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외면한 늙은 향유고래의 절규
그림책 <세월 1994-2014>를 읽고
▲ <세월 1994-2014> 책 앞표지 ⓒ 노란상상
일주일에 한 번씩 독서모임을 한다. 한 회원께서 눈물을 흘리며 읽기 좋은 책이 있다며 책의 한 구절을 읽어 주셨다.
'그러나 나는 작살 꽂힌 향유고래처럼 점점 더 바닷속으로 거꾸러졌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무엇하나 선명하게 밝혀진 것 없고, 누구 하나 나서서 책임지는 자가 없었다. 우리에게 점이 돼 흩어진 그 시간들을 부여잡고 진실이라는 실체를 마주하고자 하는 유가족들의 힘 잃은 절규만이 남아있다. 책 속 늙은 향유고래로 표현된 세월호의 외침처럼.
<세월 1994-2014>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출간한 그림책이다. 기억과 추모의 다큐멘터리 그림책.
1994년 일본에서 태어나 18년 넘게 운항했던 세월호가 한국의 바다에 투입된 지 1년여 만인 2014년, 304명의 소중한 생명과 함께 침몰하기까지, 세월호의 일인칭 시점으로 참사의 원인과 과정과 결과를 돌이켜보는 다큐멘터리 그림책이란다.
책의 글과 그림은 배를 늙은 향유고래에 비유해 많은 상징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배의 탄생부터 노후화, 불법개조, 침몰의 징조, 그리고 마지막 침몰의 순간까지를 그림과 함께 소개하는 부분을 읽으며 분노했다.
'그날이 오기 전 나는 끊임없이 불길한 징조를 보내 구조를 요청했다.'
배가 보낸 신호를 과연 그들은 몰랐을까? 그 시점에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과연 유병헌 일가와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 몇몇 공무원의 책임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이었을까? 그들을 처벌하고 밝혀진 진실이 있었나? 국가는 무엇을 밝히고, 무엇을 책임졌으며, 진실된 사과와 반성을 했는지 기억에 없다. 오히려 유가족들의 진실규명 요구를 묵살하고 사건을 덮어버리기에 급급했다. 그 시절의 국가와 정치인들의 파렴치함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 현실정치에 혐오만이 남았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세월호와 관련한 진실규명이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함과 동시에 국가와 정치의 역할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데 끝까지 싸운 정치인이 있는가? 그날의 진실을 끝까지 파헤쳐 최상위의 책임자들을 응징한 정부가 있는가?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기본 정신 앞에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정치와 정부는 여태 없었다. 만약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강력한 책임자 처벌이 있었다면 이태원참사와 채상병 사건 앞에 이리도 뻔뻔한 정부의 민낯을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증거다. 꿋꿋이 버티고 서서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죽음,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참사를 끝끝내 증언할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들이다. 반드시 증언할 기회가 오리라 믿는다. 책에서 점으로 표현돼 흩어지는 그날의 기억들을 촘촘히 모아 선을 만들고 면을 만들고, 결국에는 진실이라는 실체를 맞이할 것이다.
4.10 총선에서 헌정 사상 초유의 결과가 나왔다. 국민들이 당선자들에게 막대한 권력을 이양한 이유를 가슴 깊이 새겼으면 한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 왜 존재하는지 늘 각성하고 가슴의 배지가 국민의 명령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국민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정치를 하길 바란다. 국민을 섬기겠다는 마음이 지난날의 정치인들과 다름을 반드시 보여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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