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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재기 꿈꾸는 김상식, '제2의 박항서' 가능할까

베트남 축구 대표팀, 새 사령탑으로 김상식 감독 선임... 2년 계약

등록|2024.05.04 11:48 수정|2024.05.04 11:48

▲ 베트남 축구대표팀 사령탑 계약을 체결한 김상식 감독 ⓒ 연합뉴스


'박항서 신드롬'을 경험했던 베트남 축구계가 다시 한 번 한국인 감독과 손을 잡았다. 3일 베트남축구협회(VFF)는 "한국 출신의 김상식 감독을 베트남 A대표팀과 U23 대표팀을 총괄하는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김 감독의 계약기간은 2026년 3월 31일까지 약 2년간이며, 오는 6일에 취임식이 열린다.

한국인 감독이 베트남 사령탑을 맡은 것은 박항서 전 감독에 이어 두 번째다. 박 감독은 2017년부터 베트남 A팀과 U23팀을 겸임해, 2023년까지 무려 5년 4개월간을 장기 집권하면서 베트남 축구의 역사를 연달아 새롭게 써내려간 '국민영웅'으로 등극했다.

2018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위, 2018년 동남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스즈키컵) 우승. 2019년 UAE 아시안컵 8강, 2022년 FIFA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베트남 축구 역사상 최초의 최종 예선 진출과 첫 승(중국전) 등이 모두 박항서 감독의 작품들이다. 박 감독은 지난해 베트남 사령탑에서 명예롭게 물러난 이후에도, 박닌 FC의 기술고문을 맡으며 베트남 축구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베트남은 박항서 감독과 결별한 이후 프랑스 출신의 필립 트루시에 감독을 새롭게 선임했다. 트루시에는 2002 한일월드컵에서 일본 대표팀을 지휘하며 16강 진출을 이뤄냈고 모로코 대표팀,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등 여러 클럽과 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베테랑 지도자였지만 베트남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트루시에의 베트남 대표팀은 월드컵 2차 예선과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연패를 거듭했고, FIFA 랭킹은 100위권 밖으로 추락했다.

특히 지난 2026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와 2연전에서 한골도 넣지못하고 2연패를 당한 게 치명적이었다. 트루시에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최근 10번의 A매치에서 베트남은 고작 1승 9패에 그쳤다.

베트남 현지에서는 '박항서가 5년여간 공들여 만들어놓은 베트남 축구를, 트루시에가 1년 만에 파괴했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베트남 축구협회는 지난 3월 트루시에를 전격 경질했다.

베트남 현지 일각에서는 박항서 감독의 복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베트남 축구협회의 선택은 또다른 한국인 감독이었다. 박항서 감독에 이어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가 AFC U-23 아시안컵에서 한국을 꺾고 4강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키면서, 최근 동남아 축구계에 한국인 지도자들의 주가가 크게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상식 감독은 한국축구와 K리그의 레전드 출신이다. 김 감독은 현역 시절 당대의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로 성남 일화(현 성남FC)와 전북 현대에서 선수생활을 보내며 무려 5회의 K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국가대표로도 10여 년 넘게 활약하며 A매치 59경기에 출전했고 2006 독일월드컵-2007 아시안컵 무대 등을 밟았다.

지도자로서는 명암이 엇갈렸다. 김상식 감독은 은퇴 후 친정팀 전북에서만 무려 8년 가까이 코치를 거쳐 감독의 자리에 올랐을 만큼 전북을 상징하는 레전드였다. 2021년 K리그 우승, 2002년 FA컵 우승을 각각 차지하며 나름의 성과를 남겼다. 전북에서만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차지해본 인물은 김상식 감독이 유일했다.

하지만 내용 면에서 김 감독은 무리한 세대교체의 실패, 경직되고 색깔없는 전술운용, 미숙한 인터뷰 스킬로 인한 잦은 설화. 팬덤과의 불화 등이 겹치며 재임 기간 내내 끊임없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김상식 감독이 맡았던 전북이 이미 이전부터 K리그를 장기집권하고 있던 리그 최강팀으로 선수구성과 구단의 투자 면에서도 단연 최고 수준이었기에, 김 감독은 우승에도 불구하고 그리 인정을 받지 못했고 오히려 팀전력과 위상이 갈수록 점점 떨어진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더 높았다.

결국 김 감독은 부임 3년 차였던 2023시즌 초반, 우승후보로 꼽히던 팀이 강등권까지 추락하면서 비난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사퇴했다.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플레이어자 한 팀의 레전드로 인정받던 인물이 이렇게까지 뭇매와 악평을 받으며 초라하게 퇴장한 것도 전례가 드문 일이었다. 전북에서 팀을 떠나는 과정이 너무나 시끄럽고 좋지 않았기에, 앞으로 국내에서 다른 팀의 지도자 생활을 이어갈수 있을지도 의문부호가 붙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의외의 자리에서 빠르게 재기의 기회를 잡았다. 7년 전 한국에서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으며 잊혀져가는 지도자였던 박항서 감독을 재발굴하여 대박을 터뜨린 베트남축구협회가 이번엔 김상식 감독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김 감독으로서는 대선배 박항서나 신태용 감독처럼, 외국에서 지도자로 다시 재기할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 전망이다.

김상식 감독이 과연 베트남에서 '제2의 박항서 혹은 신태용'이 될 수 있을지는 전망이 엇갈린다. 박항서 감독은 K리그에서는 주로 전력이 떨어지는 약체팀이나 중소클럽의 감독만을 역임하여 우승컵과는 큰 인연이 없었지만, 최소한 지도력이나 선수단 관리에 있어서는 항상 호평을 받았다. 신태용 감독은 성남을 이끌며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국가대표팀에서 U20월드컵-리우올림픽-러시아월드컵을 모두 지휘해본 경험과 실적이 모두 풍부한 지도자였다.

반면 김상식 감독은 두 사람에 비해 지도자 경력도 짧은 데다 해외팀이나 국가대표팀 지도 경험은 아예 전무하다는 게 약점이다. K리그 최고 수준의 클럽인 전북에서 전폭적인 지원까지 등에 업고도 실패를 맛본 김 감독이, 아시아축구의 '언더독'이자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적응해야하는 베트남에서 얼마나 통할 수 있을지는 예측불허다.

김상식 감독의 첫 임무는 베트남 A대표팀을 이끌고 다음달 6월에 있을 2026 FIFA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마지막 2연전(필리핀-이라크)을 준비하는 것이다. 올해 11월에는 '2024 아세안 미쓰비시컵'이 열리며 내년 3월에는 2027 AFC 아시안컵 3차 예선 등을 앞두고 있다.

또한 김 감독이 겸임하는 베트남 23세 이하 대표팀은 2025년 12월 태국에서 열리는 동남아시안게임과 2026년 AFC 23세 이하 아시안컵 예선 등을 준비해야 한다. 과연 김상식 감독이 박항서-신태용-김판곤 등 동남아축구 한류 지도자 신드롬을 잇는 또 한 명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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