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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 하면 압수수색" 풍자가 넘치는 코미디극 '스카팽'

[안지훈의 3인칭 관객 시점] 최신 이슈로 무장하고 열린 객석으로 돌아온 연극 <스카팽>

등록|2024.04.23 09:49 수정|2024.04.23 09:50

▲ 연극 <스카팽> 공연사진 ⓒ 국립극단


프랑스어를 '몰리에르의 언어'라 부를 만큼, 문학 평론가 해럴드 블룸이 셰익스피어에 필적할 만한 유일한 극작가라 평할 만큼 위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 몰리에르의 <스카팽>이 공연된다는 소식을 지인으로부터 처음 접했다. 그리고 공연 정보를 찾아보던 중 '열린 객석'이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다.

<스카팽>을 공연하는 국립극단의 설명을 빌리자면, '열린 객석'이란 자폐 스펙트럼 장애나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관객을 비롯해 감각 자극에 민감하거나 경직된 환경에서 관람하는 것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 대내·외적 환경을 조절한 '릴렉스드 퍼포먼스'를 지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연 중에라도 자율적인 출입이 가능한 것은 물론, 공연 중 소리를 내거나 좌석 내에서의 움직임을 크게 제지하지 않는다. 공연 전 대본을 미리 볼 수도 있고, 극장 로비에 작게 재현해놓은 무대 모형을 관객이 먼저 만져볼 수도 있으며, 애착 인형을 소지하고 관람하는 것도 가능하다. 음성 해설, 수어 통역, 한글 자막 등을 제공하는 이른바 '접근성 회차'도 편성했다.

최근에도 공연 관람 태도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고, 여전히 경직된 태도로 관람하는(좋게 말해 관객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런 피해나 영향을 주지 않으며 관람하는) 게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국립극단의 시도가 참 반가웠다. 닫혀있는, 혹은 누군가에게만 열려있는 객석 문이 <스카팽>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열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객석에 앉았다.

신랄한 풍자로 한국 사회에서 동시대성 확보
 

▲ 연극 <스카팽> 공연사진 ⓒ 국립극단


재벌가의 정략 결혼으로부터 청년들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하인 '스카팽'이 계략을 꾸미는 이야기를 담은 <스카팽>은 코미디로 무장한 희극이다. 모두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채 무대에 등장하고, 익살스러운 톤으로 대사를 소화하며, 웃음을 부르는 몸 개그나 감탄을 자아내는 몸짓으로 가득하다. 즉흥적인 연기, 즉 애드리브도 많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고 가벼운 분위기로 공연이 지속되지만, 한 번씩 촌철살인의 대사로 풍자가 이루어진다. 필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감탄했다. 매우 적극적으로 풍자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적정한 선을 알고 달리는 게 놀라웠다. 또 각색을 통해 최근 이슈만을 언급하도록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터.

무대에서 후쿠시마 농·수산물에 관한 언급이 이뤄지자 객석에선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온다. 이어 "이런 말 하면 압수수색 당한다"는 대사가 등장하고, 이에 "더 한 것도 소환조사조차 안 한다"는 반론이 이어진다. 윤석열 정부 들어 두드러진 검찰권의 과도한 행사, 측근 비리 무마 의혹을 겨냥한 대사다. 이후에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된다느니, 검사가 장악한다느니 하는 언급이 쏟아진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을 겨냥한 듯 "재판 받을 것 같으면 호주로 도망가면 된다"는 대사도 등장한다. "국정 기조를 바꾸셔야 합니다"라는 강성희 진보당 의원의 외침은 "자식 교육 기조를 바꾸셔야 합니다"라는 대사로, "R&D 예산을 복원하십시오"라는 카이스트 졸업생의 외침은 "교육 예산을 복원하십시오"라는 대사로 바뀌고, 대사를 소화한 배우는 입이 틀어막히고 사지가 들린 채 끌려나간다. 공연 도중 "풍자는 권리"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을 성대모사로 전하며 풍자에 힘을 싣는다.

정치 권력을 향한 풍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축구 국가대표팀 탁구 사건'을 겨냥한 언급도 있다. 이전 시즌 공연에는 '땅콩회항'을 패러디하고, 당사자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음성을 사용하기도 했단다. 약 350년 전 프랑스에서 쓰여진 <스카팽>은 유쾌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풍자를 통해 동시대성을 확보했다. <스카팽>이 2024년 한국에서 관객으로부터 유효하다고 인정받는 건, 바로 이 덕분 아니겠는가.

눈치 보지 않고 문제 의식을 공유할 때에야 비로소 예술은 사회적 역할을 다하며 공동체 속에서 숨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무엇보다 예술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할 수 있는 환경이라야 예술이 온전히 살아있을 수 있다. 그렇게 암울한 상황에서도 예술을 통해 미래를 그릴 수 있길, '열린 객석'의 <스카팽>과 함께 희망해본다.

한편, <스카팽>은 이중현, 성원, 박경주, 이호철, 이다혜, 안창현, 정다연, 문예주, 이혜미, 이후징이 원캐스트로 출연하고, 구본혁이 연주자 역할을 맡는다. '신체극의 대가'라 불리는 임도완이 연출과 각색을 맡았다. 오는 5월 6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 연극 <스카팽> 공연사진 ⓒ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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