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후 대학원 진학, '국편' 근무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 6] 식민사학을 비판하고 민족사학에 눈을 뜨게 되는 계기
▲ 강만길 공동위원장(자료사진).강만길 공동위원장(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강만길은 1954년 학부 3학년 때 홍이섭 교수의 강의 시간에 처음으로 민족주의 사학의 대표적인 역사가인 신채호를 알게 되었다. 또 백남운, 이청원, 김한주 등 사회경제사학 계통의 연구를 접하면서 역사 공부에 더욱 열정을 쏟았다.
사회경제사학(社會經濟史學)은 '한국 역사학계의 한 학풍으로 식민지 현실인식에 기초하여 일제의 식민사학에 저항하면서 유물론에 입각한 보편주의적 관점을 보였던 역사학'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의병 제대 후 다시 신석호의 도움으로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아연)의 한국사 전공 조교로 뽑혔다. 아세아문제연구소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설립된 대학 부설 연구소였다. 강만길은 이 연구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아세아연구>의 실무를 맡았다.
강만길은 군대에 징집되기 전인 학부 3학년 때 한국 금석학 강의를 듣고 <진흥왕비의 수가신명(隨駕臣名) 연구>라는 제목으로 리포트를 낸 적이 있다. 그런데 이 글이 고대사학회가 발간한 학술지 <사총(史叢)>(1955년 12월) 창간호에 실리는 영예를 얻었다. 비록 학생 신분으로 쓴 리포트에 불과했으나 고대사학회에서 인정할 만큼 강만길은 일찌감치 떡잎부터 달랐다.
학자, 언론인, 작가 등 글쟁이들은 누구나 활자화된 첫 작품에 마치 첫사랑과 같은 애틋함을 갖는다. 강만길의 첫 작품이 실린 <사총> 창간호에는 고려대학 사학과 교수인 김성식의 창간사에 이어 신석호의 <한말 의병의 개황>, 정재각의 <정전(井田)제도의 신 전개>, 김학엽의 <'역사의 경제적 해석'을 읽고>, 박성봉의 <해동공자 최충 소고> 등 10편의 글이 실렸다.
강만길은 '황초령비와 창령비'라는 부제가 달린 이 논문의 서두에 "당시 한반도의 동우에 위치한 신라는 중국과의 직접 교통이 불가능하여 인국 고구려나 백제에 비하여 그 국세가 미쇄하였으나 이 진흥왕 대에 이르러 일약 여·제 양국과 정립케 되었던 것" (주석 1)이라며 신라 부흥기를 설명했다.
1959년에 고려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강만길은 학문을 더 깊이 탐구하고자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때 또다시 신석호의 도움으로 국사편찬위원회('국편') 촉탁으로 취직하여 학비와 생계비를 벌면서 공부를 계속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식민사학이 그동안 잘못 해석한 문제들을 찾아내서 바로잡는 논문집 <국사상의 제 문제> 발간 업무를 맡았다. 이 일은 그가 식민사학을 비판하고 민족사학에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색인 작업에도 참여하면서 역사에 대한 깊고 넓은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학부 시절에 고고학이나 고미술에 관심을 가졌으나 이를 전공할 생각은 없었다.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15일 저녁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0주년 기념 학술회의 및 만찬'에서 '6.15 10주년 역사적 의미와 한반도 미래'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유성호
국편에 취직하자마자 대학원에 진학한 한편, 김용섭 씨와 함께 우리 역사상 특히 이른바 식민사학에 의해 잘못 해석된 문제들을 골라 바로잡는 논문집 <국사상의 제 문제> 발간을 맡았다. 신석호 선생님을 비롯해서 이병도·이홍직·김상기·이선근 등 여러 석학들이 필자로 참여했고, 이분들이 각 전문 분야의 바로잡아야 할 문제들을 택해서 논문은 써 주면 편집해서 책으로 출간하는 일이었다.
출간된 논문집에 실린 글들을 보면 알지만, 타민족의 강제 지배를 받다가 해방된 민족사회의 역사학계가 식민피지배 기간을 통해 잘못 이해되거나 왜곡된 제 역사를 올바르게 해석하려는 첫 노력이라 하겠다. (주석 2)
<국사상의 제 문제>는 4·19와 5·16을 거치면서 계속 발행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강만길은 이 일을 맡으면서 각 대학의 저명한 학자들을 만나게 되고, 이들의 글을 통해 식민사학을 극복하는 작업과 특히 타율성론과 정체후진성론을 극복하기 위한 연구에 천착하게 되었다. 국사편찬위원회 근무는 향후 그가 학자로서 입지를 굳히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국편에 취직한 직후 <조선왕조실록> 색인 작업이 시작되었다. 48책으로 압축된 영인본을 대학교수 등 전공학자들에게 한 권씩 맡겨서 책임 항목이 될 만한 어휘를 골라 붉은 줄을 쳐 오게 하고, 그 적부를 가려서 카드를 만든 후, 같은 항목의 카드를 한데 모아 정리한 작업이었다. (주석 3)
주석
1> <사총> 창간호, 고대사학회, 1955, 66쪽.
2> 강만길, <역사가의 시간>, 142쪽.
3> 위의 책, 144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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