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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다하우에서 들른 이곳, 할 말을 잃었습니다

[독일 생명평화기행 6] 다하우 수용소의 참상, 공장식 육식 문화에 관한 생각

등록|2024.05.01 13:12 수정|2024.05.02 08:17
2023년 7월 2일부터 14일까지 생명평화아시아와 녹색당이 공동주최한 ‘2023 독일 생명평화기행’에 참여했습니다. 베를린, 다하우, 뮌헨, 슈투트가르트, 프라이부르크 등 독일의 에너지 전환과 정치의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나누겠습니다.[기자말]
베를린 일정을 마치고 뮌헨으로 향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뮌헨 중앙역에서 기차(S-Bahn)를 갈아타고 20분 정도 더 가서 다하우에 도착했습니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에 있는 다하우는 약 4만8000명이 사는 작은 도시이지만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유려한 관광지가 있는 것은 아니고, 나치 독일이 최초로 만든 대규모 수용소 자리가 있기 때문이지요. 독일 생명평화기행 팀이 이곳, 다하우를 방문한 이유도 같습니다.
 

▲ 다하우 수용소의 추모 조형물. ⓒ 박제민


다하우 수용소, 말을 잃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다하우 수용소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나치가 만든 수용소 하면 으레 아우슈비츠의 그것을 떠올렸지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점령지였던 폴란드에 만들었다면, 다하우 수용소는 독일 영토 안에 있었습니다. 규모도 아우슈비츠 수용소 다음으로 가장 컸고요. 무엇보다도 나치가 만든 최초의 수용소로서, 다른 모든 수용소에 모티브가 되었다는 점에서, 처절한 의미가 서려 있는 곳이었습니다.
 

▲ 나치가 최초로 만든 다하우 수용소의 철문. “노동이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라고 새겨져 있다. ⓒ 박제민


서글픈 기운이라도 서려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마음이 원래 그런 것일까요. 입장하면서부터 마음 한구석이 뻐근했습니다.

옛 수용소의 철문에는 가증스럽게도 "노동이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곳에 사상과 신념, 국적과 피부색, 성 지향과 성별 정체성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강제로 끌려와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사람들이 이 아래로 지나다녔을 것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았을지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생각에 이어질수록 말을 잃었습니다.

디자인, 기능과 효율에 관하여

다하우 수용소에서 가장 놀란 것은 그 안에 시설들이 놀라울 만큼 기능적이고 효율적으로 디자인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좁다랗기 그지없이 높게만 쌓아 올린 딱딱한 나무 침대는 그저 어떻게 하면 사람을 많이 구겨 넣을 수 있을지만 고려한 것 같았습니다. 길쭉하기만 한 사물함 안에는 수용소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었고요. 세면대와 용변기는 도저히 인간의 은밀함과 존엄함이라고는 찾을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샤워실과 소각장도 끔찍한 무언가를 위해 최적화되어 있었습니다.
 

▲ 다하우 수용소 피해자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침대 ⓒ 박제민

   

▲ 다하우 수용소 피해자들이 실제 사용했던 사물함 ⓒ 박제민

   

▲ 다하우 수용소 피해자들의 사용했을 당시의 사물함 모습 ⓒ 박제민

   

▲ 다하우 수용소의 화장실 ⓒ 박제민


독일의 디자인, 특히나 산업 디자인의 원류를 여기서 이렇게도 발견할 수 있다니 정말 의외였습니다. 독일의 전설적이고 유명한 제품들을 보면, 기능과 효율을 중시한 단순함과 디테일에 아름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다하우 수용소의 모든 것도 그랬습니다. 기능과 효율에 집중되어 매우 단순하면서 지독히도 디테일한 그것들에서, 아름다움이 아니라 끔찍함을 느꼈습니다. 같은 개념이 다른 취지로 적용되었을 때 어떻게 이리도 달라질 수 있을까요.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기능해야 하는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 다하우 수용소의 가스실 ⓒ 박제민

   

▲ 다하우 수용소의 소각장 ⓒ 박제민


옛 수용소 터 한쪽에는 각자의 종교에 따라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생존자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기도 시설들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한 곳에 들려서 그곳에 있는 종교적 상징들, 촛불들, 꽃들을 잠시 바라보며 착잡해진 마음을 달래어 보았습니다.

불과 몇십 년 전에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런 일을 벌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엉뚱하게도, 아니 실은 당연하게도, 다하우 수용소의 끔찍함이 오버랩됐습니다. 바로 인간이 동물에게 가하는 폭력, 공장식 육식 문화가 떠올랐습니다.
 

▲ 다하우 수용소에 마련된 추모와 기도 공간 ⓒ 박제민


동물 홀로코스트, 훗날 무어라 할까

홀로코스트(Holocaust)는 흔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저지른 대학살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폭넓게 적용하자면 사람이나 동물을 대규모로 죽이는 행위를 지칭합니다. 제노사이드(genocide)가 인간 집단에 집중한 의미라면, 홀로코스트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다른 종인 동물들에게 벌이는 것도 홀로코스트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좁은 공간에 강제로 가두어서 자유를 빼앗고 착취하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방식이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 공장식 축산의 모습. 훗날 무어라 평가될까? ⓒ commons.wikimedia.org


수십 년이 지나 우리가 다하우 수용소의 참상을 보며,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렇게 했는가를 개탄한다면, 훗날 인간이 만든 공장식 육식 문화를 보며, 생명이 생명에게 어찌 이리했는가 개탄할 날이 오지 않을까요.

생명을 존중하고, 예의를 지킬 것

다하우 수용소 방문을 마치고 우리를 안내해준 전시기획자이자 농부인 유재현 님의 농장에 방문했습니다. 익숙한 향내가 나면서도 독일식 목가적인 분위기가 독특했습니다. 그곳에는 여러 동물들이 자유롭게 풀을 뜯고 뛰거나 놀거나 쉬거나 자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어스름했던 마음에 조금 풀어졌습니다.
 

▲ 전시기획자이자 농부인 유재현 님의 농장에서 자유롭게 있는 동물들 ⓒ 박제민


망아지 한 마리가 새로운 인간들이 신기한 듯 슬며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습관이 잘못 들면 다 큰 말이 되어서도 사람에게 달려들 수 있기에, 큰소리를 치고 허공에 채찍질해서 쫓아 보냈습니다. 놀란 망아지는 어미 말 근처로 도망가서 한동안 시무룩해져 있었습니다.

함께 살기 위해서 때로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옛 다하우 수용소를 보고 여기 농장을 방문하며 생각했습니다. 과하게 취하지 않는 것,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것, 생명을 존중하는 것, 서로 예의를 지키는 것. 이런 것들이 고도화된 문명사회의 모습이지 않을까요. 생각은 많아지고 말수는 줄어든 하루였습니다.

동물 이야기를 한참 했으니, 다음 글에서는 강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독일 생명평화기행 팀이 바이에른의 뮌헨으로 온 이유가 바로 이자르강의 생태복원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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