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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통일, 어떻게 할까요'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 36] 민족 문제를 떠나서는 실존이 어려웠던 역사학자

등록|2024.05.11 10:57 수정|2024.05.11 10:57

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장은 25일 밤 한국인터넷언론포럼 간담회에서 "광복 60주년이 되도록 친일반민족행위 문제를 풀지 못한 것은 치욕적인 일"이라고 일갈했다.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장은 25일 밤 한국인터넷언론포럼 간담회에서 "광복 60주년이 되도록 친일반민족행위 문제를 풀지 못한 것은 치욕적인 일"이라고 일갈했다. ⓒ 시민의신문 양계탁


그는 논객이었다. 역사 관련된 사론에 국한하지 않고 남북 관계나 통일 문제, 민족 문제 등을 다룬 시론도 많이 썼다. 진보적인 신문과 잡지 등 다양한 매체에서 그에게 글을 청탁했다. 그의 글은 시비곡직과 정사(正邪) 감각을 갖춘 데다, 자주의식도 강하여 늘 인기가 좋았다. 그를 이상주의자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으나 그는 현실론자였다. 다만, 현실적인 상황에서 이상을 추구해 왔다.

2003년 10월, 그는 <우리 통일, 어떻게 할까요>(도서출판 당대)라는 책을 펴냈다. 주로 상지대학 총장 시절에 쓴 글과 강연 내용(녹취)을 모아 엮은 책이다. 남북이 활발하게 교류하고, 평화통일이 꿈이 아니라 실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한창 부풀던 시기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을 두고 한쪽에서는 한반도라 하고 또 한쪽에서는 조선반도라고 하는 것이나, 일본에서 하는 우리말 방송을 한국어 방송이라고도 또 조선말 방송이라고도 할 수 없어서 '안녕하십니까' 어쩌고 하는 것도 우리 세대로서는 크나큰 슬픔이요 또 부끄러움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순탄한 시대에 산 사람이면 좀처럼 겪기 어려운 경험으로, 민족사의 치열한 현장에서 평생을 살아왔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세대는, 그중에서도 필자와 같이 우리의 근현대사를 전공한 사람은, 민족 문제를 떠나서는 학문도 생활도 할 수 없는 한평생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석 1)

그는 민족 문제를 떠나서는 실존이 어려웠던 역사학자였다. 그러기에 6·15 선언 현장에서 남북 두 정상이 함께 어울려 손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던 순간의 감격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 남북의 화해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고, 협상통일과 평화통일이라는 큰 집을 짓기 위해 벽돌 하나 쌓는 심경으로 부지런히 글을 쓰고 강연을 다녔다.

<우리 통일, 어떻게 할까요>를 뒷날 '강만길 저작집 15'로 다시 펴내면서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우리 민족은 근현대를 거치면서 크게 두 번이나 역사 실패를 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남의 강제지배를 받게 된 것이 첫 번째 실패입니다. 우리 정도의 문화수준에 있던 민족사회가 20세기에 들어와서 남의 지배를 받게 된 예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억울한 남의 지배에서 벗어나면서 민족이 분단된 것이 두 번째 실패입니다. 거의 반세기 동안이나 끈질기게 민족해방운동을 추진해 온 민족사회가, 패전국도 아니면서 또 자의도 아니게 분단되었으니 억울하다면 억울한 일이지요.

이제 21세기로 들어서면서 우리 민족에게 이 같은 두 번의 역사 실패에 이어서 세 번째의 역사적 고비라면 고비요 기회라면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평화통일의 기운이 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 세 번째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21세기 우리 민족사회의 역사적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근현대사에 닥친 이 세 번째 고비를 잘 넘기면 앞선 두 번의 역사 실패도 옛말이 될 수 있겠지만, 세 번째 고비에서마저 실패하면 앞선 실패들과 상처가 두 몫 세 몫이 되어 되살아날 것입니다. (주석 2)

평생 근현대사를 연구해 온, 지금은 고인이 된 석학의 냉철한 분석과 소망은 산 자들의 책무를 무겁게 한다. 그가 이 책에서 특히 강조하고자 한 내용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아닐까.

이 땅에 살고 있는 7천만 주민 하나하나가 우리의 통일 문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어떤 통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제대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민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통일꾼'이 되자던 적극적인 통일운동도 있었지만, 필자에게 말하라 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이 '통일꾼'이 되기 전에 어떤 통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주석 3)

이 책에는 통일과 관련해 알아두어야 할 여러 가지 문제를 제시한다. 먼저, '한·미·일 공조체제'와 '남북공조'에 대해서 강조한다.

지난날 한·미·일 공조체제와 조·중·소 공조체제의 대립은 우리 땅의 통일을 불가능하게 했습니다. 앞으로도 한·미·일의 공조체제가 굳어진다면, 그에 대응하기 위해 조·중·러 공조체제가 만들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녘의 경우 수십 년 동안 유지되어 오면서 정치·외교·경제·문화적으로 긴밀할 대로 긴밀해진 한·미·일 공조체제를 곧바로 깨뜨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평화로운 '협상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북공조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주석 4)

그는 또한 분단시대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반드시 '평화로운 협상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호소한다.

"민족통일 문제에서도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차이를 극복해 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앞에서 누누이 말했지만, 우리 땅의 경우 지정학적 위치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조건 때문에 전쟁통일은 말할 것도 없고 흡수통일도 불가능합니다. 평화로운 '협상통일'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석 5)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한은 화해와 협력에서 다시 대결과 대립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러한 시기에 이주철 연구원은 <20세기 분단인식과 21세기 통일비전>이라는 제목으로 쓴 '해제'에서 강만길의 통일비전과 역사인식을 다시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2002년에 북한 핵문제가 재발되었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있었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남북 사이의 구체적인 경제협력이 포함한 '10·4 선언'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후 북한의 핵실험은 김정일 정권에서 김정은 정권으로 이어져 2017년까지 6차례 계속되었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사회의 대북 경제제제가 이어지고, 남북한의 화해와 협력은 부분적으로 중단되었다.

다시 2018년에 남북정상회담과 더불어 첫 번째 북미정상회담이 진행되었다. 한반도의 비핵화 논의가 어렵고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강만길 선생의 통일비전과 역사인식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과 교훈을 준다. 결국에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남북한 주민 모두가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더 발전된 세상'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세상이 <우리 통일, 어떻게 할까요>에서 강만길 선생이 말하는 통일된 한반도라고 생각된다. (주석 6)


주석
1> 강만길, <우리 통일, 어떻게 할까요 / 역사는 변하고 만다>(강만길 저작집 15), 창비, 2018.
2> 위의 책, 27쪽.
3> 위의 책, 33쪽.
4> 위의 책, 159쪽.
5> 앞의 책, 169쪽.
6> 앞의 책, 213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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