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만난 이재명 "상대 죽이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정치 보여주자"
영수회담 취재진 퇴장 전 15분 모두 발언... 민생회복지원금·채 상병 특검법 수용 등 주문
▲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영수회담에서 집무실에 도착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맞이하며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29일 오후 2시께 대통령실 집무실 입구에서 이 대표를 맞이했다. 윤 대통령은 오른손으로 이 대표와 악수하면서 왼손으로 이 대표의 오른팔을 살짝 치는 등 친근한 모습으로 웃으며 인사했다.
윤 대통령은 "하여튼 초청에 응해주셔서 감사하고, 정말 그 (대선)후보 때 저희가 행사 TV토론 때 뵀고, 당선 축하 전화해주시고, 국회에 가서 뵙고 정말 오늘 이렇게 또 용산에 오셔서 여러 가지 얘기 나누게 돼서 반갑고 기쁩니다"라고 말했다.
취재진 퇴장 직전에 A4용지 꺼낸 이재명 대표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미리 준비해 온 메시지를 품에서 꺼낸 뒤 윤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후 두 사람이 날씨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가자, 이날 모두발언까지만 취재하기로 했던 취재진은 현장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이를 본 이 대표가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 드릴 말씀 써왔다"면서 가슴팍의 주머니에서 A4 용지 몇 장으로 된 자료를 꺼냈다. 윤 대통령은 "아니죠. 손님 말씀 먼저 들어야죠"라고 이 대표의 발언을 요청했다.
이 대표는 "고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정치가 다시 복원되고,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게 되어야지 어떻게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하냐고 이런 생각도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라며 "오늘 이 자리에 대해서도 많은 국민들께서 큰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고 계실 겁니다. 정말 국정에 바쁘실 텐데 이렇게 귀한 자리 만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이 대표가 "저희가 오다보니까 한 20분정도 걸리는데 실제 여기 오는데 한 700일이 걸렸다"라며 웃자 윤 대통령도 같이 웃었다. 이어 이 대표는 원고를 읽어내려갔다.
이 대표 "이번 총선 잘못된 국정 바로잡으라는 준엄한 명령"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대표는 "저는 정말로 대통령님께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개인적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의 성공, 정부의 성공이 국가와 국민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라며 "오늘 제가 제1야당의 대표로서 이 나라의 국정을 총책임지시는 최고 국정책임자이신 대통령님께 이번 총선에서 나타났다고 판단되는 국민들의 뜻을 전달해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제가 드리는 말씀은 저의 입을 빌린 우리 국민들의 뜻이다 이렇게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안보, 모든 영역에서 많은 위기들이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들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합니다"라면서 윤석열 정부 2년에 대한 평가를 내놨다.
그는 "정부 비판적인 방송에 대해서 중징계가 계속 이어지고 있고, 보도를 이유로 기자,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매우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께서도 혹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잡혀가는 거 아닐까 이런 걱정들을 하는 세상이 됐습니다"라면서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평가받던 우리 대한민국에 대해서 스웨덴 연구기관이 독재화가 진행 중이다, 이런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합니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보면 소위 말 폭탄이 진짜 폭탄되는 거 아닌가 이런 걱정도 많이 하고 있는 상태"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 대표는 4.10 국회의원선거로 나타난 민심을 "잘못된 국정을 바로잡으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평가하면서 "우리 국민들께서는 이번 선거를 통해서 민생과 경제를 살리고, 또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평화와 안전을 지키라고 명하셨다라고 생각합니다. 민생의 어려움,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는 유능한 국정,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한 공정하고 상식적인 국정, 편 가르기나 탄압이 아닌 소통과 통합의 국정을 대통령과 여당에게 주문하셨다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민생 회복 지원금·R&D 예산 회복·국회 통한 의정 갈등 해소' 강조
"이제 국정 동력을 민생 위기 극복에 집중할 때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한 이재명 대표는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 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이나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 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 회복 지원금은 꼭 수용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R&D 예산 복원도 내년까지 미룰 게 아니라 가능하면 민생 지원을 위한 추경이 있다면 한꺼번에 처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라면서 "전세사기특별법이라든지 다른 화급한 민생 입법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의과대학 정원 증원 등 윤 대통령의 의료 개혁을 "정말로 중요한 국가적 과제"라고 평가한 이 대표는 "그런데 의정갈등이 계속 심화되고 있어서 꼬인 매듭을 서둘러 풀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달째 이어진 의정 갈등 때문에 의료현장이 혼란을 겪고, 우리 국민들께서도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 그리고 의료진의 즉각적인 현장 복귀, 공공·필수·지역의료 강화라는 3대 원칙에 입각해서 대화와 조정을 통한 신속한 문제 해결이 꼭 필요합니다"라면서 민주당이 제안한 국회 공론화 특위에서 여야와 의료계가 해법을 도출하자고 제안했다. 또 "의대 정원 확대 같은 의료 개혁은 반드시 해야 될 주요 과제이기 때문에 우리 민주당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말씀드립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대통령님께서 과감하게 연금개혁을 약속하시고 추진한 점에 대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면서 "최근에 국회 연금개혁특위 공론화위원회에서 소득대체율 50%, 보험료 13%로 하는 개혁안이 마련됐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정부, 여당이 책임 의식을 가지고 개혁안 처리에 나서도록 독려해 주시기를 바라고, 우리 민주당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말씀드립니다"라고 약속했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채 상병 특검법 수용·가족 의혹 해소' 요구
▲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영수회담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정치의 회복' 필요성을 언급한 이 대표는 "사실 지난 2년은 정치는 실종되고 지배와 통치만 있었다는 그런 평가가 많습니다. 특히 어렵게 통과된 법안들에 대해서 우리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과도한 거부권 행사, 또 입법권을 침해하는 시행령 통치, 인사청문회 무력화 같은 이런 조치들은 민주공화국의 양대 기둥이라고 할 삼권분립,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행정 권력으로 국회와 야당을 혹여라도 굴복시키려 하시면 성공적인 국정은 쉽지가 않을 것입니다. 국정 기조 전환을 요구하는 총선의 민의를 존중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경고하면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나 특검법 등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 대해서 유감 표명과 함께 향후 국회 결정을 존중하겠다라는 약속을 해 주시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고, 또 정중하게 요청드리는 바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159명의 국민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던 이태원 참사나 또 채 해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큰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면서 "채 해병 특검법이나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들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저출생 종합대책·재생에너지 정책·실용 외교 전환' 요구
이재명 대표는 저출생 대책과 기후위기 대책 등 '미래 의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서 결혼, 출산, 양육, 교육, 취업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라고 말했다.
또 "재생에너지 부족 때문에 수출 기업들의 생산기지 해외 이전, 산업 경쟁력 추락이 매우 걱정됩니다"라면서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제품만 구매하겠다는 이런 세계적 추세에 맞춰서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재편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강력한 안보 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 열심히 하고 계신 것 압니다. 그에 대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대화와 협력에도 조금 더 관심 가져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라며 "가치 중심의 진영 외교만으로는 국익도 국가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로 전환을 검토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또 "독도, 과거사, 핵 오염수 같은 이런 대일관계 문제에서 국민의 자긍심이 훼손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것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라면서 "국민을 두려워하고 존중하신다면 대통령님과 이 정부가 성공할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서 저희가 돕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발목 잡기가 아니라 선의의 경쟁으로 국민에게 편안함과 희망을 만들어 드리면 좋겠습니다. 정치라고 하는 것이 추한 전쟁이 아니라 아름다운 경쟁일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라면서 "상대를 죽이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좋은 말씀 감사하고, 또 평소에 우리 이 대표님과 민주당에서 강조해 오던 얘기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실 것으로 저희가 예상하고 있었습니다"라면서 회담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대통령실에서는 정진석 비서실장,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고, 민주당에서는 진성준 정책위의장, 천준호 당대표비서실장, 박성준 수석대변인이 회담에 배석했다.
▲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영수회담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