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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딸의 일성 "역사에 박제되는 걸 가장 싫어하셨다"

[현장] "내일의 싸움 위한 사랑방"... 백기완 마당집 개관, 골목길 가득 채운 300여명

등록|2024.05.06 18:37 수정|2024.05.14 13:46

▲ 6일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구 대학로 백기완마당집에서 열린 개관식에서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 김화빈


"윤석열 정권이기에 어느 때보다 더 백기완 정신이 필요합니다." -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

"아버지는 역사에 박제되는 걸 가장 싫어하셨습니다. 이곳은 박제와 기념의 공간이 아닙니다. 이 마당집은 오늘 싸움을 마무리하고 내일 싸움을 주도하는 모든 이들에게 열린 사랑방입니다." -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 


6일 오전 10시께 통일문제연구소가 사무실을 '백기완 마당집(서울 종로구 대학로)'으로 새로 단장해 개관식을 열었다. 고 백기완 소장이 세상을 떠난 지 3년 3개월 만이다.

비가 내리는 흐린 날씨에도 백 소장의 '노나메기 세상(너도 나도 일하고 올바르게 잘 사는 세상)' 정신을 기억하는 약 300여 명의 사람들이 좁은 골목길을 가득 채웠다. 백 소장이 결혼식 주례를 섰던 부부부터 고인과 연대한 노동자들은 물론 시민들까지 다양한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백 소장이 자신의 결혼식 주례를 서 줬다고 밝힌 이명재씨는 "오늘 개관식이 있다고 해서 경북 김천에서 올라왔다"며 "선생님께선 오직 정의의 관점에서 바른 소리만 하셨고, 우리 사회 참 많은 영향을 끼치셨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너무 못하는데 살아계셨다면 호통 많이 치셨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모든 노동자·민중의 언덕이자 거점"인 마당집
 

▲ 6일 오전 10시 30분께 서울 종로구 대학로 백기완마당집 앞 개관식서 '백기완 집 문 열었소'라고 적힌 만장을 들고 가는 김주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 ⓒ 김화빈

 

▲ 6일 오전 10시 30분께 서울 종로구 대학로 백기완마당집 인근에서 마당집 개관을 알리는 터울림 공연이 이뤄지고, 개관식 참가자들이 흥에 겨워 하는 모습이다. ⓒ 김화빈


'백기완 집 문 열었소'

오전 10시 40분께 개관을 알리는 만장을 든 노동자가 앞장서자 꽹과리·장구·태평소를 연주하는 놀이패가 뒤따르며 마당집 골목 한 바퀴를 돌았다. 가락에 맞춰 서로 손을 맞잡고 춤추는 모습이 낯선 듯 인근을 지나던 행인들도 잠시 멈춰 구경했다. 구성진 춤판과 노래가락은 개관식 내내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마당집을 덮었던 제막식 천을 걷어낼 때도, 백 소장의 마지막 옷을 지은 이기연(질경이 우리옷 대표)씨가 천을 가를 때도, 판소리 명창의 공연을 듣고 고인을 기릴 때도 흥겨운 노래가 계속됐다.   

이날 개관식 축사에 나선 백 소장의 장녀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는 "아버지는 1988년 '벽돌 한 돌 쌓기' 운동을 통해 이 마당집(당시 통일문제연구소)을 만드셨다"라며 "(대문 기둥) 돌에도 적혀있듯 이곳은 반독재민주화와 해방통일운동의 거점이 됐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곳은 일상·전선에서 싸우는 모두를 위한 곳"이라며 "아버지는 자신을 역사에 박제하시는 것을 가장 싫어하셨다. 이 마당집은 박제와 기념의 공간이 아닌 내일의 싸움을 주도하는 이들을 위한 사랑방이니 언제든 오시라"고 말했다.

신학철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이사장도 "여기 오신 분들은 백기완 선생과 함께 싸워온 분들이고, 이 마당집은 여러분들의 집"이라며 "백 선생이 살아있을 때처럼 똑같이 민주·통일·노나메기 사랑방 구실을 할 테니 많이 사용해 달라"고 덧붙였다.

임진택 명창은 '비나리와 질라라비' 불림 공연을 통해 개관식에 참석한 모두가 백 소장의 정신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 모인 우리는 딱 한 발 떼기에 목숨을 걸라는, 기죽지 말라는 선생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썩어 무너진 자본주의 문명 너머 세상, 돈이 주인이 아닌 일하는 사람이 주인인 세상을 만들고자 모였다.

여기 모인 우리는 노나메기 세상을 꿈꾸며 한 번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선생의 89회 한살매(생애)를 기억하며 이 백기완 마당집이 모든 시민·노동자·민중의 언덕이자 진지가 돼 각자의 힘과 지혜를 고루 내놓고 쓸 수 있도록 집 문을 활짝 열어놓고 끝까지 싸우고 일할 것을 맹세한다." - 임진택 명창의 비나리와 질라라비 공연 중 일부 내용.


"어려울수록 살아나는 백기완 정신으로 반노동 정책에 맞설 것"
 

▲ 6일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구 대학로 백기완마당집 앞에서 열린 개관식에서 배가르기 행사가 이뤄지는 모습이다. ⓒ 김화빈

 

▲ 6일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구 대학로 백기완마당집 1층 옛살라비(옛방)를 둘러 보는 문정현 신부 ⓒ 김화빈


개관식이 끝난 후엔 마당집 앞 골목식당과 천막에서 집들이 잔치가 열렸다. 200인분의 약밥, 고사 시루떡, 진달래 꽃술과 막걸리, 김치겉절이와 홍어무침 등은 노나메기재단 후원자들과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의 기증으로 마련됐다. 사람들은 개관식이 끝난 뒤 삼삼오오 테이블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음식을 나눠 먹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잔치를 이어갔다.

이날 천막 앞에서 만난 김득중 전국금속노조 쌍용자동자치부 지부장은 백 소장과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 현장에서 연을 맺었다. 김 지부장은 <오마이뉴스>에 "선생님은 저희가 있던 평택공장과 (숨진)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빈소가 있던 서울 대한문을 10년간 오고 가시며 큰 버팀목이 돼 주셨다"며 "연초에 새해 인사를 드리면 선생님은 덕담과 세뱃돈을 주셨다. 힘든 투쟁의 한 해를 선생님의 격려로 시작했다"고 떠올렸다.

김 지부장은 "이 마당집은 저뿐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와 민중들이 잠시 애환을 삼키고 주저앉을 때면 기운을 받아가던 곳"이라며 "지금 선생님은 계시지 않지만, 남아있는 저희가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정책 속 노동자의 자존심을 지켜내는 싸움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개관식에서 '백기완 집 문 열었소'라고 적힌 만장을 높이 들었던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은 <오마이뉴스>에 "선생님께선 항상 비정규직 투쟁에 앞장서 주셨고, 저희가 선생님이 가실 때도 운구를 했었다"며 "마지막 순간에도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죽지 말고 힘껏 싸우라는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을 잘 따르겠다는 마음으로 만장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윤석열 정권 들어 노동자 탄압이 거세지고 있는 지금 백기완 정신은 더욱 필요하다"며 "유독 어려운 상황일 수록 선생님의 노나메기 한 발 떼기 정신은 살아난다. 주변 사람을 북돋아 주고 이끌어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은 자로서 선생님의 목숨 걸고 한 발 떼기를 위해 어떤 싸움을 이어가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며 "백기완 정신에서 그 답을 찾겠다"고 덧붙였다.
 

▲ 6일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구 대학로 백기완마당집 앞 개관식서 만난 이명재·박성숙씨 부부가 1989년 서울 종로구 향린교회서 결혼할 당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주례를 본 인연을 소개하며 보여준 사진 ⓒ 김화빈


백 소장은 1932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한평생 통일·노동·민중운동에 헌신했다.백 소장은 한일협정 반대운동(1964년) 백범사상연구소 설립(1967년) 후 유신헌법 철폐 100만인 서명운동(1974년)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YMCA 위장결혼 사건(1979년)으로 고문을 당했고, 권인숙 성고문 사건 진상 폭로대회(1986)를 주도한 혐의로 옥고를 치렀다.

백 소장은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고, 1992년에도 대선에 출마해 완주했다. 백 소장은 이후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노동·통일문제 등에 힘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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