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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건물, 다른 분위기... 여기에 '인사대마왕'이 산다

옆단지 이사왔는데 만나는 이마다 먼저 환하게 인사를... 웃음처럼 인사도 번지는 걸까

등록|2024.04.08 16:09 수정|2024.04.08 16:17
옆 단지 아파트로 이사 온 지 어느덧 두어 달이 다 돼 간다. 이사 후 나에겐 내내 몹시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 거의 모든 사람이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어린이집 가방을 들고 손주 등원 준비를 해 주시는 할아버지도, 젊은 남자 아저씨도, 교복 입은 여학생도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한다. 그 적극적인 인사 덕분에 나는 나도 인사를 덩달아하게 되고, 좁은 공간의 적막한 시간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인사를 하는 게 왜 이상한지 의아할 수 있겠다. 사실 나는 인사를 먼저 안 하는 환경 속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이 상황이 정말 낯설었다. 이전 집에서는 이웃을 만나도 딱히 인사를 먼저 하지는 않고 그냥 지나치거나, 각자 휴대폰만 골똘히 쳐다보는 게 기본값이었다.
 

▲ 이사 후 나에겐 내내 몹시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 거의 모든 사람이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AI생성 이미지) ⓒ 김아람


이사 전후의 동네 수준과 분위기 차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내가 이사 온 곳은 이전 집과의 거리가 100m도 채 되지 않는 바로 근처 집이다. 또한 같은 평수의 같은 연식, 같은 가격의 이웃 아파트이기에 큰 환경 차이랄 것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분위기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지가 늘 의문이었다.

왜 이리들 친절하실까 

도대체 왜 이리 다를까? 왜 여긴 모든 사람들이 친절한 것일까? 더 부자 동네도 아니다. 이웃의 나이대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경비 아저씨가 더 친절한 것도 아니다. 오늘은 심지어 엘리베이터에 탄 할아버지가 나에게 우산을 챙겨가야 할 날씨 같다고 말을 먼저 걸으셔서 멍 때리던 나는 움찔 놀랐다. 나는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건 도미노 효과일까?

상상을 해 보았다. 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많은 사람들 중에 마치 이 할아버지 같은 인싸력 좋은 인사 대마왕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마왕은 늘 적극적으로 인사 세례를 퍼부으며 함께 탄 사람들을 인사왕으로 점점 세뇌시킨 것이다. 그러다 결국 이곳은 인사가 기본값이 된 사람들로 가득 차고, 나처럼 이사 온 사람들도 어느덧 점점 이 텐션을 맞춰나가는 전염력 강한 곳일 지도 모른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내 상상을 넘어서 실재하는 인사 대마왕을 찾아서 직접 물어보면서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직장 동료 등 여러 지인에게 수소문해 가며 몇 다리를 건너서 찾아보았다. 그중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항상 웃으며 인사를 먼저 건넨다는, 자타공인 인사대마왕님으로 불리는 분을 찾을 수 있었다. 모임 동료의 배우자분으로, 자영업을 하시는 사장님이었다.

다짜고짜 인터뷰를 청해보았다.

- 안녕하세요, 시간이 없으니 본론부터 묻겠습니다. 어쩌다가 인사대마왕이 되었죠? 
"어렸을 때부터 인사를 해야 잘 먹고 잘 산다고 배웠고, 그 후론 습관이 되었어요. 습관에 배다 보니 인사를 안 하는 게 오히려 어색해서, 누굴 만나면 잘 몰라도 꼭 인사를 합니다."

- 인사를 자주 건네면 인사를 받는 사람들이 변하나요? 
"인사를 안 할 때는 상대방의 이미지가 일단 무미건조하게 보이거나, 내 마음대로 재단해 버립니다. 하지만 인사를 트고 나면 상대방이 어떤 성정인지를 알 수 있고, 또 상대도 나를 조금 더 안전하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첫인상만 보면 무서울 수 있으나 첫인사를 잘 하고나면 순박해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 인사를 먼저 하는 게 어색한, 저같은 부끄러움 많은 사람도 인사대마왕이 될 수 있는 꿀팁이 있을까요? 
"음. 인사를 잘 받아주는 사람에게 시도해서 자신감을 얻어도 좋고, 무엇보다 인사를 하면 인생에 득이 생기는 경험을 해보면 자연스럽게 습관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인사가 그냥 숨 쉬듯 자연스러울 뿐이에요."

웃음이 번지는 것처럼 

막상 인터뷰를 마치니 내가 했던 상상이 마치 합리적 이론이라고 입증받는 것 같아서 스스로 뿌듯해졌다. 상대방이 웃으면 나도 웃게 되는, 웃음이란 감정이 번지는 것처럼 인사도 번질 수도 있지 않은가.
 

▲ 인사(자료사진) ⓒ 픽사베이


저분 답변처럼, 인사가 습관이 되고 또 그게 인생에 득이 된다는 것을 알고 깨닫는다면 저절로 익숙해질 것 같았다. 그동안은 동네마다 매너와 수준이 다르다거나, 부자 동네가 더 매너가 좋다는 항간의 이론을 막연히 믿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훨씬 더 근원적인 '인사의 비밀'을 발견한 것 같아 기분이 으쓱해졌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 구역 엘리베이터에서의 인사대마왕님이 누구신지는 나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분의 나비효과 덕분에 어느새 인사가 전염된 인사요원 평사원쯤 됐으니, 신규 전입자가 보인다면 나도 한번 언젠가 제대로 먼저 기세 한번 펼쳐봐야겠다.

"안녕하세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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