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 당해본 경험이 만든 예술... "자꾸 질문하며 사세요"
여주양평 문화예술인들의 삶(19) 김상범 세라믹예술가
"전통적 도예로 본질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세라믹 조형으로 사회의 억압과 소외를 묘사하죠. 작가인 저뿐 아니라 관객도 자신이 차별받는지 판단케 하고 싶었죠. 해결책도 알아서 찾도록 하고요. 식탁에서 쫓겨난 사회적 약자를 초대하고 싶었어요. '덜어내기' 예술을 하며 또 하나 깨달은 건 일방적이란 거죠. 소통하는 예술을 해보려고요. 작가가 시작했지만, 완성은 관객에게 넘기는 거죠."
'여주양평 문화예술인들의 삶' 열아홉 번째 주인공 김상범 세라믹예술가(54·남, 이하 작가)의 말이다. 여주 강천면 굴암리 작업장에서 14일 만난 그는 노동자와 여성 등 억압받는 이들을 소재로 한 작품활동을, 구조적 차별에 소모품이 되고 만 이들을 구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를 만드는 노력이라고 했다.
하얀 조팝 향기 은은한 그의 일터. 이층 사랑방(게스트룸)에 오르다 본 하얀 두건(터번, 억압의 상징)을 쓴 얼굴에 푸른 잉크색을 입힌 여인의 머리 군집 조형물. 2021년 8월 초 열린 다섯 번째 개인전에 내놓은 작품 '트로피'란다.
피에타 비탄 묘사한 '트로피'로 세상 풍자
"죽은 예수를 안고 슬프게 내려다보는 마리아(비탄을 표현한 피에타) 이미지를 빌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얼굴을 묘사한 것이죠. 타자에 의해 자아가 강제 정립되고 보호라는 이름으로 착취당하는 이들의 저항정신을 표현하고 싶었죠. 사회시스템의 성공인양 여인을 정형화해 '트로피'처럼 자랑하는 세상을 조롱한 거죠."
소외된 이들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은 2020년 열린 네 번째 개인전 '플랫폼노동자'에서도 분명하게 다가왔다. '노동자의 식탁' 이름표를 달았는데, 인간이 생산하는 기계로 전락하고 소모돼 쓸모가 없어지면 치워버리니 정작 식탁에 앉지조차 못하는 현실을 담았다.
"제가 한 때 쿠O에서 비정규 노동자로 일한 적이 있어요. 반품 처리한 물품을 레일을 타고 다니며 처리하는 일을 했죠. 그냥 기계였어요.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죠. 획일적 인간을 만드는 교육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별이나 고통이 있어도 참으라는. 엘리트가 되려면 참고 고생하는 게 덕목이라고. 수능은 그 출발일까요."
그를 이 같은 예술세계로 끌고 들어간 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진보가 아닌 보수적 가치를 표현하고 있단다. 출발선만 같으면 된다는 기계적 평등을 넘어서 실질적(보정) 동등함을 인정하는 인식과 노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자신이 차별받는지, 바로 사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의 우두머리에 그걸 묻기 전 자신에게 먼저 묻고 해결책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거죠. 남들이 세운 깃발에 편승하기 앞서 스스로 깃발을 들고 길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때거든요."
그는 자신을 '세라믹예술가'라 불러달라고 했다. 흙을 사용해 거침(구속)없이 표현하는 예술. 인간의 보편적 아름다움은 도예로 보여주고, 억압이나 착취 등 사회시스템이 변질시켜 놓은 문제는 조형으로 표현한다고 했다. 색감도 제한적으로 활용한다. 많은 걸 표현하려고 욕심부리다 보면 상징성이 떨어진다는 것. 덜어내기가 필요하단다.
"전통적 아름다움과 사회적 문제를 혼합해 작품을 만들다 보면 종종 관객들이 거북해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룹전과 개인전의 소재와 장르를 좀 달리하는 거예요. 인간 본성을 표현하는 건 그룹전으로, 억압과 고통 등 사회 어두움을 다룰 땐 개인전으로 해보는 거죠."
완벽함은 더 이상 뺄 게 없을 때 이뤄진다던가. '어린 왕자'를 쓴 생텍쥐페리의 말이다. 현학이나 감정과잉을 줄이고 군더더기 없는 예술을 일컫는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할 때 간혹 등장한다. 제 작품을 '집중해 들을 필요 없는 음악'이라고 했던 피아니스트 에릭 사티도 같은 장르 예술가였다. 상징색을 제한적으로 사용한다는 김 작가는 '덜어내기'라 했다.
감정과잉 줄인 상징색 제한은 '덜어내기'
김 작가의 첫 개인전은 2011년 '공간가르기'. 벽면에 도자 새 80마리(작가 자신을 날개 하나뿐인 새로 표현)를 설치한 청년작가초대전(JH갤러리, 관훈동). 2·3회는 2012년 갤러리F9(통의동)에서 열린 '코발트블루'(인간 내면 희로애락 단색 표현)와 '검고희게'(코발트블루 연장전), 4회는 2020년 '플랫폼노동자'(여주시립미술관 려), 5·6회는 2021년(여주 백웅미술관)과 2024년(여주 도자문화센터) '트로피'와 '리바이벌 트로피'였다. 그룹전은 66회 가졌다.
그의 예술 시작은 의외였다. 서울태생인 그는 공고에서 요업(무기재료)을 공부했고, 대학에서 공업화학을 전공했다. 첫 취업을 예술가 공방에 했는데, 창작활동을 하며 민생고를 해결하는 길을 배웠다고 했다. 증조부가 부여에서 옹기장을 했다는 얘기도 들려줬는데, 도예 유전자로 보기엔 옹색했단다.
"아버지가 옹기장인 증조부 아래서 흙 밟는 일을 했다고 했어요. 그러다 쌀 팔아오라고 해 그 돈을 들고 서울로 튀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서울서 결혼까지 하고 부여에 내려갔는데, 증조부의 행방은 찾을 길 없고 조부모는 이미 돌아가셨다고 했어요."
그는 공방을 다니며 미래를 고민했다. 아버지는 사업이 잘되는 중장비업을 물려받으라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당시 대구 지하철 사고로 2백여명이 죽는 걸 보며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2005년 제가 일하던 공방 예술가 둘이 여주로 내려왔어요. 한 분은 도예를 하고, 또 한 분은 조형을 했죠. 두 장르를 같이 해봐야겠다 생각했죠. 그때 그분들 따라 여주에 와봤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도예에 필요한 흙 등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었으니까요. 저도 짐 싸 들고 내려왔죠."
그는 앞으로 '소통하는 예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간 일방의 예술을 해왔다면서. 첫 시도로 '광대' 소재의 개인전 '레드&레드'를 준비하고 있단다. 빨강 단색 실물 크기의 인체 조형물로 감정노동자의 아픔을 표현하려고 한단다. 여주 강천섬 야외전시장에서 올 10월 26일부터 1주일간 열 계획이다.
"광대를 제작 전시하고 관객에게 붓과 물감을 줘 작품을 완성하는 참여형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어요. 눈으로만 보는 관람에서 작가의 작품을 보완하고 완성하는 소통형 전시 및 예술을 해보려고요. 그간 작가의 의도를 일방적으로 전달했던 걸 반성하면서요."
여주민예총에는 그간 후원만 하다, 올해부터 시각예술위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여주도예작가협회 이사(종료)와 전통가마보존협회 총무(현재)를 하며 신비화한 도예기술 등을 과학화하는 일을 했고, 여주나날도자센터에서 유약개발 등의 일을 하고 있어 그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올 정월대보름에 '달빛태우기' 기획(여주민예총)을 처음 했는데 굴암리 주민 1백여명이 참여 호응했어요. 참여자에게 '애기 달집'을 만들게 하고 그걸 모아 태우며 전체의 소원을 하늘로 보내는 '큰달집' 행사였어요. 작은 불씨가 큰 소망이 됐다고 할까요. 후속으로 5월 22일(보름) 자연친화적 달빛음악회를 해보려고요."
소유 보다도 예술 선택한 '순박한 수고'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작가인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쌍소는 소유를 멀리하라며, 그 까닭을 궁핍을 모르게 하고 정체성을 부풀게 한다고 했다. 재물이 할 일을 대신하면 존재가치를 잃는다는 것. 가업 승계와 준비된 풍족을 마다하고 가난한 예술을 선택한 김 작가.
편리·편안에 마음을 팔려 '순박'을 잃지 말라는 장자((莊子)의 권고를 붙잡은 셈이다. 불편하지만 물동이로 밭에 물을 주는 '농부의 수고'는 과연 어떤 열매를 맺을까.
'여주양평 문화예술인들의 삶' 열아홉 번째 주인공 김상범 세라믹예술가(54·남, 이하 작가)의 말이다. 여주 강천면 굴암리 작업장에서 14일 만난 그는 노동자와 여성 등 억압받는 이들을 소재로 한 작품활동을, 구조적 차별에 소모품이 되고 만 이들을 구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를 만드는 노력이라고 했다.
▲ 김상범 세라믹예술가. ⓒ 최방식
피에타 비탄 묘사한 '트로피'로 세상 풍자
"죽은 예수를 안고 슬프게 내려다보는 마리아(비탄을 표현한 피에타) 이미지를 빌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얼굴을 묘사한 것이죠. 타자에 의해 자아가 강제 정립되고 보호라는 이름으로 착취당하는 이들의 저항정신을 표현하고 싶었죠. 사회시스템의 성공인양 여인을 정형화해 '트로피'처럼 자랑하는 세상을 조롱한 거죠."
소외된 이들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은 2020년 열린 네 번째 개인전 '플랫폼노동자'에서도 분명하게 다가왔다. '노동자의 식탁' 이름표를 달았는데, 인간이 생산하는 기계로 전락하고 소모돼 쓸모가 없어지면 치워버리니 정작 식탁에 앉지조차 못하는 현실을 담았다.
"제가 한 때 쿠O에서 비정규 노동자로 일한 적이 있어요. 반품 처리한 물품을 레일을 타고 다니며 처리하는 일을 했죠. 그냥 기계였어요.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죠. 획일적 인간을 만드는 교육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별이나 고통이 있어도 참으라는. 엘리트가 되려면 참고 고생하는 게 덕목이라고. 수능은 그 출발일까요."
그를 이 같은 예술세계로 끌고 들어간 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진보가 아닌 보수적 가치를 표현하고 있단다. 출발선만 같으면 된다는 기계적 평등을 넘어서 실질적(보정) 동등함을 인정하는 인식과 노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자신이 차별받는지, 바로 사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의 우두머리에 그걸 묻기 전 자신에게 먼저 묻고 해결책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거죠. 남들이 세운 깃발에 편승하기 앞서 스스로 깃발을 들고 길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때거든요."
그는 자신을 '세라믹예술가'라 불러달라고 했다. 흙을 사용해 거침(구속)없이 표현하는 예술. 인간의 보편적 아름다움은 도예로 보여주고, 억압이나 착취 등 사회시스템이 변질시켜 놓은 문제는 조형으로 표현한다고 했다. 색감도 제한적으로 활용한다. 많은 걸 표현하려고 욕심부리다 보면 상징성이 떨어진다는 것. 덜어내기가 필요하단다.
"전통적 아름다움과 사회적 문제를 혼합해 작품을 만들다 보면 종종 관객들이 거북해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룹전과 개인전의 소재와 장르를 좀 달리하는 거예요. 인간 본성을 표현하는 건 그룹전으로, 억압과 고통 등 사회 어두움을 다룰 땐 개인전으로 해보는 거죠."
▲ 김 작가의 다섯 번째 개인전 ‘트로피’. 여주 백웅미술관에서 2021년 열렸다. ⓒ 최방식
완벽함은 더 이상 뺄 게 없을 때 이뤄진다던가. '어린 왕자'를 쓴 생텍쥐페리의 말이다. 현학이나 감정과잉을 줄이고 군더더기 없는 예술을 일컫는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할 때 간혹 등장한다. 제 작품을 '집중해 들을 필요 없는 음악'이라고 했던 피아니스트 에릭 사티도 같은 장르 예술가였다. 상징색을 제한적으로 사용한다는 김 작가는 '덜어내기'라 했다.
감정과잉 줄인 상징색 제한은 '덜어내기'
김 작가의 첫 개인전은 2011년 '공간가르기'. 벽면에 도자 새 80마리(작가 자신을 날개 하나뿐인 새로 표현)를 설치한 청년작가초대전(JH갤러리, 관훈동). 2·3회는 2012년 갤러리F9(통의동)에서 열린 '코발트블루'(인간 내면 희로애락 단색 표현)와 '검고희게'(코발트블루 연장전), 4회는 2020년 '플랫폼노동자'(여주시립미술관 려), 5·6회는 2021년(여주 백웅미술관)과 2024년(여주 도자문화센터) '트로피'와 '리바이벌 트로피'였다. 그룹전은 66회 가졌다.
그의 예술 시작은 의외였다. 서울태생인 그는 공고에서 요업(무기재료)을 공부했고, 대학에서 공업화학을 전공했다. 첫 취업을 예술가 공방에 했는데, 창작활동을 하며 민생고를 해결하는 길을 배웠다고 했다. 증조부가 부여에서 옹기장을 했다는 얘기도 들려줬는데, 도예 유전자로 보기엔 옹색했단다.
"아버지가 옹기장인 증조부 아래서 흙 밟는 일을 했다고 했어요. 그러다 쌀 팔아오라고 해 그 돈을 들고 서울로 튀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서울서 결혼까지 하고 부여에 내려갔는데, 증조부의 행방은 찾을 길 없고 조부모는 이미 돌아가셨다고 했어요."
그는 공방을 다니며 미래를 고민했다. 아버지는 사업이 잘되는 중장비업을 물려받으라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당시 대구 지하철 사고로 2백여명이 죽는 걸 보며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2005년 제가 일하던 공방 예술가 둘이 여주로 내려왔어요. 한 분은 도예를 하고, 또 한 분은 조형을 했죠. 두 장르를 같이 해봐야겠다 생각했죠. 그때 그분들 따라 여주에 와봤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도예에 필요한 흙 등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었으니까요. 저도 짐 싸 들고 내려왔죠."
그는 앞으로 '소통하는 예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간 일방의 예술을 해왔다면서. 첫 시도로 '광대' 소재의 개인전 '레드&레드'를 준비하고 있단다. 빨강 단색 실물 크기의 인체 조형물로 감정노동자의 아픔을 표현하려고 한단다. 여주 강천섬 야외전시장에서 올 10월 26일부터 1주일간 열 계획이다.
"광대를 제작 전시하고 관객에게 붓과 물감을 줘 작품을 완성하는 참여형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어요. 눈으로만 보는 관람에서 작가의 작품을 보완하고 완성하는 소통형 전시 및 예술을 해보려고요. 그간 작가의 의도를 일방적으로 전달했던 걸 반성하면서요."
▲ 김 작가의 여주 굴암리 작업실 풍경. ⓒ 최방식
여주민예총에는 그간 후원만 하다, 올해부터 시각예술위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여주도예작가협회 이사(종료)와 전통가마보존협회 총무(현재)를 하며 신비화한 도예기술 등을 과학화하는 일을 했고, 여주나날도자센터에서 유약개발 등의 일을 하고 있어 그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올 정월대보름에 '달빛태우기' 기획(여주민예총)을 처음 했는데 굴암리 주민 1백여명이 참여 호응했어요. 참여자에게 '애기 달집'을 만들게 하고 그걸 모아 태우며 전체의 소원을 하늘로 보내는 '큰달집' 행사였어요. 작은 불씨가 큰 소망이 됐다고 할까요. 후속으로 5월 22일(보름) 자연친화적 달빛음악회를 해보려고요."
소유 보다도 예술 선택한 '순박한 수고'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작가인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쌍소는 소유를 멀리하라며, 그 까닭을 궁핍을 모르게 하고 정체성을 부풀게 한다고 했다. 재물이 할 일을 대신하면 존재가치를 잃는다는 것. 가업 승계와 준비된 풍족을 마다하고 가난한 예술을 선택한 김 작가.
편리·편안에 마음을 팔려 '순박'을 잃지 말라는 장자((莊子)의 권고를 붙잡은 셈이다. 불편하지만 물동이로 밭에 물을 주는 '농부의 수고'는 과연 어떤 열매를 맺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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