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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 판때기를..." 5억짜리 그림 두고 싸운 세 친구

[안지훈의 3인칭 관객 시점] 토니상 수상한 블랙코미디 연극 <아트>

등록|2024.04.12 11:54 수정|2024.04.12 14:27

▲ 연극 <아트> 공연사진 ⓒ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소파와 탁자, 그리고 가구 몇 개가 전부인 단촐한 무대. 방을 연상케 하는 무대에 오랜 시간 끈끈한 우정을 지켜 온 세 남자가 등장하고, 흰 바탕에 흰색 줄이 쳐진 하얀 그림이 한 번씩 모습을 드러낸다. '앙뜨로와'가 그렸다는 이 그림이 촉발제가 되어 세 남자는 서로를 향해 품고 있던 감정을 터뜨리기 시작하고, 이들의 갈등은 점점 고조된다.

토니 어워즈에서 베스트 연극상을 수상한 <아트>의 이야기다. 이외에도 몰리에르 어워즈 베스트 작품상, 뉴욕 비평가 협회 베스트상 등 굵직한 수상 이력을 자랑하는 <아트>는 우리나라에서도 스테디셀러 연극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2022년 공연 당시 이순재, 노주현, 백일섭 등 원로 배우들이 참여하며 화제가 된 바 있다.

2018년 초연 이후 어느덧 네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아트>는 5월 12일까지 종로구 대학로에 위치한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에서 공연된다. 이번 시즌 들어 예술에 관심이 많은 피부과 의사 '세르주' 역에 엄기준과 최재웅, 성훈, 진태화가 캐스팅되었고, 고전을 좋아하는 이지적인 항공 엔지니어 '마크' 역에는 이필모, 김재범, 박은석, 손유동이 캐스팅되었으며, 자기 주장 없이 이리저리 휩쓸리며 웃음을 유발하는 문구 영업 사원 '이반' 역에는 박호산, 박정복, 이경욱, 김지철이 캐스팅되었다.

세 남자의 티키타카, 그리고 3인극이 지닌 상징성
 

▲ 연극 <아트> 공연사진 ⓒ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피부과 의사 '세르주'가 5억 원을 주고 새하얀 그림 한 점을 구입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된다. 세르주는 이 작품이 현대미술의 거장 '앙뜨로와'가 그린 것이라고 소개하고, 그의 작품이 파리 퐁피두 센터에 세 점이나 걸려있다는 부연 설명도 덧붙인다. 하지만 '마크'는 그런 세르주를 이해하지 못한다.

"설마 이딴 판때기를 5억이나 주고 산 거 아니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판때기라고 했는지 알고 싶네."


세르주 역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크를 이해하지 못한다. 급기야 세르주는 마크를 '현대미술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어대는 사람' 정도로 취급한다. 마크는 여전히 세르주가 허영심으로 인해 어리석인 짓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둘 사이에는 '이반'이 있다. 이반은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아 이리저리 휩쓸려다니는 인물로, 세르주의 주장에 동조하다가 마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를 반복한다.

세 남자는 오랫동안 끈끈한 우정을 이어왔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감정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세르주에게는 자신의 지식과 미적 감각, 경제적 능력을 뽐내고 싶은 허영심이 보인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와 말다툼을 하는 중에도 세네카의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 걸 보면 세르주는 꽤나 자만하다. 이반에게 동조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모습에서는 인정 욕구도 엿볼 수 있으며, 이는 마크에게서도 관찰된다. 마크와 세르주의 의견 차는 좁혀지지 않고, 때때로 마크는 세르주를 가르치려 들기도 한다. 이반은 세르주와 마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찌질한 면모를 보이는데, 그러다 은연중에 자신을 무시하는 친구들에게 분노하기도 한다. 또 한편으론 자신의 집보다 비싼 그림을 손쉽게 구매하는 세르주에게 질투심을 귀엽게 드러내기도 한다.

우정에 가려진 세 남자의 다양한 감정을 조명하려는 연극의 시도가 돋보였는데, 필자는 특히 3인극이라는 상징성에 주목했다. <아트>가 보여준 다양한 감정과 역학 관계는 '삼자 관계'가 만들어졌을 때 나타나는 것들이며, 따라서 2인극이나 보다 많은 행위자가 전면에 드러나는 연극에서는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George Simmel)의 설명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다. 짐멜은 '이자 관계'에서 '삼자 관계'로의 변화가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 두 명의 행위자로만 이루어지는 이자 관계는 단순하다. 둘 다 동의해야 관계가 형성되며, 둘 중 하나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관계는 소멸한다. 두 명 간의 상호작용은 단순하며, 권력이나 위계도 딱히 없다.

하지만 삼자 관계는 다르다. 이자 관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형태의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예컨대 두 명이 편을 이루고 남은 한 명에게 자신들의 의지를 강요할 수도 있고, 두 명이 갈등하는 상황에서 남은 한 명이 조정자 역할을 할 수도 있으며, 어부지리로 이득을 얻을 수도 있다. 이자 관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권력이나 위계가 삼자 관계에서는 드러나고, 경쟁심이나 질투심을 비롯한 다양한 감정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 친구가 겪는 우정의 방황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삼자 관계에서 다양한 감정, 특히 부정적인 감정도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는 삼자 관계로 움직인다는 짐멜의 설명을 비유적으로 활용하자면, 세 친구의 만남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이 다양한 감정들 덕분이었는지 모른다.

우리에겐 진실보다 진심이 중요한 순간이 있다

필자가 보기에 <아트>의 핵심은 '대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의 문제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앙뜨로와의 작품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그리고 세 친구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가 중요하다. 세 친구 간의 벌어지는 모든 문제, 그리고 그 문제의 해결이 바로 '의미 부여'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세르주와 마크가 각각 앙뜨로와의 작품에 부여한 의미는 상반된다. 세르주는 작품을 자세히 보면 흰 줄이 대각선으로 그어져있고, 조명과 각도에 따라 변한다고 설파한다. 하지만 마크에겐 아무것도 없는 흰 판때기일 뿐이다. 갈등 상황에서 이들은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했을까? 마크가 보기에 세르주는 진실을 자꾸 부정한 채 같잖은 지식이나 뽐내고 있고, 세르주가 보기에 마크는 고차원적인 현대 미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교양 없는 사람이다. 이반은 세르주가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산 것을 이해한다면서도, 이 그림에 5억 원이나 지불했다는 것에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자신이 상대방에게 부여한 의미를 상대방이 부정하고, 또 자신의 기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모습을 상대가 보이면서 세 친구의 갈등은 최고조로 치닫는다. 그렇게 끝날 것 같지 않은 다툼을 이어가던 중 지친 세르주는 마크에게 그림에 뭐라도 해보라며 펜을 쥐어준다. 펜을 건네받은 마크는 5억 원짜리 그림에 과감하게 무언가를 그린다. 이들은 더 이상 진실을 두고 다투지 않는다. 앙뜨로와의 그림에 무엇이 있는지, 선은 무슨 색인지, 현대미술에 대한 지식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허영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이 모든 것이 그들의 논쟁에서 사라졌다.

이후 세 친구는 어찌저찌 그림에 새겨진 펜의 흔적을 지우는 데 성공하고, 앙뜨로와의 작품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지난날 이를 두고 흰 판때기라고 지칭했던 마크는 독백을 통해 고백한다. 앙뜨로와의 그림에 눈 내리는 산을 스키를 타고 헤쳐가는 한 남자가 있다고. 그림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상징적인 고백이다.

그렇다.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세 남자가 보여준 건 처음 부여한 의미를 고수하지 않고 바꿀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세 친구의 갈등을 해결한 건 진실을 향한 끝없는 탐문이 아닌, 의미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서로의 의미를 이해하는 유연성이었다. 여기서 진실보다 진심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는 걸 배운다.
 

▲ 연극 <아트> 공연사진 ⓒ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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