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혐오정치 끝내러 왔다" 서미화, '이준석' 콕 찍었다

[22대의 미션] 시각장애인 민주당 비례대표 1번 "장애인은 특별대우 아닌 함께 살아갈 사회 원해"

등록|2024.05.05 14:43 수정|2024.05.05 14:43
22대 총선이 막을 내렸습니다. 300명의 당선인들은 5월 30일부터 각자의 화두와 과제를 가지고 임기를 시작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당선인들을 만나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인 저출생, 노동시간 단축, 대화정치 복원, 서민경제, 지역소멸 대응 등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묻고 들었습니다.[편집자말]

▲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22대 국회 의정활동 계획에 대해 이야가를 나눴다. ⓒ 유성호


두 번.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이 인터뷰 중 기자와 눈을 마주친 순간이다. 중학생 시절.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은 그는 현재 빛과 어둠만 구분할 수 있다. 4월 30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그의 시선은 대체로 기자의 앉은 자리 너머 어딘가를 향했다. 그런데 딱 두 번 기자와 시선이 정확히 마주쳤다. 학창시절 겪은 억울함을 토로했을 때, 그리고 "혐오정치를 끝내기 위해 국회로 왔다"는 포부를 밝힌 때다.
 
"너무 억울했습니다. 왜 나만 이런지, 학교는 왜 이렇게 밖에 해주지 못하는지 억울했어요. 눈물의 'ㄴ'자만 들어도 눈물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인권운동은 차별에 저항하는 힘이었고, 그 힘은 차별받은 경험에서 나오더라고요."

장애인에 대해서라면 "온 천지가 다 차별이었다"던 서 당선인은 인권운동가이자 목포시의원으로서 성폭행 및 가정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장애인들을 도와왔다. 2020년엔 시각장애인 최초로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임명됐다. 22대 총선에서는 범야권 비례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서 시민사회 추천 인사로 비례 1번을 받고 국회에 입성했다.

서 당선인의 의정활동 방향은 자연히 그가 걸어온 길을 기반으로 했다. 그가 가장 먼저 언급한 건 '장애인 이동권'이었다. "이동을 해야 교육도 받고 취업도 할 것 아니냐"는 게 그가 가진 문제의식이다. 자신의 1호 법안 역시 "장애인 콜택시 사업을 국비 매칭 사업으로 전면 개정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혐오정치를 끝내러 왔습니다. 정치인들의 혐오 발언은 시민들의 혐오를 정당화시켜 혐오 정치가 강한 힘을 발휘하도록 하거든요."

또 다른 문제의식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정치권의 '혐오 발언'이었다. 서 당선인은 특히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를 "혐오를 강화시킨 사람"이라고 직격했다. 이 대표가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투쟁'을 날선 말로 비난하면서 "(장애인 혐오로) 정권이 지하철에서 시위하는 장애인들을 강제로 끌어내리고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유치장에 가두는 일이 더 일상화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 당선인은 마지막으로 "장애인에게 특별대우를 해달라는 게 아니다, 보통의 시민처럼 지역사회에서 분리시키지 말고 시설로 보내지 말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며 "장애인에게 도움이 아니라 권리 차원의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미화 당선인 “혐오정치 끝내러 왔다” ⓒ 유성호



다음은 서 당선인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기초의원 활동 4년 후 현장 복귀한 그가 다시 정치 택한 까닭 

- 오랫동안 장애인 인권운동에 매진해왔는데 정치에 입문한 계기가 있나?

"지역에서 성폭력피해를 입은 발달장애인들을 지원하는 등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려고 노력해왔다. 실은 온 천지가 (장애인에게) 다 차별이라 할 일이 많았다. 이리 뒤고 저리 뛰면서 필요한 법안 발의를 요구했는데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러 단체들이 모여서 '차라리 우리가 후보를 내자'고 결정했다. 나도 그 중 한 명이 돼 (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그렇게 목포시의원이 된 4년 동안 밤 12시에 퇴근한 적이 없다. 낮에는 행사를 다녀야 하니 자료를 볼 시간은 밤뿐이었다. (4년 뒤엔) 더 못하겠더라. 다시 돌아가서 인권운동을 하겠노라 다짐했다."

- 그런데 다시 정치로 돌아왔다. 이번엔 '국회의원'이다. 이유가 있을까.

"지난 2년 때문이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가 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시민과 장애인을 갈라치고 혐오 정치를 더 양산했다. 물론 혐오 정치는 옛날부터 있었다. 하지만 그걸 강화시킨 사람이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다. 그는 국민의힘 전 대표 시절 장애인들의 이동권 시위를 가리켜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라고 비난했다. 정치인들의 혐오 발언은 시민들의 혐오를 정당화시켜 혐오 정치가 강한 힘을 발휘하도록 한다. 그러니 총선이 끝난 지금까지도 정권은 지하철에서 시위하는 장애인들을 강제로 끌어내리고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유치장에 가둔다. 그게 더 일상화됐다. 무책임한 정치 현실을 보면서 혐오정치를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회에 들어왔다."

- 당선인 역시 많은 장애인 인권 시위에 참여했다. 기억나는 현장을 하나 꼽는다면?

"총선을 한 달여 앞둔 지난 3월, 서울 혜화역에서 시위가 열렸다. 장애인분들은 승강장 벽 쪽에 붙어서 침묵시위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지하철 방송이 시작됐다. '불법 시위 단체는 지금 당장 나가지 않으면 강제 퇴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마이크 소리가 어찌나 큰지, 침묵시위를 보지 않고 있던 시민들이 느끼기에는 '지금 장애인들이 불법적인 지하철 점거를 하고 있구나' 하고 오해할 만했다. 그렇게 3차까지 경고를 한 후에 집행요원들이 와서 휠체어를 강제로 들어버렸다.

그런데 특히 뇌병변 장애인들은 자세가 불안정해지면 자기도 모르게 경련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손과 발이 자기도 모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게 경찰 뺨에 닿았던 것 같은데, '장애인이 경찰 뺨을 때려버렸다'고 가짜뉴스가 나왔다. 대표적인 갈라치기다. 그렇게 공무집행 방해로 구속영장까지 청구됐다. 물론 다 기각됐지만. 지하철에서 시위가 벌어지면 누구든 나서서 조정을 하려 노력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그런 노력은 없고 오히려 장애인들을 '비장애인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로 낙인찍어 혐오만 강화시키고 있었다."

- 이준석 대표의 발언이 '장애인 혐오'의 시작점이라고 했다. 22대 당선인이 된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이제 책임 있는 말씀을 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갈라치기 발언은 국민의 삶이나 대한민국 발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장애인도 이동할 수 있어야 교육도 받고 출근도 해"
 

▲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은 국회의원 출마한 이유에 대해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가 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시민과 장애인을 갈라치고 혐오 정치를 더 양산했다”며 “혐오정치를 끝내기 위해 국회로 왔다”고 말했다. ⓒ 유성호



- 시위가 주로 지하철역에서 이뤄지는 걸 보면, 장애인에게 '지하철'이 갖는 의미가 남다른 것 같다.

"맞다. 지하철역은 우리 장애인에게 굉장히 상징적인 장소다. 2001년에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사고 이후에 장애인 이동권 연대가 생겼다. 이 연대가 처음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만들어달라는 투쟁을 시작했다. 또 이동권은 장애인이 요구하는 가장 기본적 권리다. 이동할 수 있어야 교육도 받고 출근도 할 것 아닌가? 장애인이 사회에서 분리, 배제되지 않고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하려면 말이다."

- 장애인단체의 지하철 시위에 대해 일반 시민들의 부정적인 여론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처음부터 시민들이 그런 생각을 가졌던 건 아니다. 불편함은 느꼈겠지만 '저분들은 얼마나 더 불편할까' 하는 생각에 침묵하는 분들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혐오가 강화됐던 시점은 이준석 대표의 발언 이후부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 여러분들께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불편함을 갖고 계신 점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불편하시다면 하루 속히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해결되도록 힘을 모아달라. 우리와 같은 목소리를 내주셨으면 좋겠다."

- 가장 먼저 발의하고자 하는 '1호 법안' 역시 '이동권'과 관련이 있을까?

"맞다. 지금도 장애인의 이동권은 아주, 아주 미흡하다. 일례로 리프트가 장착된 차를 '장애인 콜택시'라고 부른다. 지금은 이 택시 운영비가 지방비로 지원된다. 물론 지난 2021년 운영비 일부를 국비로 보조할 수 있도록 하는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임의조항이고 '매칭 사업'이 아니다 보니 여전히 지방비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택시가 광역시 단위를 넘지 않는다. 우리 지역 예산으로 운영되는 만큼 다른 지역으로는 못 넘어간다는 것이다.

또 기초단체들의 조례로는 장애인 콜택시를 365일 운영하게 돼 있지만, 차량 대수나 운영비가 적다 보니, 저녁 때가 되면 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한 장애인이) 저녁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목포에서 구례로 이동을 해야 했는데 이동 수단이 없어 부모님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그런 일들이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다. 장애인 콜택시를 국비 매칭 사업으로 전부 개정해, 장애인들이 지역을 넘나들고 24시간 장애인 콜택시를 이동할 수 있게끔 하고 싶다."

"늘 남들에게 '사정하며' 사는 삶이었다"

- 당선인은 청소년기 시각장애인이 됐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느낀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가장 예민했던 청소년기에 교과서도 볼 수 없고 칠판 글씨도 안 보이는, 소리로 듣는 사람이 됐다. 굉장히 힘들었는데 특수학교를 가지 않고 학교를 다녔다. 교육 관련 정보를 문서로 확인하기가 어려워, 선생님이 틀린 말을 해도 그게 맞는 줄 알았다. 어떤 서비스도 지원되지 않았고, 시각장애로 인해 정보 접근이 어려워진 책임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그래서 늘 사정을 했다. 친구들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미안해, 고마워'를 입에 달고 살았다. 선생님에게도 사정을 해야 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월말고사를 봤다. 그런데 45~50분 동안 시험지를 풀어야 하는데, 문제가 보이지 않았다. 제일 먼저 시험을 끝낸 친구에게 문제를 읽어달라고 부탁해두고, 선생님께도 '쉬는 시간까지 시간을 더 달라'고 사정했다."

- 장애로 인한 책임까지 스스로 져야 했던 사회 구조에 분노했을 듯하다.

"나는 너무 억울했다. 늘 그렇게 이야기했다. 너무 억울하다고. 차별받을 때 억울하지 않나, 왜 나는 이렇게 해야 하는지, 학교는 왜 이렇게 밖에 해주지 못하는지 억울했다. 눈물의 'ㄴ'자만 들어도 눈물이 나왔다. 사람이 우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억울할 때 제일 눈물이 잘 나오는 것 같다. 나는 늘 사정을 하며 인생을 살아왔다. 그게 너무 억울하고 자존심 상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대학을 나왔다. 당시에는 취업이 비교적 잘 되던 시기라, 대학을 나오면 취업은 하게 될 줄 알았다."

- 구직 활동에서는 어떤 어려움을 겪었나?

"어느 곳도 시각장애인을 채용하지 않았다.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는 순간 서류에서 다 떨어졌다. 그때 '한국에서는 장애를 갖고 어느 곳에도 취업할 수가 없겠구나' 느꼈다. 한국은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도 느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된다'고 대학 졸업할 때까지 개인적으로 호소해 오다가 30대 때 지역에서 장애 여성 인권운동 단체를 직접 만들었다. 혼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손상'을 가졌을 뿐,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야"
 

▲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인은 “국회의원 임기 4년은 짧은 시간이다. 성과를 내기도 쉽지 않다. 다만 하루하루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성실하게 일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 유성호


-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장애인을 '동료 시민'이 아닌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강하다. 이와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장애인들은 '이거 해줘, 저거 해줘' 말하는 게 아니다. 보통의 시민처럼 지역사회에서 분리시키지 말고 시설로 보내지 말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리프트' 같은 이동 수단을 장착하는 것일 수 있고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건축물을 만드는 것일 수도, 노동 현장에 나가도록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장애인이니까 특별대우를 해달라는 게 아니다.

도움이 아니고 권리 차원의 지원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현재는 장애인들을 대할 때 '특'이라는 글자를 많이 쓴다. 특수교육, 특별지원 등이다. 마치 장애인에게 세금을 훨씬 써서 특별대우 하는 것처럼도 오해를 하게 하는 말이다. 또 장애인을 '도움 없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사회 인식이 아직도 너무나 강력하게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바꿔야 한다. 장애인은 손상을 가졌을 뿐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 장애인들의 '탈시설 운동'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최근 서울시에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가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 조례 폐지론자들은 '탈시설 정책이 오히려 중증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 또한 갈라치기 혐오 정치가 만들어낸 또 다른 오해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 당시의 국정과제였던 '탈시설 로드맵'은 장애인들에게 '당장 지금 시설에서 나가 혼자 잘 살라'는 취지가 아니었다. 탈시설 정책은 다양한 사회 서비스 정책과 신발짝처럼 같이 가야 한다. 탈시설을 했을 때의 주거 서비스 활동, 우리 사회의 다양한 환경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또 탈시설은 정책이기 이전에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서 정한 권리다. 국제사회의 대흐름이 그렇다. 최초의 시설이 19세기 영국의 구빈원이다. 부랑인들을 한 곳에 모아두고 최소한의 식사를 제공하면서 관리한 역사다. 관리하기 쉽다는 이유로 이 시스템이 현대까지 이어졌다.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밥 먹게 하고 메뉴도 모두 통일하고.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효율적이지만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실현하기에는 너무 후진적인 방식이다."

- 당선인 외에도 국민의미래 최보윤‧김예지 당선인이 장애인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들과 함께 하고픈 정책이 있나?

"지난 2020년 5월 광주 폐기물 공장에서 김재순씨라는 발달장애인이 산재로 사망했다. 그 후에 (김예지 의원이) 장애인 산재 관련 실태 조사를 진행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내용을 담은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통과가 안 됐다. 힘을 보태고 싶다. 또 시각장애인의 접근성 관련 논의에도 초당적으로 협력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22대 국회의원으로서 포부가 있다면?

"나는 정당 후보가 아니라, 연합 정치에서의 시민후보로 정치권으로 들어오게 됐다. 이런 시도가 고무적이라고 생각하고 확대,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연합 정치의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겠다. 국회의원 임기 4년은 짧은 시간이다. 성과를 내기도 쉽지 않다. 다만 하루하루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성실하게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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