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편하게 일하니까'... 괜스레 서러웠습니다
<일하다 아픈 여자들> 독후감 공모전 수상작 ②
공공운수노조가 지난 4월 '노동자 건강권 쟁취의 달'을 맞아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일하다 아픈 여자들> 독후감 공모전에서 당선된 총 다섯 편의 수상작을 소개합니다. 학교, 병원, 콜센터, 배달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말하는 일하다 아팠던 혹은 지금도 아픈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기자말]
▲ 조희민 조합원 ⓒ 조희민
<일하다 아픈 여자들>이란 책 제목을 보니, 제가 그동안 겪은 사고의 기억들이 떠올랐어요. 저는 30대 중반에 배달 라이더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배달'의 개념조차 알지 못했어요. 사실 이전 직장에서 임금체불을 당했는데, 고용노동부를 통해 1년 넘게 싸울 수 있었던 것도 배달 라이더를 하면서 버틴 덕분이었어요.
내가 일하고 못 받은 임금을 받는 건데 노동부 일정에 맞춰 출석하고 조사를 받고 유관기관들을 쫓아다니며 자료를 준비하다 보니 평일에 근무하는 직장에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해 생계가 어려워지자, 친구가 배달 대행 일을 알려주었습니다.
'한 번만 더' '한 콜만 더 받자'
일에 적응할 때쯤 비수기가 찾아왔어요. 하염없이 콜 창을 들여다보며 어쩌다 콜이 뜨면 먼저 잡으려고 손가락이 닳도록 눌렀습니다. 콜 수가 줄어드는 만큼 노동시간이 늘었습니다. 하루 8시간에서 12시간 이상을 도로 위에서 보내던 어느 날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의 도로는 한적했어요. 어둑한 도로에서 집에 갈까 싶다가도 '한 번만 더' '한 콜만 더 받자'하면서 콜 창을 켜 둔 채로 운행했어요.
콜 창을 잠깐 들여다본 순간 제 80cc 스쿠터가 적신호에 대기 중이던 승용차의 후미를 들이박았고 저는 스쿠터와 함께 옆으로 넘어지면서 기절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한쪽 다리가 스쿠터에 깔려 고통스러웠어요. 앞 차에서 내린 분들이 119에 신고를 해주어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이송 중에도 의식을 잃었는데 타박상과 가벼운 뇌진탕 진단을 받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사고처리 비용이었어요. 그때는 유상운송보험이나 산업재해 제도도 몰랐고 배달 라이더 등록을 할때 업체에서 요구한 대로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에 서명도 했었죠. 저는 골절이 아니라서 라이더 보험에도 적용받지 못한다고 했어요. 정말 황망하고 답답했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받으면서도 잠시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입원이었기에 건강보험 적용도 되지 않아서, 일주일 만에 병원비는 300만 원이 넘어갔습니다. 제 과실이 100%인 상황에서 하필 상대 차량은 수입차였고 대인 합의금으로 200만 원, 차량 수리비로 100만 원 이상이 나왔습니다. 제 스쿠터 수리 견적도 50만 원이 넘었지만, 도무지 제 스쿠터까지 수리할 방법이 없었어요.
속수무책으로 좌절하며 무력하게 시간을 보내던 중 우연히 '라이더유니온'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라이더를 지원하는 재단이나 사회단체인 줄 알았지, 노동조합이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라이더유니온에서 다방면으로 알아봐 주시고 애써주셨어요. 덕분에 '우아한 라이더 살핌기금'을 통해 병원비와 오토바이 수리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고, 사단법인 희망씨를 통해서 생활비 지원을 받았습니다.
아프고 다쳐도 불이익을 참고 받아들이는 사람들
▲ 조희민 조합원 ⓒ 조희민
이 책에도 일하다 아프고 다쳐도 불이익을 참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일반인에게 산재는 너무 어려워요. 아무도 알려주지 않잖아요. 저는 라이더를 하면서 방광염이 수시로 생겼어요. 노동환경 때문에 생긴 질병이지만 저처럼 여러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노동자들은 어디에 상담하고 산재를 신청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산재 전문 상담창구가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최소한 산재에 대한 교육을 해줄 수는 없는 걸까요?
SBS 뉴스에 이 책을 소개하는 영상이 올라왔는데 댓글이 대부분 부정적이고 비난하는 내용이었어요. '여자들은 에어컨 바람 쐬면서 편하게 일하니까 산재 신청할 일이 적지 않냐?' '이런 뉴스나 내는 방송국이 한심하다'.... 여성들이 얼마나 다양한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의 가족이나 친구가 산재로 고통을 겪어도 이런 댓글을 쉽게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괜스레 마음이 서러웠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여성들이 생각지 못한 다양한 산재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고 안타까웠습니다. 제가 안다고 생각했던 직업들 이면에도 안 보이는 고충이 있었습니다. 다시금 '산재라는 제도는 정말 어렵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질병 산재는 당사자가 인과관계에 대해서 증명해야 하고 인정받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만약 저에게도 질병 산재를 신청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눈앞이 깜깜해질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어떻게 이 질병이 업무와 관련되어 있다고 증명할 수 있을지, 어렵고 복잡하면서 귀찮은 일들이 저를 마구 밀어대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에게도 눈길을
저는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싱글맘인데, 제가 다치거나 아프면 생계는 어떻게 하고 아이는 누가 돌볼지 걱정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조심하면서 안전운전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라이더보다 소득이 항상 적습니다. 그렇지만 사고가 나면 상황이 더 나빠지겠죠. 항상 위험에 노출된 배달 라이더들에게 저는 유상운송보험이나 배달라이더 운전자보험 가입 그리고 교통법규를 준수하라는 잔소리를 강조하고 또 강조합니다. 더 많은 라이더가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이륜차 보험료 인하도 필요하겠죠.
매일 위험한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산재 제도는 내 몸을 지키는 두 번째 방법입니다. 하지만 산재까지 가기 전에 예방이 먼저입니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 사고도 질병도 용납할 수 없지만 그것은 사람의 의지만으로 어찌할 수 없기에 기댈 언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산재 제도는 너무 높은 허들과 어려운 과정으로 노동자들을 멈칫하게 만듭니다.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젠더 관점으로,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눈길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몸도 마음도 아프고 다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더 힘내서 더 건강하게 오래 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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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글쓴이 조희민씨는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 조합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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