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과 만난 HBO+박찬욱 '동조자'... 또 하나의 역작 될까?
[리뷰] 베트남 전쟁 속 이중 스파이 이야기... TV에서도 돋보인 박 감독의 역량
▲ 지난 15일 쿠팡플레이를 통해 첫 회가 공개된 HBO '동조자'의 주요 장면 ⓒ 쿠팡플레이
최근 OTT 후발주자로 구독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 쿠팡플레이가 미국 최신 드라마 시리즈를 현지와 동시에 공개했다. 15일 오후 1회가 소개된 미국 케이블 채널 HBO 7부작 <동조자>가 그 주인공이다. 동명의 퓰리처상 수상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이 작품은 제작 단계부터 관심을 모았다. 그 이유는 거장 박찬욱 감독이 제작, 연출, 대본을 맡은 TV 시리즈물이라는 점이다.
할리우드 스타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출연 뿐만 아니라 공동제작자로 나서면서 작품 공개 전부터 단숨에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지난 2018년 영국 BBC와 손잡고 6부작 첩보물 <리틀 드러머 걸>을 만든 이래 약 6년 만에 TV 드라마를 담당하게 된 박 감독으로선 다시 한번 해외 시청자들을 그의 작품 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이름 모를 주인공의 베트남 전쟁 회고담
▲ 지난 15일 쿠팡플레이를 통해 첫 회가 공개된 HBO '동조자'의 주요 장면 ⓒ 쿠팡플레이
<동조자>는 어느 수용소에 갇힌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원작 소설에서도 줄곧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 주인공 (편의상 '나'로 지칭하겠다. 호아 수안데 분)은 남 베트남 장교다. 프랑스 혼혈로 태어나 역시 실명이 전혀 거론되지 않는 어느 '장군'(또안 르 분)을 수행하는 그는 미국 CIA가 베트남 군대 내부에 심어 놓은 비밀요원이다.
그런가하면 북 베트남(베트콩)의 간첩이기도 하다. 이중에 걸친 스파이 노릇을 하면서 각종 기밀을 취득해 빼돌리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나'에겐 이제 막 자식을 얻어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본', 역시 북베트남의 첩보원 역할을 하던 '만'이라는 두 명의 의형제 같은 친구도 있다.
베트남 전쟁이 막바지에 도달하자 장군은 미국 CIA 요원 클로드(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에게 이곳을 탈출할 수 있는 비행기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사이공 함락이 이제 멀지 않았음을 직감하게 된 장군으로선 가족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가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장군을 미국에 보내고 베트남에 남으려던 '나'의 생각과 달리, '만'은 장군을 따라 미국으로 가라고 조언한다. 그곳에 가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라는 것이었다.
웨이브와 사실상 결별한 HBO, 쿠팡플레이와 손잡나?
▲ 지난 15일 쿠팡플레이를 통해 첫 회가 공개된 HBO '동조자'의 주요 장면 ⓒ 쿠팡플레이
불과 한두 해 전이었다면 웨이브에서 공개되었어야 할 <동조자>는 어떤 연유로 쿠팡플레이를 통해 한국 서비스가 이뤄지는 것일까? 그동안 HBO 및 워너브러더스 계열 작품은 웨이브를 통해 독점에 가깝게 제공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속속 작품 공급 계약이 종료되면서 HBO의 상당수 작품들은 웨이브에서 이제 자취를 감췄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웨이브의 누적된 적자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2021년 558억 원, 2022년 1213억 원, 그리고 지난해 791억 원 영업 손실을 내면서 신작 구매를 위한 자금 투입이 더 이상 쉽지 않아졌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반면 한때 독자적인 한국 진출을 모색하다 계획을 접은 HBO로선 새로운 파트너 확보가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일단 쿠팡에 <동조자> 공급 계약을 맺고 추이를 지켜보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한편 쿠팡 또한 손흥민 내한 경기, 메이저리그 서울시리즈 등 스포츠 이벤트로 자사 서비스 이용률을 높이긴 했지만 드라마, 영화 분야 콘텐츠 열세는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했기에 단발성 계약이지만 HBO 신작을 확보해 또 한번의 관심을 받고 있다. 현재로선 HBO 콘텐츠 추가 계약 가능성에 대해 쿠팡 측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선과 악의 경계가 불분명한 베트남전... 박찬욱의 새로운 역작 될까?
▲ 지난 15일 쿠팡플레이를 통해 첫 회가 공개된 HBO '동조자'의 주요 장면 ⓒ 쿠팡플레이
단지 '미국물을 많이 먹었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갇혀 1년에 동안 써 내려간 진술서의 내용이 원작 소설의 빼대를 이룬 것처럼 드라마 역시 이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동조자> 1회는 주요 등장 캐릭터를 소개하는 것과 더불어 극중 배경이 된 1975년 베트남을 담아내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이럴 경우, 자칫 지루한 전개로 치우치면서 시청자들을 놓치는 드라마가 종종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이와 같은 우려를 단숨에 불식시킨다. 엄청난 물량 투입이 이뤄진 사이공 시내 재현과 포격 및 폭발, 다양한 CG는 HBO의 든든한 지원이 뒷받침되면서 영화 이상의 볼거리를 마련한다.
<동조자> 속 일정 부분은 24년 전 걸작 < 공동경비구역 JSA >에서 던졌던 질문에 대한 새로운 고민처럼 느껴진다. 프랑스계 혼혈 주인공은 남베트남과 북베트남, 그리고 미국에 발을 걸쳐 있지만 세 곳 모두에서 그리 환영받는 인물은 아니다. 이는 < JSA > 속 스위스 국적 한국계 군인 소피(이영애 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북과 남의 대치 상황 속 주인공의 심적 갈등 또한 그때를 회고하게 만든다.
베트남 전쟁은 여러 영화에서 다룬 것처럼 선과 악이 명확치 않은, 불분명한 명분을 놓고 벌인 의미 없는 희생이라는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곤 한다. <동조자>는 이에 한 발 더 나아가 블랙 코미디적 요소를 가미하면서 다양한 미장센과 트랜지션(화면 전환)을 활용하는 박 감독 특유의 연출 기법을 총동원해 극장 밖 작은 화면에서도 엄청난 흡인력을 발휘한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옛말을 그대로 입증해낸다. 아직 6회분이 더 남아 있지만 <동조자>는 첫회부터 박찬욱이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보여줬다.
덧붙이는 글
김상화 칼럼니스트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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