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산 진달래꽃 보러 갔다 그만, 긴급 출동 하고 말았다
9일 간의 거제 여행 중 마주친 크고 작은 난관들
'여기가 맞는 거여? 아닌 거여?'
뭔가 마음이 불안해지는데 침착함이 필요할 때면 내 맘대로 충청도 사투리를 소환하는 경상도 여자가, 거제의 작은 언덕을 헤매고 있었다.
경남 거제 지세포진성 주변은 매년 5, 6월이면 금계국, 수국, 라벤더 등이 피는 꽃동산이 된다고 했다. 내가 간 날은 4월 초였으니 아직 꽃이 있을 리 없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한적하니 좋을 것 같아 가볍게 혼자 오른 길이었다.
입구를 찾다 지세포 방파제 옆 산길로 들어섰다. 가는 길이 다소 거칠었다. 돌길, 흙길로 이뤄진 좁은 길만 자꾸 나왔다. 이 길이 맞는 걸까 싶었다. 살짝 불안해지는 와중에도 우연히 만난 아담한 유채꽃밭은 노랗게 소담스러웠다. 어느 정도 걷자 돌을 쌓아 만든 성벽의 일부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 잔잔한 바다를 가르며 어딘가로 향하는 배. 꽃동산은 없었지만 성벽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탁 트여 시원하고 평화로웠다.
그렇게 잠시 풍경을 눈에 담은 뒤 돌아가는 길, 선창마을로 가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이 길은 좀 나을까 싶어서 왔던 길과 다른 방향의 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하지만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파르고 좁은 흙길을 디디며 다시 한 번 긴가민가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라 괜히 더 불안했던 마음은, 옹기종기 붙어 있는 집들을 만났을 때야 사라졌다.
나무가 우거져 저절로 만들어진 예쁜 포토존을 발견하기도 하고, 봄볕에 잘 말라가는 빨랫줄에 걸린 수건에 기분도 금세 보송해졌다. 좁은 계단 한쪽, 지게에 놓인 시멘트 포대마저도 정겨웠다. 그때서야 선창마을 곁 아름다운 바다도 더 마음 놓고 바라볼 수 있었다.
딱히 헤맬 것 없는 동네 뒷산 정도인데, 나는 왜 이 아름다운 여행지에서의 산책을 즐기지 못했을까. 꽃동산이라니 편한 길이겠지 생각하며 오른 길이 예상치 못하게 흙길이어서 그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애초에 지세포진성은 조선시대 때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벽이었다. 성벽 주변의 길이 평탄할 리 없는데, 별 생각 없이 올랐다 제풀에 당황했다.
거제 여행 이틀 차, 아이가 아프다
그러고 보니 거제로 떠난 9일 간의 봄 여행은 분명 온통 꽃길이었는데, 꽃길이 아닌 순간들도 종종 있었다.
벚꽃, 유채꽃, 튤립, 철쭉 등등, 막 도착한 4월 초의 거제는 그야말로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꽃밭이었다. 꽃길을 원 없이 보던 여행 이틀 차 저녁, 아이는 남편과 영상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주말을 함께 보낸 남편은 출근을 위해 거제를 떠난 후였다. 다가오는 주말에야 다시 거제로 오기로 돼 있었다.
피곤해하긴 했지만 잘 놀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며 힘들어했다. 그리고 이내 토를 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그날 밤, 한가득 걱정인 채 아이 곁을 지켰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소아과로 향했다. 그런데 가는 길이 벚꽃길이었다. 아름 아름 넘치게도 화사한 분홍빛 꽃송이들이 가득했다. 이런 걸 웃프다고 하는 걸까. 다행히도 아이는 병원에서 가벼운 장염 약을 처방받은 뒤 금세 컨디션을 되찾았다.
하지만 또 다른 난관이 아직도 남아있을 줄이야.
여행이 하루밖에 남지 않은 날이었다. 넓고 푸른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인데, 그 산을 진달래가 소복이 뒤덮고 있는 사진을 봤다. 대금산이었다.
거제의 북쪽에 위치한 대금산은 신라 때 쇠(金)를 생산했던 곳이라 하여 대금산이라 했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 산을 수놓은 진달래와 억새가 비단결같이 아름다워 '큰 대(大)', '비단 금(錦)'자를 써서 대금산이라 불린다고 했다.
진달래 가득한 사진 한 장에 이끌려 대금산으로 향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 애초 산은 갈 엄두도 내지 않았지만, 이곳은 대금산 주차장까지 차로 갈 수 있다고 했다.
울퉁불퉁 비포장도로가 이어지는 임도를 지나 점점 높이 올라갈수록, 차창 밖 풍경도 확연히 달라졌다. 숲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는 바다가 벌써부터 아름다웠다.
잠시 후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뒤 걸어 올라가는 길, 아쉽게도 개화시기를 못 맞춘 건지 진달래 뒤덮인 대금산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기도, 떨어진 벚꽃잎을 줍기도 하며 천천히 산을 올랐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 드문드문 진달래꽃을 볼 수 있었다. 진달래가 만개할 때는 진달래 터널이 이어져 상상만으로도 예쁠 듯 했다. 그렇게 오른 대금산 정상은 탁 트인 바다 전망만으로도 충분히 멋졌다. 바다 위 크고 작은 섬들과 거가대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며 산과 바다와 섬이 만들어낸 그림을 한동안 바라봤다. 그렇게 산행을 마친 뒤 차를 타고 대금산을 다시 내려가는 길이었다. 임도인지라 길이 그리 넓지 않았는데 맞은편, 올라오는 차 한 대가 보였다. 남편은 후진으로 지나갈 공간을 만들어줬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맞은편 차의 운전자가 그대로 지나가지 않고 이내 차에서 내렸다. 따라 내리다 뜻밖의 광경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낙엽으로 잔뜩 뒤덮여 있어서 미처 보지 못한 커다란 배수구 구멍에 차 뒷바퀴가 움푹 빠져 있었다. 천천히 후진했던 터라 덜컹 거리는 낌새는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 차 뒤로 또 다른 차 한 대가 섰다. 차에 있던 분들이 내려서 함께 차를 들어 올리려 시도했다. 쉽지 않았다. 거듭 된 시도 끝에 결국엔 긴급출동을 부르려는데, 이번엔 통화권 이탈 지역인 듯 통화가 안 됐다.
상황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잘 있던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별일 아니라고 달래주고 있는데, 도와주던 한 분께서 자신의 차에 가 있으라 거듭 권해 주셨다.
이리저리 신호가 잡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무사히 통화가 된 후에야, 우릴 도와주던 분들은 자리를 떠났다. 가족들과 함께 대금산 나들이를 온 듯한 거제 주민 분들 같았는데, 무척이나 감사했다.
지세포성 헤매기, 장염, 긴급출동. 이쯤 되자 긴급출동을 기다리다 순간 물음표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여행을 왜 하는 걸까?'
여행은 마냥 즐거울 때도 있지만, 이번 여행처럼 종종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난관에 부딪칠 때도 있다. 그럼에도 20대 때부터 지금까지 기회가 될 때마다 자주 여행을 했다.
정말로 나는 여행을 왜 하는 걸까? 좋은 경치를 보고 싶어서, 고민이 있어서, 쉬고 싶어서, 기분 전환이 필요해서, 돌아오기 위해서.
이런 저런 여행의 이유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관뒀다. 좋아서 하는 일에 의미를 찾는 건 무의미했다.
그저 어느 날 문득, 떨어지는 벚꽃잎을 신나게 줍던 아이의 작은 손이 기억나겠지. 긴급출동 해프닝을 떠올리며 잠시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도 떠올릴 테지.
그러니 또 여행을 떠날 것이다. 어디든.
뭔가 마음이 불안해지는데 침착함이 필요할 때면 내 맘대로 충청도 사투리를 소환하는 경상도 여자가, 거제의 작은 언덕을 헤매고 있었다.
입구를 찾다 지세포 방파제 옆 산길로 들어섰다. 가는 길이 다소 거칠었다. 돌길, 흙길로 이뤄진 좁은 길만 자꾸 나왔다. 이 길이 맞는 걸까 싶었다. 살짝 불안해지는 와중에도 우연히 만난 아담한 유채꽃밭은 노랗게 소담스러웠다. 어느 정도 걷자 돌을 쌓아 만든 성벽의 일부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 잔잔한 바다를 가르며 어딘가로 향하는 배. 꽃동산은 없었지만 성벽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탁 트여 시원하고 평화로웠다.
그렇게 잠시 풍경을 눈에 담은 뒤 돌아가는 길, 선창마을로 가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이 길은 좀 나을까 싶어서 왔던 길과 다른 방향의 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하지만 별반 다르지 않았다.
▲ 돌이 군데 군데 놓인 지세포진성 흙길 ⓒ 배은설
가파르고 좁은 흙길을 디디며 다시 한 번 긴가민가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라 괜히 더 불안했던 마음은, 옹기종기 붙어 있는 집들을 만났을 때야 사라졌다.
나무가 우거져 저절로 만들어진 예쁜 포토존을 발견하기도 하고, 봄볕에 잘 말라가는 빨랫줄에 걸린 수건에 기분도 금세 보송해졌다. 좁은 계단 한쪽, 지게에 놓인 시멘트 포대마저도 정겨웠다. 그때서야 선창마을 곁 아름다운 바다도 더 마음 놓고 바라볼 수 있었다.
▲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거제 선창마을 ⓒ 배은설
딱히 헤맬 것 없는 동네 뒷산 정도인데, 나는 왜 이 아름다운 여행지에서의 산책을 즐기지 못했을까. 꽃동산이라니 편한 길이겠지 생각하며 오른 길이 예상치 못하게 흙길이어서 그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애초에 지세포진성은 조선시대 때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벽이었다. 성벽 주변의 길이 평탄할 리 없는데, 별 생각 없이 올랐다 제풀에 당황했다.
거제 여행 이틀 차, 아이가 아프다
그러고 보니 거제로 떠난 9일 간의 봄 여행은 분명 온통 꽃길이었는데, 꽃길이 아닌 순간들도 종종 있었다.
벚꽃, 유채꽃, 튤립, 철쭉 등등, 막 도착한 4월 초의 거제는 그야말로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꽃밭이었다. 꽃길을 원 없이 보던 여행 이틀 차 저녁, 아이는 남편과 영상 통화를 하던 중이었다. 주말을 함께 보낸 남편은 출근을 위해 거제를 떠난 후였다. 다가오는 주말에야 다시 거제로 오기로 돼 있었다.
피곤해하긴 했지만 잘 놀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며 힘들어했다. 그리고 이내 토를 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그날 밤, 한가득 걱정인 채 아이 곁을 지켰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소아과로 향했다. 그런데 가는 길이 벚꽃길이었다. 아름 아름 넘치게도 화사한 분홍빛 꽃송이들이 가득했다. 이런 걸 웃프다고 하는 걸까. 다행히도 아이는 병원에서 가벼운 장염 약을 처방받은 뒤 금세 컨디션을 되찾았다.
▲ 거제 봄여행 중 만난 수많은 벚나무 중 한 그루 ⓒ 배은설
하지만 또 다른 난관이 아직도 남아있을 줄이야.
여행이 하루밖에 남지 않은 날이었다. 넓고 푸른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인데, 그 산을 진달래가 소복이 뒤덮고 있는 사진을 봤다. 대금산이었다.
거제의 북쪽에 위치한 대금산은 신라 때 쇠(金)를 생산했던 곳이라 하여 대금산이라 했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 산을 수놓은 진달래와 억새가 비단결같이 아름다워 '큰 대(大)', '비단 금(錦)'자를 써서 대금산이라 불린다고 했다.
진달래 가득한 사진 한 장에 이끌려 대금산으로 향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 애초 산은 갈 엄두도 내지 않았지만, 이곳은 대금산 주차장까지 차로 갈 수 있다고 했다.
울퉁불퉁 비포장도로가 이어지는 임도를 지나 점점 높이 올라갈수록, 차창 밖 풍경도 확연히 달라졌다. 숲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는 바다가 벌써부터 아름다웠다.
잠시 후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뒤 걸어 올라가는 길, 아쉽게도 개화시기를 못 맞춘 건지 진달래 뒤덮인 대금산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기도, 떨어진 벚꽃잎을 줍기도 하며 천천히 산을 올랐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 드문드문 진달래꽃을 볼 수 있었다. 진달래가 만개할 때는 진달래 터널이 이어져 상상만으로도 예쁠 듯 했다. 그렇게 오른 대금산 정상은 탁 트인 바다 전망만으로도 충분히 멋졌다. 바다 위 크고 작은 섬들과 거가대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 대금산 정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풍경 ⓒ 배은설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며 산과 바다와 섬이 만들어낸 그림을 한동안 바라봤다. 그렇게 산행을 마친 뒤 차를 타고 대금산을 다시 내려가는 길이었다. 임도인지라 길이 그리 넓지 않았는데 맞은편, 올라오는 차 한 대가 보였다. 남편은 후진으로 지나갈 공간을 만들어줬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맞은편 차의 운전자가 그대로 지나가지 않고 이내 차에서 내렸다. 따라 내리다 뜻밖의 광경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 거제 여행 중 마주친 예상치 못한 순간 ⓒ 배은설
낙엽으로 잔뜩 뒤덮여 있어서 미처 보지 못한 커다란 배수구 구멍에 차 뒷바퀴가 움푹 빠져 있었다. 천천히 후진했던 터라 덜컹 거리는 낌새는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 차 뒤로 또 다른 차 한 대가 섰다. 차에 있던 분들이 내려서 함께 차를 들어 올리려 시도했다. 쉽지 않았다. 거듭 된 시도 끝에 결국엔 긴급출동을 부르려는데, 이번엔 통화권 이탈 지역인 듯 통화가 안 됐다.
상황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잘 있던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별일 아니라고 달래주고 있는데, 도와주던 한 분께서 자신의 차에 가 있으라 거듭 권해 주셨다.
이리저리 신호가 잡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무사히 통화가 된 후에야, 우릴 도와주던 분들은 자리를 떠났다. 가족들과 함께 대금산 나들이를 온 듯한 거제 주민 분들 같았는데, 무척이나 감사했다.
지세포성 헤매기, 장염, 긴급출동. 이쯤 되자 긴급출동을 기다리다 순간 물음표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여행을 왜 하는 걸까?'
여행은 마냥 즐거울 때도 있지만, 이번 여행처럼 종종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난관에 부딪칠 때도 있다. 그럼에도 20대 때부터 지금까지 기회가 될 때마다 자주 여행을 했다.
정말로 나는 여행을 왜 하는 걸까? 좋은 경치를 보고 싶어서, 고민이 있어서, 쉬고 싶어서, 기분 전환이 필요해서, 돌아오기 위해서.
이런 저런 여행의 이유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관뒀다. 좋아서 하는 일에 의미를 찾는 건 무의미했다.
그저 어느 날 문득, 떨어지는 벚꽃잎을 신나게 줍던 아이의 작은 손이 기억나겠지. 긴급출동 해프닝을 떠올리며 잠시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도 떠올릴 테지.
그러니 또 여행을 떠날 것이다. 어디든.
덧붙이는 글
위 글은 글쓴이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tick11)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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