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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반려동물은 닭이에요, 얼마나 똑똑한데요

8살 할머니부터 막내까지... 이 부부가 닭들과 함께 살게 된 사연

등록|2024.05.10 18:43 수정|2024.05.10 18:43

▲ 장대근·강미숙씨가 키우는 반려닭 ⓒ 월간 옥이네


옛 37번 국도가 지나는 충북 옥천군 옥천읍 죽향리 주은옥향아파트 단지 건너편으로 언뜻 뒤뚱이며 걸어가는 닭이 보인다. 천연스레 아스팔트 도로 옆으로 걸어가는 그 모습에 의아함이 고개를 든다. 불쑥 튀어나온 저 닭이 어디서 온 닭인가, 출처가 궁금해 가까이 다가가 보니 식당 주차장 한편에서 산책을 즐기는 닭 무리가 있다. 주차장 입구 옆에 수풀 아래도 한 무리 닭이 배를 깔고선 한낮의 일광욕을 즐긴다.

생경한 풍경에 말을 잊은 사이 장대근씨가 다가와 이들을 소개한다. 식당 '의정부 부대찌개&배부른생오리'를 운영하는, 그리고 이 닭들을 먹이고 키우는 이다. "저 암탉이 제일 어른이에요. 8년도 넘었으니 할머니지. 그 옆에서 모이 쪼아 먹는 애가 제일 어리고요. 쟤는 지난여름에 태어났어요."

대식구 탄생 비화

무려 닭 14명(命)을 키우는 장대근·강미숙씨 부부가 옥천읍 죽향리에서 닭들과 함께 터전을 꾸리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장대근씨의 아버지가 밭을 일구던 이곳에 이사를 오면서부터다. 밭만 가득한 땅에 건물이 세워지고 주차장이 생기던 때, 그 자리를 함께 지키던 하얀 닭이 한 명 있었다.

"걔는 매번 벚나무 중간에 올라가 잠을 잤어요. 4년 전쯤 길고양이에게 물려 죽었지만요. 처음에는 하얀 오골계 한 마리만 있었는데, 지인들이 청계를 주셔서 4마리가 됐어요. 아까 말한 할머니 닭도 그때부터 살던 닭이에요." (장대근씨)
 

▲ "가축 사육 개념으로 닭을 키우는 건 아니에요. 정성으로 키웠으니 요즘 말로 뭐라고 그러죠? 아, 반려동물! 반려 닭인 거죠." ⓒ 월간 옥이네


청계와 오골계 4명과 함께 지냈던 10여 년 전과 달리 지금은 조선닭까지 더해 14명으로 그 수가 부쩍 늘었는데 강미숙씨는 그 이유를 "자기네들끼리 꽁냥꽁냥해서"라고 말한다.

"첫 부화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했어요. 남편이 알 품을 땐 따뜻해야 한다고 담요며 모이며 다 거기로 날랐죠. 그렇게 21일 동안 꿈쩍하지 않고 있더니 병아리를 부화시키더라고요." (강미숙씨)

알을 지정된 장소에 두면 닭들이 그곳을 알 낳는 장소로 인지한다는데, 이를 몰랐을 땐 담장 아래, 수풀 틈 등 곳곳으로 알을 찾으러 다녀야 했다. 지금은 세 장소에 알 두어 개를 남겨 일정한 자리에 알을 낳도록 유도하지만, 알 품기를 좋아하는 습성 탓에 자주 알을 빼가면 다른 장소에서 몰래 낳기도 한단다.

"지금은 좀 덜한데 날 따뜻해지면 알을 자꾸 품으려 그래요. 지난해에 할머니 닭이 저 풀밭에서 몰래 열 마리 품어서 부화시켰어요. 웬 병아리가 나타나서 CCTV로 확인해 보니까 줄지어서 주차장으로 데리고 왔더라고요. 여기가 자기들 집이라고 알려줬나 보죠(웃음)." (장대근씨)

이미 닭을 많이 키우고 있어 최대한 병아리가 부화하지 않게 하지만 이렇게 몰래 부화시키는 일을 완전히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손님 중 병아리를 키우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주기도 한다.

또 다른 재밌는 사실은 자기가 낳지 않은 알도 같이 품게 하면 자식처럼 돌보고, 같이 부화한 병아리들과 형제자매처럼 지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같은 암탉이 품어 키우면 같은 무리가 되는데 현재 14명의 닭은 세 무리로 영역을 나눠 지낸다. 화단에 동그란 자국을 남기며 나란히 진흙 목욕을 하고, 떨어진 과실을 함께 쪼아먹으며 말이다.

우리가 몰랐던 닭의 비밀
 

▲ 장대근·강미숙씨 ⓒ 월간 옥이네


장대근·강미숙씨 부부가 닭을 오래 키우며 발견한 새로운 사실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을 이르는 멸칭인 '닭대가리'가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라는 것. 강미숙씨는 "주차장 바로 앞이 도로고, 점심에는 식당을 찾는 손님 차도 많은데 차 사고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닭들이 제가 안전한 곳이 어딘지를 정확히 알고 영역을 지킨다"고 설명한다. 주차장에서 자유로이 닭을 풀어놓고 키울 수 있었던 이유다.

"닭대가리라고 욕하는 말이 있잖아요. 사실 닭이 멍청하지 않아요. 얼마나 똑똑한데요. 저희가 주차장 터를 잡으려고 시멘트 작업을 할 때도 닭을 풀어놓고 키웠어요. 그런데 주차장에 닭 발자국 하나 없잖아요.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화단 밖으로 절대 안 나오더라고요. 시멘트 작업 현장이 위험하다는 걸 알았던 것 같아요." (장대근씨)

매일 오후 2시부터 3시까지는, 운영하는 식당의 휴식 시간이자 닭의 밥을 챙기는 시간이다. 장대근 씨가 주차장과 화단 곳곳 밥을 뿌리며 "구구구구" 울음소리를 흉내 내면 닭들이 저 멀리서 놀다가도 뒤뚱뒤뚱 뛰어온다는데, 강미숙씨는 "그 풍경이 얼마나 재미난 줄 아냐"며 웃음을 터트렸다.

"신기한 게 수탉이 암탉을 잘 챙겨요. 닭들 사이에 서열이 명확해서 밥을 여러 곳에 뿌려주는데, 밥을 주면 수탉이 구구구구 하면서 암탉을 불러 먼저 먹여요. 암탉이 밥을 챙겨 먹는 걸 봐야 자기도 먹더라고요. 제가 밥 주면서 내는 소리도 수탉이 암탉 부를 때 내는 소리를 따라 한 거예요." (장대근씨)

무리별로 밤을 보내는 집이 다 다른데, 해가 지면 기가 막히게 자기 집을 찾아 들어가 잠을 청하는 모습도 우리 예상과는 달리 닭이 그리 어리석지 않음을 보여 준다. 이 역시 부부가 닭과 동고동락하며 오랜 시간 관찰하지 않았으면 알 수 없었을 닭의 현명함이다.

이제는 식구나 다름없지요

"가축 사육 개념으로 닭을 키우는 건 아니에요. 정성으로 키웠으니 요즘 말로 뭐라고 그러죠? 아, 반려동물! 반려 닭인 거죠." (강미숙씨)

강미숙씨의 하루 첫 일과는 밤새 닭들이 만들어놓은 흔적을 치우는 일이다. 닭을 키우지 않는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 추가된 것이지만 "별 수 있느냐"며 부지런히 흔적을 정리한다. 장대근씨는 점심 영업이 끝나면 남은 음식을 물로 씻어 잘게 조각낸다. 닭들의 밥을 챙겨주기 위함이다. 이를 사료 또는 곡물과 섞어 주차장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흩어 놓는다.

식당을 찾는 손님들도 닭이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을 신기해하곤 하는데, 어린 손님은 "엄마, 꼬꼬 보러 가자"하며 손을 이끌기도 한다. 간혹 어린 손님과 시작된 기나긴 술래잡기에 닭이 담을 넘어 아래 개울로 넘어가는 일도 생긴다. 그럴 때마다 한 명씩 잡아 집으로 올려놓는 것도 장대근씨의 몫이다.

"담장 너머로 갔다가 못 돌아오는 애들은 막 울어요. 자기 여기 있다고. 그럼 남편이 1시간도 넘게 쫓아다니면서 다 데려오잖아.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성 들여 밥을 준비하고 우는 애들 다 챙기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남편이 닭들을 참 꼼꼼하게 돌봐요." (강미숙씨)

장대근씨는 닭 14명을 모두 구분할 수 있다. 그는 "할머니 닭은 목덜미가 까맣고, 저 닭은 오골계랑 청계 사이에서 난 닭이라 털은 검고 발에 털이 나 있다"며 털색과 무늬, 발 모양 등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다르게 생겼다"고 설명한다. 언뜻 봐선 종 정도만 구분되는데 이 역시 오래 곁에 두고 사랑한 이만이 가질 수 있는 안목일 테다.

장대근씨가 쏟는 정성과 애정을 알아보는지 어미 닭이 한껏 예민해지는 시기인 알을 품을 때도 그에게는 허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단다. 손을 가까이 가져다 대면 한두 번 부리로 쪼다가도 살살 보듬어 주고 밥과 물을 챙겨주면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알 품기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 청계와 오골계 4명과 함께 지냈던 10여 년 전과 달리 지금은 조선닭까지 더해 14명으로 그 수가 부쩍 늘었는데 강미숙씨는 그 이유를 "자기네들끼리 꽁냥꽁냥해서"라고 말한다. ⓒ 월간 옥이네


닭들이 장대근씨에게 익숙해지는 시간 동안 처음에는 닭에 관심 없었던, 오히려 무서워하곤 했던 가족도 닭과 친해졌다. 장대근·강미숙씨 부부의 자녀인 장지호씨는 "원래 닭을 무서워해 첫 병아리가 부화한 계단을 지나가지 못해 등교도 못 할 뻔 했다"는데, 이제는 완벽 적응했단다.

"우리 닭 구경시켜 주겠다"는 강미숙씨를 따라나선 길에 오골계가 알을 낳는 장면을 목격했다. 한참을 한자리에 앉아 골몰한 듯 보였던 오골계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하얀 알 세 개가 모습을 드러낸다.

"같이 30년 살면 닮을 수밖에 없다"는 강미숙씨의 말대로, 닭을 살피는 장대근씨와 강미숙씨의 눈빛이 참 닮았다. 애정이 담뿍 담긴 눈이다.

"우리 집이 동물 농장이에요. 닭도 많고, 뒤편에 가면 개도 있어요. 닭 모이로 주는 곡식 덕택에 참새도 자주 오고요. 닭이 잡식이라 화단에 뭘 심기만 하면 다 쪼아 먹어요. 그래서 이제는 텃밭은 잘 안 가꾸잖아요(웃음). 애들 키우는 게 안 힘든 건 아니라지만, 이젠 식구나 다름없으니 같이 잘 살아야죠." (강미숙씨)

월간옥이네 통권 82호(2024년 4월호)
글·사진 이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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