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아르티스 동물원 방문기
지난 4월 6일부터 12일까지 아이와 함께 한 6박 7일간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여행에서 느낀 점을 공유합니다.[기자말]
동물원에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지금껏 동물원은 신나는 곳, 신기한 곳이었지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찾는 공간은 아니었다. 오히려 동물원에 갔다가 신기하고 재밌으면서도 어딘가 석연찮고 씁쓸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았는데, 이곳은 달랐다. 동물원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감탄은 짙어졌다.
가장 처음 나타난 원숭이 무리가 있는 구역은 개울 같은 물로 둘러싸여 있었다. 굉장히 개방적이고 넓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 다니는 구역과 거리가 무척 가까운데에도 불구하고 철조망이나 그물망이 따로 없었다.
원숭이 한 마리가 여유롭게 물가에서 토마토를 씻고 있었다. 물 깊이가 얼마나 될지 몰라도 얼핏 보아 원숭이가 마음만 먹으면 구역 밖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 철조망이나 그물망 없는 집원숭이들이 답답하지 않은 하늘을 보며 살겠네요. ⓒ 아멜리에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잘 가꾸어진 공원 같은 동물원의 모습이 드러났다. 벽돌로 깔아놓은 넓지 않은 인도와 나무, 풀, 꽃, 원래 있었던 것처럼 흐르는 물이 어우러져 아주 자연스럽고 아기자기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갑자기 어떤 동물이 우는 소리가 허공에 울려 멈추어보니 저 멀리 키 큰 나무의 꼭대기가 무겁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원숭이 한 마리가 나무 위에서 내는 소리였다. 교회 종소리처럼 동물원에 울려 퍼지는 그 소리를 듣고는 이 동물원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힐 수밖에 없었다.
어느 한쪽에서는 철조망이나 물,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그 어떤 장애물 하나 없이 검은 얼굴에 붉은 털을 한 원숭이가 나무에 올라 긴 꼬리를 늘어뜨린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사람과 원숭이는 적정거리를 유지하며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서로를 관찰했다. 한동안 나무에 올라있던 원숭이는 공중에 매달린 통나무를 타고 사람들 머리 위를 지나 지붕이 있는 집으로 쏙 들어갔다.
▲ 자연에 가깝게최대한 인공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자연에 가깝게 ⓒ 아멜리에최
동물원, 하면 빠질 수 없는 코끼리, 기린, 사자와 같은 대형동물들을 지나 개미핥기와 작은 설치류를 보았다. 동물의 종류로 따지자면 어린이대공원이나 에버랜드만큼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전혀 아쉽지는 않았다. 아이와 함께 대형 동물원을 다니다 보면 중간에 어른이고 아이고 지치기 마련인데, 아이와 한 바퀴 둘러보기에 적합한 규모라 오히려 좋았다.
쭉 돌아보니 각 동물들이 있는 구역마다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 크기가 비좁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 바닥이 시멘트가 아닌 흙이나 모래로 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커다란 나무나 식물들이 꼭 함께 있다는 점이었다.
동물들이 거주하는 환경을 인공적인 재료는 최대한 배제하고 자연에 가까운 재료로 채운 느낌이었다. 특히 새들이 있는 우리 안에는 각종 열대식물들이 풍부하게 식재되어 있어 꼭 정글의 한 구석을 엿보는 것 같았다.
▲ 새들도 행복하게흙으로 바닥을 깔고 식물을 많이 배치한 우리 ⓒ 아멜리에최
모험심을 키워주는 놀이터
걷다 보니 놀이터가 나왔다. 놀이터에서 흔히 기대하는 미끄럼틀과 흔들다리, 클라이밍이 있는 자그마한 모래 놀이터였다. 꼭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동물원의 전체적인 모습과도 무척 잘 어울렸다. 놀이터를 만난 아이는 반가워하며 한동안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시 걷다 보니 기린이 있는 구역 바로 옆에 나무로 만들어진 구조물이 보였다. 멀리서도 눈에 들어올 만큼 커다란 구조물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다가가 보니 통나무로 만들어진 오두막 형식의 놀이터였다. 아까 만났던 작은 놀이터에는 주로 5세 이전의 아이들이 있었다면 그보다 나이가 많은 아이들이 이곳에 몰려 있었다.
▲ 나무오두막안전과 위험의 경계를 스스로 판단하도록 한 설계 ⓒ 아멜리에최
놀이터 내부로 들어가려면 무조건 외나무 다리를 건너야 했다. 외나무 다리의 위치가 꽤 높아서 조금의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와 같이 올라갔다. 균형을 잡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놀이터 안으로 들어가니 계단으로 각 층이 구분되어 있었고 가장 꼭대기 층에는 아주 긴 커브형 미끄럼틀이 있었다.
다른 층으로 내려가 흔들거리는 나무 다리를 건너면 다른 편으로 놀이터가 이어지는데 그곳에는 계단 대신 봉으로 각 층이 연결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익숙한 듯 봉을 타고 올랐다. 이곳에서도 지상으로 내려가려면 역시나 비정형적으로 놓여 있는 외나무 다리들을 통과해야 했다.
이 놀이터에는 성인인 나에게도 조금 겁이 나 선뜻 시도할 수 없었던 구역이 있었지만 그곳에서 노는 6~10세 남짓의 아이들은 거침이 없었다. 신나게 뛰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며 모험을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스웨덴의 놀이터에는 위험 요소가 조금씩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이 아이들의 자율성과 근력, 판단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자연스럽게 실패를 경험하게 하여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모험심을 키워주는 교육방식이라고 했다. 덧붙이면 이런 스타일의 놀이터에서는 질서도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서로가 위험해질 테니 말이다.
아이들의 공간을 '제한된 안전지대'로 한정하지 않고 안전과 위험의 경계를 스스로 판단하게 하여 경계를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네덜란드에도 있는 모양이다. 그 교육 철학이 실현되는 현장을 암스테르담의 한 동물원에서 목격한 것이다. '저러다 다치면 크게 다칠 텐데' 나의 우려와 달리 그곳에 있는 동안 울거나 다친 아이는 없었고 모두가 흥분과 신체활동으로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동물원'에서 '교육기관'으로
아르티스 동물원 홈페이지에는 1838년에 처음 지어진 동물원의 역사를 소개하며 최근 20년 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동물원'에서 '교육기관'으로 변모하고자 노력해 왔고 그 일환으로 동물과 식물의 공간을 확장하였음을 설명하고 있다. 아르티스 동물원을 거니는 동안 다른 동물원에서 느꼈던 불편한 마음이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9세기 제국주의 아래에서는 '내가 아닌 모든 것들(=타자)'이 수집과 관찰, 분류의 대상이 되었고(인간도 예외없이), 그 연구의 결과는 정복과 지배의 정당성을 뒷받침 해왔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동물원은 박물관, 박람회와 더불어 타자를 전시하는 공간으로서 교육과 문화, 즉 이데올로기의 영역에서 제국주의를 선전하는 도구로 쓰였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약 200년이 지난 지금, 동물원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어떤 역할을 담당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아르티스 동물원은 아주 똑똑하고 빠르게 시대적 요구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의 가능성과 영역을 확장하며 답을 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 안전과 모험, 같음과 다름, 공존과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아르티스 동물원은 시각적 아름다움이 세계에 대한 인식, 사고, 철학과 연결되어 있음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잘 만들어진 동물원은 아이는 물론이고 머리가 굳은 성인의 감각과 사고까지 환기시켜줄 수 있는, 모두를 위한 공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느꼈다.
암스테르담에 다녀온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아르티스 동물원의 아름다운 풍경과 그곳에서 느꼈던 충격은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 있다. 교육기관으로 변모하려는 시도는 무척 성공적이었고, 당신들이 제공하는 경험을 일상적으로 누릴 수 있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부럽다고 고백하고 싶다.
▲ 아르티스동물원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인공의 공간 ⓒ 아멜리에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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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lie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