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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좌절에도 빛난 '신태용 매직', 한국에 남긴 씁쓸한 교훈

인도네시아, 파리 올림픽 진출 실패... 눈부신 역사 쓴 신태용 감독

등록|2024.05.10 09:44 수정|2024.05.10 09:44

▲ 인도네시아 신태용 감독이 2024년 5월 2일 도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3세 이하 AFC 카타르 2024 아시안컵 3-4위전 이라크와 인도네시아의 경기가 끝난 후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AFP / 연합뉴스


신태용 감독의 파리올림픽 도전이 아쉽게도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신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은 5월 9일(한국시각) 프랑스 클레르퐁텐에서 열린 기니와의 '2024 파리올림픽 남자축구 대륙 간 플레이오프(PO)'에서 0-1로 석패했다.

인도네시아는 두 번의 페널티킥을 내주는 불운 속에서도 단 1실점만 내주며 선전했지만 골결정력 부족이라는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기니에게 무릎을 끓었다. 신태용 감독은 두 번째 PK 판정에 강하게 항의하다 경고를 연이어 받고 퇴장 당했다. 1956년 멜버른 대회 이후 68년 만에 올림픽 본선행을 꿈꿨던 인도네시아의 도전도 아쉽게 막을 내렸다.

U-23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4위에 오른 뒤 PO에서 인도네시아를 잡은 기니는 1968년 멕시코시티 대회에 이어 사상 두 번째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기니가 마지막 파리행 티켓을 거머쥐면서 이번 올림픽 남자축구에 나설 16개국이 모두 확정됐다.

개최국 프랑스를 필두로 미국, 도미니카공화국, 스페인,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모로코, 이집트, 말리, 뉴질랜드,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일본, 우즈베키스탄, 이라크, 기니가 참가한다. 한국은 U-23 AFC 아시안컵 8강에서 신태용 감독의 인도네시아에게 패하며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행이 좌절됐다.

인도네시아 '축구영웅'된 신태용 감독

비록 올림픽 티켓은 놓쳤지만 신태용 감독은 인도네시아의 '축구영웅'으로 등극했다. 신 감독은 2019년 12월, 한국을 떠나 인도네시아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 4년여간 인도네시아 축구를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도자로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신 감독은 능력에 비하여 그동안 저평가받은 대표적인 국내파 감독 중 한 명이다. 신 감독은 선수시절에는 K리그 최초의 60-60(득점-도움) 클럽을 이룬 레전드였고, 지도자로서도 성남FC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와 FA컵 우승, 한국축구 각급 대표팀 감독을 역임하며 FIFA U20 월드컵-올림픽-성인 월드컵 본선 등 메이저 대회 국가대항전을 모두 경험했을 만큼 국내 지도자 중 손꼽히는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정작 한국축구는 신 감독에게 성과에 걸맞는 합당한 평가와 대우를 해주지 못했다. 신 감독은 연령대별 대표팀(U23, U20)에서 A팀까지 국가대표팀 '3연속 소방수' 투입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만큼 한국축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투수로 투입되어 단기간에 팀을 재건하려 했고 나름의 성과도 남겼지만 평가는 늘 박했다. 일부 팬들은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신 감독을 손가락질하기에 바빴다.

신 감독은 지난 2017년 A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월드컵 탈락 위기에 놓여있던 대한민국을 극적으로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과도한 비난 여론과 히딩크 재부임설, 잦은 실언, 본선을 앞두고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 등으로 내내 비난을 받으며 마음고생을 해야만 했다.

신태용호는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1승 2패로 탈락했지만 최종전에서 디펜딩챔피언이던 독일을 잡는 '카잔의 기적'을 연출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당시 축구계에서는 월드컵 이후 신 감독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국내파 감독에 대한 저평가가 극심했던 분위기 때문에 외국인 감독을 영입해야 한다는 여론에 밀렸다. A대표팀의 지휘봉은 이후 다시 파울루 벤투-위르겐 클린스만 등 외국인 감독들에게 연이어 돌아갔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 신태용
 

▲ 2024년 5월 2일 도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U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3-4위전 이라크와 인도네시아의 경기에서 신태용 인도네시아 감독이 지켜보고 있다. ⓒ AFP / 연합뉴스


대표팀에서 물러난 직후 한동안 야인으로 머물던 신태용 감독은 여러 K리그와 중국 프로팀들로부터 다양한 제안을 받았으나 뜻밖에도 눈을 돌린 것은 인도네시아였다. 동남아는 세계축구의 변방인 데다 인도네시아는 2019년 당시 피파랭킹이 173위에 불과한 약체 중의 약체였다.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명장으로서 ACL과 올림픽, 월드컵같은 큰 무대를 두루 경험한 감독의 차기 행선지로는 조금 격이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신 감독은 과감한 도전과 뚝심으로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초반에는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신 감독은 한국에서처럼 20세 이하, 23세 이하 연령대별 대표팀까지 겸임하면서 체계적 시스템을 도입했고 젊은 선수들을 적극 육성하며 인도네시아 축구를 몇 단계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신태용의 인도네시아 A대표팀은 지난 카타르 AFC 아시안컵에서 16년 만의 본선 진출 쾌거를 이뤘다. 인도네시아는 최종 예선에서 쿠웨이트와 네팔을 꺾고 아시안컵 무대에 올랐다. 본선에서는 조별리그에서 1승 2패를 기록했으나, 각 조 3위 6팀 중 4위를 차지해 와일드카드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비록 16강전에서 강호 호주를 만나 0-4로 완패해 탈락했지만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성과였다.

U-23 아시안컵에서는 기적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갔다. U-23 아시안컵 본선 자체가 첫 출전이었던 인도네시아는 조별리그에서 카타르에 0-2로 패배했으나 2차전에서 호주를 1-0으로 잡는 이변을 연출하여 A대표팀의 아시안컵 패배를 설욕했다. 이어 3차전에서도 요르단을 상대로 4-1로 승리를 거머쥐며 8강 진출에 성공했다.

하이라이트는 모국이자 강력한 우승후보인 대한민국과의 8강전이었다. 인도네시아는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경기력에서 한국을 압도했고, 2-2로 연장전과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극적으로 4강에 진출했다. 6년 전 신태용 감독이 연출한 카잔의 기적에서 독일에게 안겨줬던 이변의 아픔을, 이번엔 한국이 신 감독을 통하여 되돌려받은 셈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신태용 매직'은 여기까지였다. 1경기만 더 이겼다면 올림픽 본선티켓을 따낼 수 있었던 인도네시아였지만 번번이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아시안컵 4강에서 우즈베키스탄에게 0-2로 패했고, 3위 결정전에서는 이라크에 연장혈투 끝에 1-2로 무너졌다. 마지막 찬스였던 기니와의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도 선전했지만 빈공을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좌절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는 선수로, 2016년 리우 대회에서는 한국대표팀의 감독으로 올림픽 무대를 경험했던 신태용 감독의 3번째 올림픽 진출 꿈은 그렇게 불발로 끝났다.

그럼에도 인도네시아는 결과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신 감독이 이뤄낸 업적을 극찬하는 분위기다. 인도네시아는 아시안컵에서 한 달 동안 6경기를 치르자마자 곧장 프랑스로 이동하는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주축 멤버로 활약하던 일부 선수들이 아직 시즌 중인 탓에 소속팀에서 차출을 거부하면서 전력을 꾸리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핑계를 대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팬들이 기니와의 경기에서 석패하고 신태용 감독이 퇴장 당한 상황에서도 오히려 신 감독의 이름을 연호하며 끝까지 응원을 보내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인도네시아 축구협회는 신 감독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며 올림픽 진출 여부와무관하게 2027년까지 계약을 연장하는 데 합의했고 계약 발표만을 남겨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는 비록 올림픽 티켓은 놓쳤지만 4강과 플레이오프 진출만으로도 눈부신 역사를 썼다. 지도자 한 명의 존재가 팀을 어떻게 바꾸어놓을 수 있을지는 증명한 대목이다. 반면 한국은 결과적으로 올림픽에도 못 나간 인도네시아에게 압도 당하며 8강에서 무너졌다. 한국축구에서 과소평가 당하며 버림받았던 신태용 감독에게 당한 일격이기에 더욱 뼈아팠다.

신 감독은 한국전을 승리한 이후, "언젠가는 한국대표팀 감독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1년 남짓한 짧은 기간과 여러 악재 속에서도 선전했던 신 감독이 만일 러시아월드컵 이후 사임하지 않고 계속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더라면 이후 한국축구의 역사가 어떻게 달려졌을까 궁금해진다. 또한 유능한 인재를 제대로 활용하거나 보호하지 못하고 지금도 감독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축구의 현실과 비교해보면 더욱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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