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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타악'... 말풍선은 없지만 이해되는 만화

[서평] 때로는 독특한 '형식'이 즐거움이 된다...사라 바론의 〈로봇 드림〉

등록|2024.04.24 11:43 수정|2024.04.24 11:43
만화는 칸과 칸 사이를 상상의 영역으로 채우는 장르다. 그러니까 만화가 그려진 칸과 칸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상상으로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서 즐거움의 크기가 달라진다. 같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어떤 독자는 칸과 칸 사이를 흥분된 마음으로 채울 수 있고, 어떤 독자는 미지근한 감정으로 채울 수 있다.

앞의 독자는 그 만화를 호평할 것이고, 뒤의 독자는 그 만화를 덜 재미있다며 투덜거릴 수 있다. 작품 자체의 솜씨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독자의 상상력이 값지다는 말이다. 이것은 만화가 가진 독특한 형식이다. 세로 스크롤이 다수인 웹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로에서 세로로 칸의 흐름이 바뀌었을 뿐, 웹툰의 시대에도 칸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상의 영역은 만화에서 여전히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 〈로봇 드림〉 표지 ⓒ 다산북스


오늘 소개할 사라 바론의 신작 그래픽 노블 〈로봇 드림〉(2024, 다산북스)도 만화의 형식인 '상상'이 중요하게 작동하는 텍스트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 작품에선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말풍선이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사에 해당하는 말풍선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거의 없다고 판단해도 좋을 만큼 말풍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들은 만화의 영역에서 친절한 역할을 해왔던 말풍선의 도움 없이 상상력 하나만으로 긴 이야기의 흐름을 채워나가야 한다. 말풍선 없이 이어지는 흐름이 존재하기에 칸과 칸 사이를 능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여기서 '능동'은 독자가 지닌 상상의 힘이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사라 바론의 작품을 두고 "극중 어떤 대사도 없이 진행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에는 조금 어폐가 있다. 어떤 대사도 없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작품의 작가는 만화에서 중요한 말풍선을 포기하는 대신, 의도적으로 사물이나 장소나 상황을 나타내는 명사에 신경을 썼다.
 

▲ 〈로봇 드림〉 45쪽 ⓒ 다산북스


무엇보다 '청각'적인 요소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점에서, 다른 방식으로 말풍선을 이용한 것이나 다름없다. 가령, 작중 주인공인 '도그(개)'가 꼬리를 흔들 때, "파다닥"이라는 부사를 사용한다거나, 또 다른 주인공인 '로봇'이 바다에 들어갔다가 녹슬어 움직이지 못하는 장면에서 "끼이이이이익"이라는 소리를 텍스트에 기입하는 방식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두 요소(청각, 명사)는 이 책이 끝날 때까지 적절한 순간에 배치된다. 구체적으로 말해 이 작품에선 청각뿐만 아니라 명사의 역할을 통해 작중 주인공이 어떤 공간이나 장소 또는 상황에 놓여 있는지 설명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러니 독자들의 경우, 굳이 말풍선이 없어도 만화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다.

사라 바론의 〈로봇 드림〉을 탐닉할 때는 장소(공간)와 상황을 알려주는 명사와 소리(청각) 쓰임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럴 때, 이 작품을 심도 있게 읽을 수 있다.


만화 형식에 대한 부분은 이쯤 해두고 이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줄거리를 짧게 소개해야겠다. 도그는 외롭고 높고 쓸쓸해 로봇을 구입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로봇은 도그와 함께 영화도 보고 해수욕장도 다니니 단순한 로봇이기보다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2045〉(2017)에서 등장하는 영리한 AI 로봇처럼 지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로봇을 도그는 '손쉽게' 구입 해 외로움을 달랜다. 이 과정에서 도그는 로봇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정이 쌓인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주인공은 바닷가로 휴가를 떠나게 된다. 이때 문제가 발생한다. 바닷물에 들어가면 녹이 슨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그가 자신과 함께 바다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면 행복할 거라는 마음에 로봇은 망설임 없이 바다로 몸을 던지기 때문이다. 이 판단으로 로봇의 몸은 망가진다.

사랑, 누군가가 더 행복하기를 바라는 소중한 마음

이 사건 이후로 로봇은 움직이지 못한 채 해수욕장에 오랜 시간 방치된다. 도그 또한 로봇을 고치려고 애쓰지만, 마음처럼 잘되지 않아 끝내는 마음을 접고 해변을 떠난다. 로봇은 도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버려지게 된 것이다. 비극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로봇은 도그와 함께 보낸 시간을 잊지 못한 채, 오랜 시간 버려진 그 장소에서 도그를 그리워하며 기다리기 때문이다.

시인 서정주의 <신부>라는 시에 등장하는 신부처럼 자신이 부서질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짠한 것은 도그 또한 로봇과 같은 마음이라는 점이다. 간절한 이 마음을 지우기 힘들다. 하지만 도그는 해결책이 없자 마음을 접는다. 슬프지만 이 둘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바닷가에 버려진 로봇은 쓰레기로 분류되어 폐기되고, 운 좋게 누군가에 의해 다시 라디오를 장착한 채 재탄생 되었기 때문이다. 버려진 로봇은 과거에는 말하지 못했지만 새롭게 수리된 이후, 라디오를 갖게 된 탓에 음악을 틀을 수 있는 쓸모를 얻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로봇은 우연히 도그가 새로운 로봇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로봇은 자신의 자리가 다른 누군가로 채워진 것을 보고 가슴 아파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장면에서 질투나 증오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자신을 잊은 도그를 위해 그(로봇)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을 해준다. 그것은 바로 도그가 다른 로봇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저 멀리서 편안한 노래를 틀어주는 것이다. 버려진 로봇은 슬프지만 도그를 위해 그 역할을 망설임 없이 수행한다. 과거에 자신의 몸을 바다로 던진 것처럼.

그렇다면 독자들은 이제 이 작품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말할 수 없는 '사랑'이다. 이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 조금은 더 행복할 수 있도록 애써주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런 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애틋한 마음을 지금은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현실 속에서 얽매여 살다 보니 정말 중요한 '사랑'의 마음을 놓친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사랑은 특별한 것이라기보다는 누군가가 더 행복하기를 바라는 소소하지만 소중한 마음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사라 바론의 최근 신작 〈로봇 드림〉은 이처럼 청각과 명사를 호명하는 방식만으로 '사랑'의 메시지를 매끄럽게 전달한다. 무엇보다도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테마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새로운 형식이 운용되다 보니 그 맛이 독특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독특한 '형식'이 즐거움 자체이기도 하겠다. 만화의 형식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에게 이 텍스트를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을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 공유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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