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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 100분이 훌쩍, 관음증 공인중개사의 최후

[리뷰] 영화 <그녀가 죽었다>

등록|2024.05.01 08:20 수정|2024.05.01 10:13
'피해'와 '가해'. 단어를 보자마자 무 자르듯 정확히 판단하고 싶은 마음이 솟는다. 대부분의 소시민은 자신이 행한 가해에는 무심하고 받은 피해에는 민감하다. 심지어는 가해를 부정하는 것을 넘어 피해를 점유해 그에 맞는 관심과 보상을 받고 싶어 한다. 결국 파헤쳐야 할 맥락은 뒤엉키고 아수라장이 된 현장.

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스릴러 장르의 문법으로 "그래서 누가 더 피해자인데?"라는 질문을 쫓았던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 한소라(신혜선분)을 몰래 쫓아가는 구정태(변요한 분). ⓒ 콘텐츠지오


공인중개사 '구정태'는 깔끔하게 차려입고 출근해 인터넷 카페에 답변을 남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알아주는 부동산 전문가로 통하는 그는 '평판'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그가 동네 사람들의 신상 정보를 훤히 꿸 정도로 사람을 관찰한다는 건 물론 비밀이다.

보는 것에서 멈추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더 심각하다. 고객이 맡긴 열쇠로 빈집에 들어가 가져가도 티 나지 않는 물건 하나를 골라 은밀하게 수집하는 걸 즐긴다. 주거 침입에 절도까지. 천진한 변요한의 연기에 깜빡 속아 넘어갈 뻔 했지만 그는 조용히 범죄를 저지르는 중이다.

구정태의 신상 데이터에 없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스릴러로 무르익는다. 편의점 소시지를 먹으며 비건 샐러드 사진을 포스팅하는, SNS 인플루언서 '한소라'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관심'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이미지가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노인, 아동, 동물과 관련한 봉사를 하기에 이른다.

관음증 공인중개사의 최후
 

▲ 인플루언서 한소라(신혜선 분). ⓒ 콘텐츠지오


구정태는 한소라의 이중성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고 한소라의 집을 수시로 훔쳐보다가 그의 죽음까지 목격하게 된다. 떳떳하게 신고할 수 없으니 그 자리에서 달아나는데 수사망은 점점 구정태를 좁혀온다. 살인 누명을 벗기 위해 한소라의 주변을 탐색하는 구정태를 따라가는 관객은 맘 편히 이입할 수도 응원할 수도 없는 위치에 놓인다. 오죽하면 '너 어디까지 하는지 보자'는 마음이 든다.

구정태는 직업을 활용해 우위에 올라 시선의 높이를 즐긴다. 그는 자신의 투명한 개미 사육장을 보듯 고객의 집에 들어가서 생활 습관, 은밀한 비밀 등을 캐내면서 그 공간을 낱낱이 살핀다. 구정태는 들키지 않는다면 관음 또한 취미로 남을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구정태의 시선을 한소라 또한 알아챈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갈까.

한소라는 누군가가 지켜봐야만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인플루언서로서 아무 '시선'이나 원하지 않는다. 거짓된 선행을 칭찬하고, 사이버 렉카가 한소라를 깎아내릴 때 그를 감싸는 시선을 필요로 한다. 자신의 실체를 알아채고 폭로할 수 있는 '시선'은 한소라에게는 사회적 매장을 넘어 물리적인 죽음과 같은 일이다. 과연 '한소라의 죽음'은 구정태가 관찰하지 않았으면 시작되지 않았을 일일까. 시선이 엎치락뒤치락 역전되는 상황 속에서 관객은 시선이 가진 '폭력'과 '제재' 사이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용호상박 버금가는 비호감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러닝타임 103분이 훌쩍 지나간다. 변요한이 스릴러의 긴장감을 틈새로 활용해 중간중간 김새는 웃음을 준다.

<그녀가 죽었다>는 오는 5월 15일 개봉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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