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싸움에서 신음하는 노동자를 생각하자
[주장] 전태일재단과 조선일보의 공동기획을 보고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본다."
선거철이다. 안 그래도 시끄러운 시절에 한자로는 '견지망월(見指忘月)'라고 하는 저 말이 SNS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조선일보>가 창간 104주년 기념으로 전태일 재단과 공동기획을 한 일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3월 5일, <12(대기업 정규직 비율)대 88(중기·비정규직 비율), 쪼개진 노동시장을 바꿔야 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에 톱에 올렸다. 조선일보가 노동시장을 바꾸자는 기획기사를 쓴다고? 그것도 전태일재단과 공동으로? 믿어지지 않았다.
1화를 시작으로 3월 22일에는 <기업-노조가 함께 만든 '100억짜리 동행'>이라는 제목의 마지막 기사(10화)를 1면에 게재했다. 혹시, 편파적인 내용으로 기사를 쓰지는 않았을까. 그걸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이 왔다. 내 시간은 소중하니까.
그렇지만 궁금증부터 풀어야 했다. 조선일보를 구독하지 않으니 집에 신문이 없다. 부랴부랴 도서관으로 갔다.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으나, 조선일보 탑에 걸렸다는 기사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1화부터 10화까지 모두 읽었다. 이럴 수가!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고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신음하는 노동자를 만나 인터뷰까지 했다. 깜짝 놀랐다.
나는 계약직으로 전전하는 삶을 살면서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잘 몰랐다. 이번에 조선일보에서 쓴 기획기사를 읽으면서 12대 88이라는 이중구조를 확인했다. 특히, 4화 <이름만 자유로운 전문직>을 읽고 놀랐다. 노동법 밖의 노동자, 프리랜서가 400만 명이나 된다니 말이다. 5화에서는 <사각지대의 마루 노동자>를 다뤘다. 한 달 일해도 서류엔 7일 일한 걸로 적는다. 그래서 유령노동자다. 불법으로 하도급을 받은 업체가 4대 보험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한다. 참담했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빈부격차다. 빈부격차만큼 임금격차가 큰 곳이 노동시장이다. 이렇게 심각하고 민감한 사회적 이슈을 담은 기사를 쓴 곳이 조선일보라니 나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등이 가렵다. 무언가 도구를 써서 긁어야 한다. 당장 내 앞에 '효자손'이 없다. 그렇다면 아무거나 집어 들고 등을 긁어야 한다. 효자손이면 좋겠지만 대체물이라도 상관없다. 긁어만 준다면. 이번에 조선일보가 쓴 기사는 딱 그랬다.
조선일보가 바뀌려나(정말?). 88%에 속하는 노동자들의 몸 고생, 마음 고생이 얼마나 클까. 곧, 좋은 세상이 올까. 그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흐뭇한 마음으로 며칠을 보냈다.
전태일재단에서 들려온 소식... 한석호를 만나고 싶었다
3월 26일 밤, 잠이 안 와서 SNS를 훑어보고 있었다. 새로운 피드가 떴다.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한석호가 조선일보와 기획한 기사에 대한 소명서라며 쓴 글이다.
"3월 5일, 조선일보 창간 104주년 특집호가 조선일보 1면에 실렸습니다. 그 기사는 조선일보와 전태일재단이 공동으로 기획한 기사입니다. 사안의 성격상, 공동기획에 앞서 재단 안팎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고 이사회의 승인을 밟는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진행했습니다. 이에 대해 전태일재단 이사회는 절차상의 책임을 묻고, 사무총장의 사퇴 권고를 의결했습니다. 저는 수용했습니다.(중략)"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소린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따로 있지. 과정과 절차를 밟지 않았다니. 그렇다 해도 그것이 사무총장의 사퇴로 이어질 일인가? 어떻게든 한석호의 사퇴만은 막고 싶었다.
다음날, 이곳저곳의 SNS에 "한석호의 사무총장 사퇴 재고를 전태일 재단 이사회에 전달하려고 한다. 동의하는 사람은 서명을 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명을 했다. 그리고 한석호가 쓴 소명서를 마저 읽었다.
"'전태일을 노조만의 전태일로 가져가면 안 된다, 전태일을 진영에 가둬도 안 된다'는 말을 합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면 다들 화들짝 놀랍니다. 누구 하고는 안 된다, 어떤 매체 하고는 안 된다, 어떤 정부하고는 안 된다고 합니다. 진영의 그물망 안에 머물라합니다. 추상적으로는 진영 너머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진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태일로 국한된 현상이 아닙니다. 같은 정책도 이 정부면 찬성하고 저 정부면 반대하는 현상, 똑같은 제안도 기업의 제안이냐, 노조의 제안이냐에 따라 찬성과 반대를 뒤집곤 합니다. 같은 논조 기사도 이 매체는 용인하고, 저 매체는 비난하는 현상을 봅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을 옥죄는 극단의 진영논리 현상입니다. 그물망이 빽빽하고 억셀수록 진영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전태일과 전태일 정신도 진영 그물망을 넘을 수 없습니다.
전태일과 함께 평화시장 어린 여공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감옥에 갔고 아내와 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봉제업에 복귀해 큰돈을 번 전태일의 친구 최종인이 있습니다. 최종인은 어느 날, 이렇게 계속 돈 벌면 전태일 친구로서 전태일 이름에 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사업을 접습니다. 최종인은 조선일보가 쓴 <12대 88의 사회를 넘자>는 기획기사를 보고 말합니다. "살아생전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가 나올 줄 상상도 못 했다"고요. 그리고 기뻐했습니다. (후략)"
소명서에 썼듯이 문제는 기획기사를 만든 '과정'에 있다. 하지만 전태일재단과 조선일보가 추진한 기획기사의 내용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기사를 본 독자들은 공부를 했을 것이다. 아니, 공부만 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몰랐던 노동시장의 임금 격차와 보이지 않는 노동 현장, 그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태일 재단이 조선일보랑 손을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전태일을 팔았다'는 말까지 들었다. 거기다 절차상의 문제로 사무총장직을 사퇴했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한석호를 만나 자초지종을 듣고 싶었다.
그의 소명서를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한석호는 짐 정리할 것이 있어서 전태일 재단 사무실에 가니 그리로 오라고 했다. 초췌한 얼굴을 한 그와 마주 앉았다.
"저의 사퇴는 당연합니다. 안타까운 건 '견지망월(見指忘月)'이에요. 소명서에도 썼듯이 사람들은 '달'을 보지 않고 있어요. 그게 제일 답답하죠. 지금까지 기획기사의 내용을 가지고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저는 이 기획기사를 준비하면서 조선일보에 한 가지 제안을 했어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비교는 하되 정규직을 비판하거나 한국노총 민주노총을 비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조선일보는 저의 제안을 수용했어요. 그리고 조선일보는 '모든 기사는 최종판을 내기 전에 전태일재단에게 보내겠다. 전태일 재단이 검토·검수하고, 수정하거나 보완하라고 하면 그렇게 한다'고 했어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조선일보에서 먼저 그런 제안을 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거든요. 일반적으로 기사를 쓰는 언론사가 취재원에게 검토·검수를 하라고 하지는 않아요. 약속대로 조선일보는 1화부터 10화까지 기사를 쓸 때마다 기사 마감 시간인 밤 9시에 저희에게 보냈어요.
이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했더니 모두들 믿지 않았어요. '정말이야? 정말로 조선일보가?'라고 반응했죠. 저 역시 아직도 조선일보의 그런 태도가 믿어지지 않아요(웃음)."
좋은 일 하고도 코너에 몰린 사람답지 않게 의연했다. 그런 모습은 하루아침에 나오는 모습이 아닐 게다. 이렇게 단단한 내공이 있는 사람인 줄 미처 몰랐다. 자초지종을 듣고 싶어서 만나자고 했지만 막상 만나서 그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세상의 모든 짐을 혼자 지고 가는 것처럼 쓸쓸해 보였다.
한석호가 문제 제기한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를 다룬 건 조선일보다. 외피일 뿐이다. 기획기사가 끝난 며칠 후, 놀라운 변화가 왔다. 조선일보 3월 26일 자에 실린 기사를 보자.
"서울시가 웹툰 작가 등 프리랜서와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지침을 만든다고 24일 밝혔다. '비정형 근로자' 등으로 불리는 이들은 근로자처럼 일을 하면서도 개인 사업자다 보니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서울시가 별도로 지침을 만들어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본지(조선일보)가 전태일재단과 함께 만든 '12대 88의 사회를 넘자' 기획 시리즈에서 노동법의 울타리 밖에 있는 프리랜서 문제를 지적한 이후 나온 조치다."
정말로 서울시가 지침을 만들어 시행할지는 다음 문제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혜택이 간다면 이번 기획은 성공한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달을 안 보고 손가락만 본다면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한석호는 사무총장 사퇴의 소명서 마지막에 아래와 같이 썼다.
"전태일재단도 조선일보도 노조도 기업도 정당도 '손가락'입니다. '달'은 노동과 국민의 삶이고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입니다. 누구도 전태일의 열 손가락 가운데 한 손가락만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전태일재단은 열악한 노동단위라면 어디든 지원합니다. 민주노총·한국노총·제3노조는 각자 방식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종교는 종교대로, 보수·중도·진보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눔과 상생을 실천하면 됩니다. 단, 분신은 빼고요. 과거의 나에게 무릎 꿇지 않겠습니다. 기초노동의 눈물을 닦는 일에만 무릎 꿇겠습니다."
나는 그의 소명서를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작년 3월, 한석호가 윤석열 정부의 상생임금위원회에 참여할 때다. 민주노총은 "임금을 삭감하려는 윤 정부의 노동 개악에 명분만 주는 꼴"이라며 한석호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그때, 한석호가 말했다.
"염치조차 상실한 진보라면, 진보의 외투를 벗겠다."
선거철이다. 안 그래도 시끄러운 시절에 한자로는 '견지망월(見指忘月)'라고 하는 저 말이 SNS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조선일보>가 창간 104주년 기념으로 전태일 재단과 공동기획을 한 일 때문이다.
▲ 전태일재단과 조선일보가 공동기획한 '12대 88 노동시장 이중구조'기사가 조선일보 1면에 실렸다. ⓒ 문세경
1화를 시작으로 3월 22일에는 <기업-노조가 함께 만든 '100억짜리 동행'>이라는 제목의 마지막 기사(10화)를 1면에 게재했다. 혹시, 편파적인 내용으로 기사를 쓰지는 않았을까. 그걸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이 왔다. 내 시간은 소중하니까.
그렇지만 궁금증부터 풀어야 했다. 조선일보를 구독하지 않으니 집에 신문이 없다. 부랴부랴 도서관으로 갔다.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으나, 조선일보 탑에 걸렸다는 기사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1화부터 10화까지 모두 읽었다. 이럴 수가!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고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신음하는 노동자를 만나 인터뷰까지 했다. 깜짝 놀랐다.
나는 계약직으로 전전하는 삶을 살면서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잘 몰랐다. 이번에 조선일보에서 쓴 기획기사를 읽으면서 12대 88이라는 이중구조를 확인했다. 특히, 4화 <이름만 자유로운 전문직>을 읽고 놀랐다. 노동법 밖의 노동자, 프리랜서가 400만 명이나 된다니 말이다. 5화에서는 <사각지대의 마루 노동자>를 다뤘다. 한 달 일해도 서류엔 7일 일한 걸로 적는다. 그래서 유령노동자다. 불법으로 하도급을 받은 업체가 4대 보험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한다. 참담했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빈부격차다. 빈부격차만큼 임금격차가 큰 곳이 노동시장이다. 이렇게 심각하고 민감한 사회적 이슈을 담은 기사를 쓴 곳이 조선일보라니 나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등이 가렵다. 무언가 도구를 써서 긁어야 한다. 당장 내 앞에 '효자손'이 없다. 그렇다면 아무거나 집어 들고 등을 긁어야 한다. 효자손이면 좋겠지만 대체물이라도 상관없다. 긁어만 준다면. 이번에 조선일보가 쓴 기사는 딱 그랬다.
조선일보가 바뀌려나(정말?). 88%에 속하는 노동자들의 몸 고생, 마음 고생이 얼마나 클까. 곧, 좋은 세상이 올까. 그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흐뭇한 마음으로 며칠을 보냈다.
전태일재단에서 들려온 소식... 한석호를 만나고 싶었다
3월 26일 밤, 잠이 안 와서 SNS를 훑어보고 있었다. 새로운 피드가 떴다.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한석호가 조선일보와 기획한 기사에 대한 소명서라며 쓴 글이다.
"3월 5일, 조선일보 창간 104주년 특집호가 조선일보 1면에 실렸습니다. 그 기사는 조선일보와 전태일재단이 공동으로 기획한 기사입니다. 사안의 성격상, 공동기획에 앞서 재단 안팎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고 이사회의 승인을 밟는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진행했습니다. 이에 대해 전태일재단 이사회는 절차상의 책임을 묻고, 사무총장의 사퇴 권고를 의결했습니다. 저는 수용했습니다.(중략)"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소린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따로 있지. 과정과 절차를 밟지 않았다니. 그렇다 해도 그것이 사무총장의 사퇴로 이어질 일인가? 어떻게든 한석호의 사퇴만은 막고 싶었다.
다음날, 이곳저곳의 SNS에 "한석호의 사무총장 사퇴 재고를 전태일 재단 이사회에 전달하려고 한다. 동의하는 사람은 서명을 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명을 했다. 그리고 한석호가 쓴 소명서를 마저 읽었다.
"'전태일을 노조만의 전태일로 가져가면 안 된다, 전태일을 진영에 가둬도 안 된다'는 말을 합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면 다들 화들짝 놀랍니다. 누구 하고는 안 된다, 어떤 매체 하고는 안 된다, 어떤 정부하고는 안 된다고 합니다. 진영의 그물망 안에 머물라합니다. 추상적으로는 진영 너머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진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태일로 국한된 현상이 아닙니다. 같은 정책도 이 정부면 찬성하고 저 정부면 반대하는 현상, 똑같은 제안도 기업의 제안이냐, 노조의 제안이냐에 따라 찬성과 반대를 뒤집곤 합니다. 같은 논조 기사도 이 매체는 용인하고, 저 매체는 비난하는 현상을 봅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을 옥죄는 극단의 진영논리 현상입니다. 그물망이 빽빽하고 억셀수록 진영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전태일과 전태일 정신도 진영 그물망을 넘을 수 없습니다.
전태일과 함께 평화시장 어린 여공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감옥에 갔고 아내와 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봉제업에 복귀해 큰돈을 번 전태일의 친구 최종인이 있습니다. 최종인은 어느 날, 이렇게 계속 돈 벌면 전태일 친구로서 전태일 이름에 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사업을 접습니다. 최종인은 조선일보가 쓴 <12대 88의 사회를 넘자>는 기획기사를 보고 말합니다. "살아생전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가 나올 줄 상상도 못 했다"고요. 그리고 기뻐했습니다. (후략)"
소명서에 썼듯이 문제는 기획기사를 만든 '과정'에 있다. 하지만 전태일재단과 조선일보가 추진한 기획기사의 내용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기사를 본 독자들은 공부를 했을 것이다. 아니, 공부만 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몰랐던 노동시장의 임금 격차와 보이지 않는 노동 현장, 그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태일 재단이 조선일보랑 손을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전태일을 팔았다'는 말까지 들었다. 거기다 절차상의 문제로 사무총장직을 사퇴했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한석호를 만나 자초지종을 듣고 싶었다.
그의 소명서를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 4월 3일, 전태일재단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한석호 ⓒ 문세경
한석호는 짐 정리할 것이 있어서 전태일 재단 사무실에 가니 그리로 오라고 했다. 초췌한 얼굴을 한 그와 마주 앉았다.
"저의 사퇴는 당연합니다. 안타까운 건 '견지망월(見指忘月)'이에요. 소명서에도 썼듯이 사람들은 '달'을 보지 않고 있어요. 그게 제일 답답하죠. 지금까지 기획기사의 내용을 가지고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저는 이 기획기사를 준비하면서 조선일보에 한 가지 제안을 했어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비교는 하되 정규직을 비판하거나 한국노총 민주노총을 비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조선일보는 저의 제안을 수용했어요. 그리고 조선일보는 '모든 기사는 최종판을 내기 전에 전태일재단에게 보내겠다. 전태일 재단이 검토·검수하고, 수정하거나 보완하라고 하면 그렇게 한다'고 했어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조선일보에서 먼저 그런 제안을 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거든요. 일반적으로 기사를 쓰는 언론사가 취재원에게 검토·검수를 하라고 하지는 않아요. 약속대로 조선일보는 1화부터 10화까지 기사를 쓸 때마다 기사 마감 시간인 밤 9시에 저희에게 보냈어요.
이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했더니 모두들 믿지 않았어요. '정말이야? 정말로 조선일보가?'라고 반응했죠. 저 역시 아직도 조선일보의 그런 태도가 믿어지지 않아요(웃음)."
좋은 일 하고도 코너에 몰린 사람답지 않게 의연했다. 그런 모습은 하루아침에 나오는 모습이 아닐 게다. 이렇게 단단한 내공이 있는 사람인 줄 미처 몰랐다. 자초지종을 듣고 싶어서 만나자고 했지만 막상 만나서 그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세상의 모든 짐을 혼자 지고 가는 것처럼 쓸쓸해 보였다.
한석호가 문제 제기한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를 다룬 건 조선일보다. 외피일 뿐이다. 기획기사가 끝난 며칠 후, 놀라운 변화가 왔다. 조선일보 3월 26일 자에 실린 기사를 보자.
"서울시가 웹툰 작가 등 프리랜서와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지침을 만든다고 24일 밝혔다. '비정형 근로자' 등으로 불리는 이들은 근로자처럼 일을 하면서도 개인 사업자다 보니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서울시가 별도로 지침을 만들어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본지(조선일보)가 전태일재단과 함께 만든 '12대 88의 사회를 넘자' 기획 시리즈에서 노동법의 울타리 밖에 있는 프리랜서 문제를 지적한 이후 나온 조치다."
정말로 서울시가 지침을 만들어 시행할지는 다음 문제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혜택이 간다면 이번 기획은 성공한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달을 안 보고 손가락만 본다면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한석호는 사무총장 사퇴의 소명서 마지막에 아래와 같이 썼다.
"전태일재단도 조선일보도 노조도 기업도 정당도 '손가락'입니다. '달'은 노동과 국민의 삶이고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입니다. 누구도 전태일의 열 손가락 가운데 한 손가락만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전태일재단은 열악한 노동단위라면 어디든 지원합니다. 민주노총·한국노총·제3노조는 각자 방식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종교는 종교대로, 보수·중도·진보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눔과 상생을 실천하면 됩니다. 단, 분신은 빼고요. 과거의 나에게 무릎 꿇지 않겠습니다. 기초노동의 눈물을 닦는 일에만 무릎 꿇겠습니다."
나는 그의 소명서를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작년 3월, 한석호가 윤석열 정부의 상생임금위원회에 참여할 때다. 민주노총은 "임금을 삭감하려는 윤 정부의 노동 개악에 명분만 주는 꼴"이라며 한석호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그때, 한석호가 말했다.
"염치조차 상실한 진보라면, 진보의 외투를 벗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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