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과 허무도 노래한 킨... 데뷔 앨범부터 사랑받은 이유
[명반, 다시 읽기] 20주년 맞이한 킨(Keane)의 데뷔 앨범 < Hopes and Fears >
▲ 2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 월드 투어를 하는 킨 ⓒ Keane 유튜브
우리나라에서 영국 밴드 킨(Keane)은 아마 들으면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어쩌면 퀸(Queen)과 헷갈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표곡 'Everybody's Changing'을 한 번 재생해 보자. 도입부가 나오자마자 "아, 이 노래!" 하고 단번에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였던 '패션 7080'을 떠올릴 사람이 많을 테다. 실제로 킨이 2009년 내한공연을 펼쳤을 당시에도 페스티벌 관객들이 이 노래에 맞춰 원을 그려 걸어 다니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Everybody's Changing'이 수록된 이들의 데뷔작 < Hopes and Fears >가 어느덧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했다. 약 600만 장을 판매하고 영국 싱글 차트 10위 내에 총 세 곡이나 진입시키는 등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과를 보였으나 앨범은 사실 발매 당시 평단의 엄청난 환호를 받지는 못했다. 1990년대 브릿팝 열풍이 가신 후 영국에 등장한 서정적인 밴드, 그중 특히 콜드플레이(Coldplay)와 비견되며 아류라는 비판도 대거 받은 것이 현실이었다.
산전수전 끝에 만들어진 '피아노 록'
▲ 킨(Keane)의 데뷔 앨범 < Hopes and Fears > ⓒ Keane
킨의 음악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바로 피아노가 악기 구성의 핵심이라는 사실이다. 중간중간 신시사이저 이펙트를 활용하기도 하고 세 번째 앨범에 이르러서는 기타를 부분 도입하기도 했지만 데뷔 초 그들의 음악은 피아노를 전면에 내세운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일반적인 밴드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기타 없이 톰 채플린(Tom Chaplin)의 보컬, 팀 라이스-옥슬리(Tim Rice-Oxley)의 피아노, 그리고 리처드 휴즈(Richard Hughes)의 드럼으로만 이룬 3중주가 정체성이었다.
처음부터 이 독특한 체제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1995년 대학생 시절 팀 라이스-옥슬리가 리처드 휴즈와 도미닉 스콧(Dominic Scott)이라는 기타리스트와 함께 밴드를 꾸린 것이 킨의 시작이다. 톰 채플린이 리드보컬로 들어온 것은 가장 마지막 일이었다. 그렇게 1998년부터 소규모 공연을 돌아다니며 1999년 'Call Me What You Like', 2000년 'Wolf at the Door'라는 싱글을 소량 배포했지만 도미닉 스콧이 학업을 이유로 팀을 나가게 된다.
남은 셋에게 기약 없는 고난이 찾아왔고, 밴드는 2년 넘게 정식 계약을 따내지 못한 채 공연을 반복했다. 그러나 이듬해 가시적인 결실이 드디어 찾아왔다. 인디 레이블 피어스 판다(Fierce Panda)와 연을 맺는 데에 성공한 것. 그렇게 첫 싱글로 발매된 'Everybody's Changing'이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며 아일랜드 레코즈라는 대형 음반사에 소속되는 기쁨을 맞이했다.
이어서 메이저 데뷔 싱글 'Somewhere Only We Know'가 영국 싱글 차트 3위를 달성한 것을 시작으로 재발매된 'Everybody's Changing'이 4위에 올랐고, 그렇게 5월 10일 발매된 < Hopes and Fears >는 영국 내에서만 27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엄청난 데뷔 앨범으로 우뚝 섰다. 영국 앨범 차트 1위와 2004년 영국 최다 판매 앨범 2위라는 부가적인 성취도 당연히 뒤따랐다.
희망 속의 공포, 공포 끝의 희망
▲ 2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 월드 투어를 하는 킨 ⓒ Keane 유튜브
들어보면 알겠지만 앨범에는 확실한 흥행 포인트가 많다. 메인 작곡가이자 키보디스트 라이스-옥슬리의 따스한 건반 연주와 맞물리는 톰 채플린의 보컬은 그 어떤 가수도 쉽게 흉내내지 못하는 미성을 가지고 있다. 두 대표곡 외에 킬링 트랙도 확실하다. 영국 18위에 오르며 만만찮은 인기를 누린 'This Is the Last Time'과 숨가쁘게 달려나가는 'Bend and Break', 경쾌한 멜로디가 인상적인 'Can't Stop Now' 등 한 번 들어도 귀에 바로 안착하는 선율을 가득 쥐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낙관만이 < Hopes and Fears >를 채운 것은 아니다. 연인 간의 소통 단절을 그린 'We Might As Well Be Strangers'나 간단한 언어로 비통하게 가슴을 후벼 파는 'She Has No Time'처럼 음반에는 희망 못지않게 좌절이 자리한다. 'This Is the Last Time'과 같은 업템포 트랙도 가사는 이별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아련한 추억을 그리는 'Somewhere Only We Know'에도 은근한 우수가 있다.
긴 무명시절의 불안감이 녹아 있는 것이다. 한창 밴드의 미래가 끝없이 어두워 보이던 2002년 쓰인 'Everybody's Changing'도 그렇다. 모두가 끝내 변해버리는 세상에 대한 허무감을 논하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팀 라이스-옥슬리의 가사는 동시에 홀로 뒤쳐지는 일에 대한 걱정을 가리키기도 한다. 영국 10위에 오른 마지막 'Bedshaped'도 침대에 파묻혀 죽어가는 노인의 관점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묘사하는 트랙이다.
사실 이것이 삶의 이치 아니겠는가. 찬란한 희망 속에는 언제나 공포가 도사리고 있고, 그런 무시무시한 공포가 있어야 또 희망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억지로 외면하지 않고 인생의 복합성을 직시한 덕분에 긴 시간 동안 사랑받은 킨의 < Hopes and Fears >가 이 사실을 다시 일깨워준다. 올해 20주년을 맞이하여 밴드는 앨범 재발매와 더불어 현재 기념 월드 투어를 진행 중이다. 올해는 힘들더라도 내년에는 한국 또한 찾아오리라는 희망을 함께 가져보자.
▲ 2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 월드 투어를 하는 킨 ⓒ Keane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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