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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 조선소, 거기에도 성소수자가 있습니다

[나, 성소수자 노동자 ②] 중공업 현장에서 일하는 성소수자 이야기

등록|2024.05.07 16:03 수정|2024.05.14 09:09
일터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성소수자 노동자가 차별과 혐오를 피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은 드러나지 않는 성소수자 노동자의 삶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 성소수자 노동자'를 통해 다양한 지역과 현장에서 노동하는 여러 정체성의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삶을 다섯 차례에 걸쳐 전합니다. [기자말]

▲ [나, 성소수자 노동자 ②] 저는 지역에 있는 중공업 현장에서 노동하는 성소수자 노동자입니다. ⓒ Marcin Jozwiak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아래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조합원인 사한월입니다. 현대중공업이라는 배를 만드는 현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정의당 울산지역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청년정책네트워크에서 청년사업도 하고 있어요. 인터뷰 제안을 받았을 때 '그냥 하지 뭐~'라고 생각했습니다."

- 현대중공업에서 어떤 노동을 하고 계신가요?

"저는 선박에 들어가는 엔진을 만들어요. 구체적으로는 엔진에 공기를 과급하는 터보차저(Turbo Charger)를 만들고 있습니다. 부품 무게가 2톤에서 20톤까지 되다 보니 부품을 옮기거나 조립할 때 주로 크레인을 사용해요. 쉽게 말하면 자동차의 부속품들을 조립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크레인으로 배를 조립하는 거죠. 크레인도 제가 직접 조종합니다. 조립하는 노동을 하기 전엔, 엔진을 직접 만드는 일을 했어요. 터보차저는 커다란 엔진 부품 중 하나에요. 크랭크라던지 엔진에 필요한 주요 물품들을 직접 만들었죠."

* 터보차저(Turbo Charger): 내연기관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엔진의 배출가스 압력을 터빈을 돌린 후, 회전력을 이용해 흐입하는 공기를 강한 압력으로 밀어 넣어 출력을 높이는 기관이다.
 

▲ 현대중공업 전경. 골리앗 크레인들 사이로 건조 중인 선박들이 보인다. ⓒ HD현대중공업 보도자료


- 일을 하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어쩌다가 '현대중공업'이란 조선소에 들어가시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현대중공업은 2015년에 입사했습니다. 거의 10년이 되었네요. 울산에 있는 현대공고를 졸업하면 바로 현대중공업으로 취업을 시키는 협약이 있어요. 고졸 채용으로 입사하게 된거죠. 저는 당시에 '어차피 현대중공업을 가는 거면, 굳이 대학교를 가야하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울산에서 나고 자란 학생, 노동자들의 통상적인 취업 과정 이거든요. 어차피 현대그룹 계열사에 취업하니까요.

'어차피 1등 아니면 전부 현대중공업에서 만난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어요. 학교에서 1등하는 학생들은 울산대병원이나 아산병원을 가요. 울산을 벗어나 더 큰 도시로 가기도 하고요."

- 배를 만들면서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기억에 남는 점이 있나요?

"그런 자부심이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엔진, 배가 세상에서 제일 크다는 자부심이요. 실제로 그 배가 전 세계를 항해하거든요. 제가 그 배를 따라다녀야 할 때도 있어요, 배와 엔진의 크기가 있다 보니, 엔진을 완제품으로 발주하지 않거든요. 엔진 부품을 조립하는 노동자들이 발주처로 직접 가서 현지 엔지니어들과 함께 조립해요. 아쉽게도 저는 아직 해외는 안 가봤어요.

물론 아쉬운 면도 있습니다. 조선소 현장이 그렇듯 현대중공업도 노동강도가 강해요. 근골격계 질환도 많이 발생합니다. 오래 일하신 노동자 중 병가휴직을 한 두 번 내는 건 일도 아니에요. '누가 먼저 아프냐!'인 거죠. 그리고 원하청 노동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노동강도에 비해 적은 급여를 받고 있어요. 저도 관절 부근은 다 아픕니다. 주로 어깨나 회전근개 파열이 많이 나타나요. 전동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더욱 그래요. 근육 파열이거나, 관절에 뼈가 자라거나, 디스크가 생기거나..."

- 그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현대중공업에 입사하기 전부터도 조선소 노동환경이 '위험하다'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2016년 엔진을 조립하는 일을 할 때 다친 적이 있어요. 엔진부품이 꽤 커서, 엔진부품 근처에 발판을 설치해야 해요. 근데 발판이 없어서, 매번 회사에 '발판을 만들어 달라'고 문제를 제기했었죠. 노동자가 현장에서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작업해야 하니까요. 그랬더니 회사는 발판을 설치해주지 않고, 해당 업무를 사내하청업체에 외주화 해버렸어요.

그런데 그 하청업체에서도 일이 너무 위험해서 못 하겠다고 한거죠. 그래서 제가 다시 발판 없는 엔진 부근에서 일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결국 엔진 위에서 떨어졌어요. 다행히 떨어지면서 뼈가 부러지진 않았어요. 조선소 현장의 총체적인 문제는 이런 곳에서 발생한다고 봐요. 무리한 외주화, 안전문제, 회사와의 소통문제…."

▲ 크레인을 이용해 엔진부품을 옮기고 있다. ⓒ 인터뷰이

   - 사업장 내에서 최근 떠오르고 있는 의제가 있나요?


"이주노동자 '문제'가 가장 뜨거워요. 열악한 노동환경, 저임금 체계로 노동자들이 조선소를 떠나고 있어요.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대거로 데려와 저임금을 주며 착취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수모를 보고 있으면 속이 정말 답답해요. 심지어 이주노동자들은 어렵게 한국에 들어와 조선소 현장에서 일하다가 '(한국 조선소 현장에서)이 돈 받고 할 짓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일을 그만두기도 해요.

하지만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어요. 그러다보니 이주노동자들이 '도망' 가기도 합니다. 최근 ○○조선소에서 일하는 베트남 노동자 30여 명이 집단적으로 도망쳤다가 다시 잡혀 왔어요. 그런데 웃긴 건 사업장에 '이주 노동자들 나가면 잡힙니다'라는 현수막이 대놓고 붙어 있다는 거에요. 심지어 최근 현대중공업 내 외국인지원센터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여권을 압수해서 기사까지 났을 정도에요.

의외로 이주, 정주 노동자들 사이에서 큰 충돌은 없어요. 언어 장벽으로 인한 소통의 장벽, 국가 간 문화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생활적인 측면의 불평은 다소 있지만요. 언어장벽으로 인해 이주노동자에게 업무를 원활히 가르칠 수 없으니, 아쉽게도 이주노동자에게 잡일이나 단순 업무만 시켜요. 회사가 현장소통을 위해 언어지원을 해야 하는데 적극적이지 않아요. 외국어가 가능한 대학생 10명 정도를 데려와서 통역으로 쓰고 있어요. 현대중공업에는 대략 4천명의 이주노동자가 있고, 매달 수백 명이 늘고 있는데, 대학생 10명의 통역으로 대체할 수 없어요. 회사는 이주노동자들이 그냥 시키는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주노동자들이 현장에 적응해서 정주 노동자들과 잘 지내길 원치 않는 듯해요."

- 이주노동자 '문제'도 있지만, 조선소는 대표적인 남성직군으로 사업장이기도 하죠. 특정성별이 다수를 차지함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없나요?

"제조업 사업장이 그렇듯이 조선소 현장에도 여성노동자를 찾기가 힘들어요. '남성'이 아닌 노동자가 노동하기 어려운 조직문화입니다. 최근 일은 아니죠.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에요."

- 그 외 사업장 내에서 관심 있는 일이 있나요?

"최근(23년 9월 9일 기준) 현대중공업지부 내에서 입금협상이 큰 쟁점이었어요. 임금인상도 문제지만, 임금협상 과정에서 '세대차이'가 드러났어요. 젊은 조합원들은 기본급 최대한 올리라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든요. 요구는 언제든 강력하게 할 수 있거든요. 요구를 실현하는 게 관건이죠. 젊은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면 좋겠어요. 노동조합이 파업한다고 하면 참여하고, 노동조합 집행간부도 해보고요. 다양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간부로서 활동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어찌 됐든 노조는 조합원들을 위해 존재하니까요. 물론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을 위한 일만 하는 건 아니지만요."
   

▲ 작업복을 입고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인터뷰이. ⓒ 인터뷰이 제공


- 일터 안에서 정체성이 알려지면, 뭐가 좀 달라질까요?

"조선소 동료들이 대개 '아저씨'에요. 동료들의 눈빛이 약간은 흔들리겠지만, 큰 변화는 없을 거예요. 제가 커밍아웃 하면서 '저 성소수자에요'라고 하면, 아마 아저씨들은 '그래, 오늘 점심 뭐먹지?'라고 하실 거거든요. 회사도 저에게 불이익이나 특별한 조처를 하진 않을 겁니다. 제 정체성이 제 업무역량에 지장을 주진 않으니까요.

하지만, 가족수당이나 사실혼 파트너와 관련한 회사복지를 누릴 순 없을 거예요. 현재 단체협약 내용 중 가족수당과 관련된 내용은 저에게 해당이 안 돼요. 심지어 회사는 아직도 경조휴가에 있어 모계, 부계 차별을 두고 있어요. 외할머니나 외조부모의 경조비가 다르단 뜻이죠. 외가는 경조휴가를 하루만 주고, 친가는 이틀을 주는 식이에요. 그런 현실이다 보니 '성소수자의 권리'와 관련된 내용은 회사와 협상거리가 되지 못해요. 하지만 중공업 사업장에 생각보다 많은 성소수자가 있다고 하거든요. 게이 채팅 데이팅 앱을 켜면 사람이 많다고들 해요. 앱을 통해 연락도 많이 한다고 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 조선소 현장에 '성소수자'가 많은 걸까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조선소 현장에서 '성소수자 논란'이 있던 적은 없어요. 눈에 드러나지 않으니까요.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할 문제죠. 사측도, 노동조합도 평등과 관련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봐요. 성소수자 노동자로서 겪은 채용, 고용과정상 차별도 아직 들어본 적은 없어요. 특히 회사는 아직 '성소수자'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지 않고요. 만약 제가 면접을 보면서 '저는 성소수자에요. 혹시 가족수당 받을 수 있나요?'라고 한다면, 아마 회사는 '요즘 그런게 있구나, MZ인가보다'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갈 거에요."

- 혹시 현장에서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아서 발생했던 어려운 점이나, 차별은 없었나요?

"한번은 친구들과 술을 먹는 데 힘든 일이 있었어요. 친구 중 한 명이 제가 차고 있는 퀴어프라이드 팔찌를 보더니 갑자기 저한테 화를 내면서 '걔(성소수자)들은 다 죽어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당시 엠폭스(원숭이 두창) 때문에 성소수자 혐오가 커뮤니티와 언론을 타고 퍼지고 있었어요. 제가 참지 못하고 친구한테 또박또박 반박했어요. '성소수자도 권리가 있다. 조용히 살라고만 하면 인간을 동물 취급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라고 했죠. 옆에 같이 있던 다른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저를 지지해줬어요. 성소수자들은 다 죽어야 한다고 하던 친구도 결국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고요.

다른 일터 상황을 들어보면 성소수자 들이 결혼이야기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 일터 동료들은 결혼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아요. 오히려 성평등의식이 없어서 발생하는 문제는 있어요. 한 번은 어떤 동료가 TV를 보며 치마 입고 나온 일기예보 진행자의 치마 속을 보겠다고 TV 밑으로 가서 올려보더라고요. 그때 저는 생각했어요. '아, 내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웃음)"
 

▲ 노동조합 행사에 참여 중인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인터뷰이와 함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들이다. ⓒ 인터뷰이 제공


- 성소수자 노동자가 보이지 않고, 일터 동료들의 성평등의식이 상이 한 것은 왜 그럴까요? 혹시 노동자 도시인 울산지역의 특성일까요?

"80년도에는 현대중공업 입구에서 사측이 바리깡을 들고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머리를 강제로 밀었어요. 군대식 문화가 팽배했던 거죠. 지금도 조선소 현장은 수직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문화에요. 주변 동료들은 틈만나면 '너는 살 좀 빼야겠다. 너는 남자인데 머리를 왜 기르냐?'라고 해요. 머리를 기르다가 일터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머리를 자르신 분도 계시고요.

울산 시내를 돌아다녀 보면 마주치게 되는 성소수자가 꽤 있어요. 한 명씩 만나다 보면 접점이 생기기도 하고요. 시내에 성소수자가 많이 가는 카페도 있고요. 제가 대외활동을 하다 보니 진보정당이나, 청년네트워크 통해서 만나게 되는 성소수자 동지들도 있어요. 혹은 서로 친하게 지내다가 제가 성소수자라는 걸 알게 되면 그때서야 본인의 정체성도 저에게 알려주는 친구들도 생겼어요. 하지만 저는 아직도 애인을 소개할때 '애인'으로 소개해야 해요. 그런 식의 중의적 표현이 저를 답답하게 하고요. 아직은 표현을 편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거죠. 울산지역이던, 제 노동현장이던."

-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 한월님과 같은 일터에서 커밍아웃하지 못한 채 노동하고 있을 성소수자 동지를 위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인터뷰 소감도 부탁드릴게요.

"제가 이렇게 힘든데 다른 성소수자 동지들은 어떻겠나 싶은 생각이 참 많이 들어요. 아직 조선소 현장은 기초적인 것도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우리는 서로 모여 유의미한 목소리를 내야 해요. 희망을 잃지 않고요. 어떻게 하겠어요, 이대로 살 수는 없으니 세상을 바꿔야죠. 과도기적 과정은 불가피하니까요. 유효한 지점에서부터 하나씩 바꿔나갔으면 좋겠어요.

인터뷰가 하고 나니 생각보다 속이 시원하네요. 생각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조선소 현장을 포함한 다양한 현장들의 상황이 좋아졌으면 해요. 우리가 바꿔나가고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제 인터뷰를 봐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현대중공업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누군가가 저를 보고 의지하고, 희망을 품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만약 현장에서 불평등한 일이 발생한다는 저는 다음날부터 피켓 들고 현장 앞에 서 있을 거예요. 같이 노력해요."
덧붙이는 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노동권 홈페이지에 함께 게재될 예정입니다. (http://www.rainbowatwor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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