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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1990년대 사회 비판영화 연출 선우완 감독 별세

'서울황제' '피와 불' '마리아와 여인숙' 등 연출... 향년 78세

등록|2024.04.26 15:31 수정|2024.04.26 15:31

▲ 선우완 감독 ⓒ 한국영상자료원 소장자료


1980년대 문제작이었던 <서울황제>(1986)와 1990년대 <피와 불>(1991), <마리아와 여인숙>(1997년) 등 사회성 있는 작품을 주로 연출했던 선우완 감독이 26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1948년 부산에서 태어난 선우완 감독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졸업했고 1975년 최하원 감독의 <진짜 사나이>에 참여하면서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이후 이장호, 정진우 감독 밑에서 조감독으로 약 10년 동안 연출수업과 현장경험을 쌓았다.

1975년과 1976년 영화진흥공사와 KBS가 공동주최한 한국청소년영화제영화제(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부활>과 <설국이야기>으로 연속 1, 2회 작품상을 수상했던 선우완 감독은 1977년 단편 영화 <꿈>에 연출부로 참여했고 1983년 <신입사원 얄개>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두 번째 작품인 <서울예수>(1986)는 그의 필모그라피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군사독재시절이었던 암흑의 1980년대 제작, 기획, 감독까지 장선우 감독과 공동으로 작업한 <서울황제>는 서강대 영화서클 영화공동체 김동원(다큐멘터리 감독)과 경희대 영화서클 그림자놀이의 안동규, 한국영화아카데미 1기 김의석(전 영진위원장)이 스태프로 참여해 충무로 영 파워의 출발점 역할을 한 영화였다. 공동연출자인 장선우 감독은 문화운동의 맏형 역할을 맡고 있었다.

<서울예수>는 서울을 불의 심판에서 구한다는 망상에 젖어 정신병원을 탈출해 서울로 온 자칭 예수가 엄마를 갖게 되는 것이 소원인 껌 파는 꼬마를 만나고, 아름다운 한 여자를 찾아 간절한 설득으로 그녀의 마음을 열고 사랑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는 내용의 작품이었는데, 노골적인 사회비판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검열로 인해 개봉 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고, 영화 제목이 <서울황제>로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충무로와 방송계 넘나들어 

선우완 감독은 방송 피디로서의 활약도 두드러졌는데, MBC, KBS PD로 <즐거운 우리들의 천국> <초록빛 모자> <세발 자전거> <대역인간> <어디만치 가나> 등 20여 편의 베스트극장과 <완장> <남편의 여자> <우리들의 넝쿨> 등 미니시리즈를 제작 연출했다.

TV 드라마에서도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과 이미지 중심의 영상에 힘을 실은 그의 연출력은 크게 주목받았다. 1988년 올림픽 특집 사극 <춘향전> <배비장전> <심청전>을 제작했고, 이 중 <배비장전>으로 1989년 제 1회 영상음반 대상 감독상을 받기도 했다. <남편의 여자>는 1992년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충무로와 방송계를 오갔던 선우완 감독은 36회 아세아·태평양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피와 불>(1991), <마리아와 여인숙>(1997) 등 문제작을 발표하며 진지한 주제의식과 빼어난 영상미를 고루 갖춘 감독으로 평가받았다.

<피와 불>은 홍상화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옮긴 것으로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진솔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50년 학생의 신분으로 좌익운동을 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의용군으로 자원입대해 북에 잔류한 주인공이 어렵사리 북한의 인민배우와 결혼했다가 남파돼 자수한 후 새롭게 살아던 중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내용이다.

심혜진, 신현준, 김상중 등이 출연한 <마리아와 여인숙>은 1991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당선작으로 사회의 축소판으로 그려진 여인숙을 통해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동물적인 본능, 흥분과 쾌락의 세계를 형상화했다. 황량한 바닷가의 이미지와 공들인 세트, 4계절의 변화를 생생히 잡아낸 화면 등 근래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세련되고 유려한 화면과 비극적인 현악기의 사운드가 독창적이면서 진지한 주제의식이 돋보인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에 10호실에 마련됐고, 28일 오전 발인한다. 장지는 수원 연화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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