폴란드 바르샤바 한국 문화원에서 다양한 행사를 돕고 통역 일을 했다. ⓒ 주잔나
비바람과 한파가 물러설 줄 모르고 번갈아 몰아친 3월이었다. 기후위기를 실감하며 힘겹게 파종하고 봄을 기다리던 중 올해 첫 유기농장 봉사자가 찾아왔다. 나쁜 날씨를 확 날려줄 만큼 밝은 미소가 가득한 27살 폴란드인 주잔나였다.
폴란드의 바르샤바 어학당에서 7년 동안이나 한국어를 배웠고, 이제는 초급반 수강자를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칠 정도로 한국말을 잘했다. 최근 의과대학을 졸업했지만 의사가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하다 평소 좋아하는 한국으로 무작정 1년 살기 여행을 왔다고 했다. 함께 농사일을 하며 조금은 낯선 나라 폴란드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들어보았다.
최근 폴란드 젊은이들에게 한국 문화는 일상이 되었다고 한다.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뿐만 아니라 한국어, 음식, 역사 등 다양한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아졌다. 한국어학당에는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넘쳐나고, 브로츠와프 국립대학을 비롯해 5개 대학에 있는 한국학과는 입학 경쟁률도 높다고.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아몬드>(이원평), <흰>(한강),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백세희), <7년의 밤>(정유정), <위저드 베이커리>(구병모),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선의 법칙>(편혜영),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장은진).
주잔나가 폴란드에서 읽었다는 한국 책 목록이다. 폴란드에 한국 작가의 책이 많이 번역되어 읽히고 있고 꽤 인기가 많다고. 주잔나는 특히 <엄마를 부탁해>를 감동적으로 읽었는데, 작년 한국 작가들이 바르샤바 도서전을 위해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통역 알바를 하다가 우연히 신경숙 작가를 만나게 되어 너무나 기뻤다고 했다. 또한 <흰>은 한강 작가가 바르샤바에서 일부를 썼고, 책에서 바르샤바를 언급해서 감동을 받았다고.
고난의 역사 딛고 일어선 힘이 어떤 것인지 느꼈다
▲ 한국 회사의 문화교류 프로젝트에 참여해 자원 봉사를 했다. ⓒ 주잔나
1989년 한국과 수교한 폴란드는 서로 교류한 지 34년 밖에 되지 않은 나라다. 20년 전만 해도 폴란드에서 한국은 낯선 나라였다. 20년 전 폴란드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친구 말에 의하면 그때만 해도 기숙사에서 김치를 먹으려고 하면 냄새 난다며 폴란드 친구들이 기겁을 했었다고 한다. 거리에선 '곤니찌와' 하면서 일본 사람 취급받는 게 일상이었다고. 20년이 지난 지금, 김치는 이제 폴란드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인기 있는 음식이다. 집에서 김치를 담가 먹는 사람들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폴란드와 한국은 주변국들의 침략을 많이 받고 이를 극복하며 지내온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이런 동질감이 호감이 되었던 것 같아요. 한국어 공부를 시작으로 나중에는 바르샤바 한국문화원에서 다양한 행사를 도우며 통역하는 일을 했어요. 한국어를 공부하니 한국에 대해 더 깊고 새롭게 알게 되어 좋았어요."
폴란드는 러시아,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슬로바키아, 체코, 독일에 둘러 싸여 있는 나라다. 주변 나라들과 수많은 전쟁을 했고, 1795년부터 주변 삼대 강국인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삼국 식민지배를 1918년까지 무려 123년 동안 받았다. 소련의 통치 기간도 있었다. 한국도 폴란드와 비슷한 아픔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난을 극복해 낸 것에 자연스럽게 호감이 생겼다고 한다.
"작년에 한국 회사의 폴란드 문화교류 프로젝트에 참여해 일주일간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통역과 워크숍 준비를 했는데, 공연을 준비하는 한국 사람들이 새벽 2시까지 연습을 하고 6시에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폴란드에서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편이거든요. 그렇게 피곤한 일정이었지만 모두가 하나가 되어 열심히 준비를 하는 과정이 놀라웠어요. 진짜 한국적인 모습을 본 것 같았어요."
주잔나는 한국 사람들이 '열심히, 빨리빨리' 일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좀 놀랐지만, 금세 적응이 되었고, 한국 사람들이 고난의 역사를 딛고 일어선 힘이 어떤 것인지 느꼈다고 했다.
▲ 주잔나는 지구 환경에 좋은 유기농을 배우고자 백화골 농장을 찾아왔다. 고추 가식을 하고 있는 모습. ⓒ 조계환
농사일을 하면서도 한국은 기후와 토질이 농사짓기에 그렇게 좋지 않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더니 금세 일을 배우며 척척 해 나갔다. 주잔나와 함께 완두콩, 감자, 비트, 대파, 시금치, 당근을 파종했다. 2월부터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난데없는 봄장마와 추운 날씨 때문에 힘들었지만, 주잔나 덕분에 기운이 났다.
"한국 여행하면서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제가 한국말을 조금 하니까, 어디에 가도 한국 사람들이 잘 대해주네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한국 음식 잘 먹는다고 잘해주시고, 거리에서 길을 묻거나 버스를 타도 모두 다 친절해요. 경주 양동마을에서 만난 관광가이드 분은 특별히 600년 된 집 내부까지 안내해 주셨는데, 거기 사시는 할아버지가 차를 대접해 주시고 나중에는 저녁까지 초대해 주셨어요. 잊지 못할 경험이었죠. 광주에서는 세 아이가 있는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가족처럼 지내는 등, 제가 운이 좋아서 한국 여행을 정말 재미있게 하고 있는 중이에요."
폴란드에서 자원봉사 할 때 만났던 한국 친구들을 한국에서 만나는 것도 재미있고,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도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맙다고. 자연스럽게 매운 음식도 잘 먹게 되었는데, 한국 음식 중에서 어떤 음식이 제일 좋으냐고 물으니 하나만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로 대부분의 한국 음식이 다 맛있다고 했다. 단 꿈틀거리는 산낙지는 절대 못 먹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한국에서 일하며 살아보고 싶어요"
▲ 벚꽃이 피기 시작한 날, 경주 월정교에서 신라 한복을 입고 찍은 기념 사진 ⓒ 주잔나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한류 팬들이 한국의 모든 면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주잔나도 한국의 단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폴란드처럼 한국도 불평등이 큰 이슈이고, 최근 한국의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는 점, 아이를 낳은 후 여성들이 재취업하기 힘든 점,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교육열이 너무 높아서 경쟁이 치열하고, 지나치게 성장과 자본 위주의 사회라서 여유가 없어 보이는 것도 아쉽다고. 하지만 이런 치열한 경쟁사회, 성장 위주 사회 명암의 이면으로 세계적인 한국문화를 만들어 왔다는 것도 느낀다.
"한국의 유기농장에 머물며 지구 환경에 좋은 유기농사에 대해 배우고, 한국 문화도 가깝게 접할 수 있어서 좋아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한국 여행을 통해 많은 경험을 한 후 폴란드에 돌아가면 뭔가 다른 선택을 하게 될 것 같아요.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된다면 좋겠지요."
농장에서 봉사를 마치고 나면, 부모님이 2주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어디로 모시고 싶은지 물었더니, 한국을 보여드리기에 2주는 너무 짧아서 무척 고민이 되지만, 먼저 한국의 전통 건축물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서울 한옥마을, 전주, 부여, 경주, 부산 등을 함께 여행하며 한국 역사와 문화를 알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주잔나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케이팝을 들으며 한국 드라마와 한국 책을 읽으며 보낸 친구라 오랜 한국 친구, 가족을 만난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나라 폴란드에서 왔다는 것이 실감이 되지 않을 만큼 함께 지내고 일하는 게 친숙하고 편했다. 한국 관련 이야기를 시작하면 할 이야기가 많고, 한국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마지막으로 만약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은지 물었더니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살면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워지겠지만, 사실 한국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살아보고 싶어요. 물론 여행하는 것과 사는 것은 달라서 지금처럼 계속 재미있을지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 엄청 힘들 거라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일하며 살아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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