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가져오라 한 근거, 여기 있습니다
[주장] 의료 개혁, 의대 증원이 답이 아닌 6가지 이유
▲ 시민들이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TV 모니터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 유성호
저는 2월 16일 가톨릭중앙의료원 인턴을 사직한 전공의 류옥하다입니다. 며칠 전 윤석열 대통령은 '의대 정원과 관련해 의료계는 통일된 안 및 근거를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29~4.1 개인 자격으로 전공의와 의대생 1581여 명에 대한 조사를 했는데 의대 입학정원 증원 대신 감축이나 유지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9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왜 96%의 젊은 의사들이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지 지면을 빌려 설명하고자 합니다.
첫째, 의대 증원을 하지 않아도 한국 의사 수는 꾸준히 증가해 왔습니다. 의대 정원은 27년간 3058명으로 동결됐지만, 현재 은퇴하는 의사들의 입학 당시 정원은 800~1040명이었습니다. 이들의 은퇴에 비해 새로운 의사의 진입이 2.9배~3.8배 많아 활동 의사 수는 2012년 약 8만 7600명에서 2022년 약 11만 2300명으로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즉, 의대 정원은 동결된 것이 맞지만 의사 수가 동결된 것은 아닙니다.
셋째, 필요 의사 수 추계는 여러 요소를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정부가 의대 증원 근거로 삼은 하나(홍윤철 서울대 교수)에서는 2035년 부족한 의사 수를 7264명으로 추산했지만, 일차 의료를 강화할 경우 이 숫자는 2637명까지 줄어든다고 밝히면서 의료개혁이 더 중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더하여 증원 근거가 된 3개 보고서가 놓친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면 의대 정원 감축의 여지도 분명 없지 않습니다. 노인 건강 여명이 길어진다는 '건강한 고령화 효과'도 그 중 하나이며, 의사들의 은퇴 연령이 늦추어지는 것 또한 고려해야만 합니다.
넷째, 의료 기술의 발달이 의료 수요를 감소시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전에는 작은 위암도 메스로 배를 열어 위를 절제한 뒤 1주일가량 병원 신세를 졌다면, 이제는 초기 위암의 경우 내시경적 치료를 한 뒤 3일만 입원해도 됩니다.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과 합성생물학은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할 것이 분명합니다.
다섯째, 의대 증원은 교육의 부실화를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증원하더라도 2000명은 현실성이 없습니다. 기초의학-임상의학-임상실습-전공의로 이어지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의사 양성 구조 속에서 급격한 증원은 양질의 의사를 길러내기보다 '면허 개수 늘리기'가 될 뿐입니다. 기초의학 교수, 강의실, 카데바(해부용 시신), 실습병원 환경 마련 등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 외래 진료 축소 충북대병원 '한산'충북 유일 상급병원인 충북대병원이 전공의 집단 이탈로 외래 진료를 줄이기로 한 첫날인 5일 병원 중앙로비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여섯째, 의대 증원은 지역의료 살리기 해법이 되지 못합니다. 지역의료에 대한 일회성 현금 지원이나 강제 근무만으로는 지방의 의사들을 늘릴 수 없습니다. 당장 유치원, 편의점, 학교가 사라지는 지방 소멸의 현실 속에 의사만 덩그러니 배치한다고 해서 지방 의료 취약지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지방 의대 숫자 늘리기만으로는 수도권 의대와의 교육의 질 및 수련에서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며, 환자들은 이러한 환경에서 양성된 의사와 병원을 믿지 못할 것이고, 서울 원정 진료와 지방 소멸은 더 빨라질 것입니다.
의료 개혁은 필요하나 의대 증원이 그 답은 아닙니다. 의료는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양적 지표보다도 질이 강조되는 영역입니다. 10~20년이 소요되고, 효과가 나타날지도 불투명한 의대 증원보다 당장 실행 가능한 '수요 중심 의료 개혁'을 대안으로 제안하고자 합니다. 과다 의료 이용 절제와 의료전달체계 복원이 선행되어 지역의료를 살린다면, 선의의 의술을 행한 의사가 사법 위험에 노출되지 않게 한다면, 전문의 중심 병원에서 양질의 전공의 교육이 이루어져 환자 중심으로 의료를 재편한다면, 이후 의대 증원은 논의조차 필요 없는 일이 될지 모릅니다.
덧붙이는 글
류옥하다 기자는 16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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