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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내 성폭력 드라마, 반전이 나올 때 멈칫한 이유

[신필규의 아직도 적응 중] 상처는 결국 옅어질 수 있다

등록|2024.05.06 18:41 수정|2024.05.06 18:41

▲ CBS 드라마 <이퀄라이저> ⓒ CBS

  
일정이 없는 주말이면 집을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는 한다. 특별히 선호하는 장르가 있는 건 아니지만 보통은 해외에서 만든 수사물을 보게 된다.

일단 이 드라마들은 각각의 사건 단위로 회차가 구성되기 때문에 대부분 하나의 에피소드 안에서 이야기가 완결된다. 그래서 언제 시청을 중단해도 그렇게 큰 부담이 없다. 이어질 이야기가 궁금해서 다음 회차를 계속해서 보게 되는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부담 없는 시청이 목적이다 보니 고르는 드라마의 성격도 꽤 비슷하다. 수사물의 성격상 범죄를 다루는 주인공들이 심각한 태도를 취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다루는 소재를 너무 깊게 파지 않는 작품을 선호한다. 편하게 시간을 보내려는 요량으로 드라마를 고르기 때문이다. 이야기에 고민거리가 적고 주인공들이 전문 직업인으로서 자신들의 일을 충실히만 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해서 고른 드라마 중 하나가 CBS에서 제작한 <이퀄라이저>다. 이 작품은 동명의 영화 시리즈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는데 사실 영화도 오래 전에 방송된 드라마를 원작으로 두고 있다고 하니 어찌 보면 먼 길을 돌아서 다시 원래의 플랫폼으로 돌아온 셈이다.

아무튼 드라마 <이퀄라이저>는 영화판에 비해 폭력성과 잔인함이 대폭 낮아졌고 극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졌으며 인물 간의 농담의 양은 대폭 늘었다. 영화를 생각하고 드라마를 고른 이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지만 보다 대중적인 시청자층을 고려한 게 아닌가 싶다. 실제로 나 또한 이 이유 때문에 드라마를 고르기도 했다. 주말 오후에 와인을 한잔 마시며 편하게 감상하기 좋은 작품인 것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에피소드 중 하나가 바로 조직 내 성폭력을 다루고 있다.

'성폭력'이라는 주제가 꺼려졌던 이유

사실 이 에피소드의 초반은 살해 협박을 받는 젊은 여성을 구하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런 내용이 나오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회차가 점점 진행되고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면서 그 배경에 성폭력 사건이 개입되어 있음이 밝혀진다.

약간의 반전이라면 반전인데 어색할 것은 없다. 오히려 연예 산업 내의 성폭력 문제가 고발된 미투 시대를 지나온 미국 방송계가 이 주제를 다루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긴 하다. 그리고 사건을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장면도 드라마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드라마가 반전을 맞이하는 순간 시청을 이어갈지 잠시 멈칫했다. 적어도 나에게 이 주제는 주말 오후에 와인 한잔을 들고 느긋하게 감상할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개인적으로 꽤 오랜 시간 동안 벗어나고 도망치고자 했던 일이 있었다. 얼마 전 신경정신과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보니 햇수로는 4년 정도 전의 일이다. 사실 애초에 그 병원에 가기 시작한 것도 그 일이 있어서였다. 마치 갑작스럽게 진창으로 밀쳐져 떨어지는 기분이 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알 것이다. 진짜 고통은 추락의 순간이 아니라 이후부터 찾아온다는 것을.

전에 겪어보지 못한 수준의 무력감과 수치심이 일상을 잠식하고 아무리 기억으로부터 고개를 돌려도 경험은 부지불식간에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랐다. 밤에 잠을 자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요동치는 감정과 함께 유독 길게 느껴지는 새벽을 뜬눈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러니 비슷한 결의 일을 겪은 등장인물을 바라보고 이입하는 건 꽤나 두려운 일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내 생각과 마음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내게 지난 4년의 초창기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수긍할 수 있었던 대사
 

▲ CBS에서 제작한 미국 범죄 드라마 TV 시리즈 <이퀄라이저>에는 퀸 라티파가 전직 CIA 요원 로빈 맥콜로 나온다. ⓒ CBS


두려움과 호기심 사이에서 나는 후자를 선택했고 생각보다 무난한 감상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에피소드의 마지막 결국 무사히 생존한 직장 내 성폭력 생존자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묻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그러자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기나긴 인생에서 한 가지의 사건을 겪었고 앞으로 써내려갈 챕터는 아주 길다. 분명 당신은 지금의 경험에서 벗어나 새로운 내용으로 인생의 나머지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뭉클한 대사이긴 하지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닐 텐데? 아니던데? 인생에서 어떤 일은 깔끔하게 갈무리하여 구석에 수납해두는 게 불가능 하고 마치 쏟아진 잉크처럼 삶의 모든 페이지에 흔적을 남긴다. 물론 '모든 페이지'라는 표현은 부정확한 말이긴 하다. 나도 이제 4년 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 모르는 미래가 있는 셈이니까.

드라마를 끄고 곰곰이 대사를 곱씹었다. 반사적인 억하심정이 지나가고 나니 침착하게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공평하게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틀린 부분은 이미 내가 생각한 것, 그런 식의 경험에서 깔끔하게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아마 앞으로 이어질 인생에도 흔적이 남겨질 것이란 점이다.

하지만 저 대사가 맞고 내가 틀린 부분도 있다. 그 경험의 흔적이 늘 선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옅어지기도 하고 오히려 갑작스레 진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조력과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결국 경험의 흔적은 점점 옅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일단 버티는 것에 성공한다면 결과적으로는 흔적이 있었던 흔적만 남게 된다.

상처는 결국 옅어질 수 있다

거의 투명하게 옅어져서 부러 기억하려 하지 않으면 의식할 수 없지만 언젠가 그곳에 고통스러운 경험의 흔적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다른 누구도 아니라 오직 나만이. 모든 것이 사라진 백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삶의 다음 챕터에 새로 쓴 내용들은 아주 선명하게 잘 보이게 된다. 과거의 경험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새로 마주하는 일들이 명백하게 더 우선이고 먼저가 된다. 변화는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완벽한 해방이란 없다.

하지만 그게 자유가 없다는 뜻이 되는 건 아니다. 기억을 선택적으로 지우는 건 불가능 하고 벌어진 일이 없던 일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동시에 또렷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가능해진다. 다시 힘차게 내가 원하는 걸 말하고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다는 걸 알게 된다.

새로운 내용으로 인생의 나머지 챕터를 채울 수 있다는 건 그래서 절반의 진실이다. 과거도 현재도 모두 함께 미래를 향해 간다. 그리고 마음의 상처란 마치 짐승과도 같은 것이어서 길들여지는 것 같다가도 사람을 할퀴길 반복한다. 기나긴 새벽을 마주하는 시간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횟수와 괴로움은 결국 줄어든다. 적절한 조력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비록 원하던 방식과 그림대로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다시 능동적으로 새 삶을 꾸릴 수 있을 정도만큼은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니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남은 내 인생을 새로운 내용으로 채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전하고 싶다. 완벽하게 원하는 걸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아지긴 할 것이다. 그러니 희망을 가지고 버텨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사족. 4년 전의 나는 내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나는 무척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따스한 관심과 애정으로 나를 삶에 강하게 붙들어 둔 친구들도 있었다. 그 모두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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