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해도 여권 없이는 못 들어 가는 곳
로마 여행에서 꼭 들러야 하는 바티칸 박물관
지난 4월에 4남매가 9박11일 동안 이탈리아를 자유롭게 여행한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씁니다.[기자말]
바티칸 박물관은 관람일 두 달 전에 예매가 시작된다. 동생들과 로마에서 자유여행하기로 계획을 짠 나는 줄 서서 기다리다 지치지 않기 위해 미리 예매해 두었다.
▲ 바티칸 가는 길2024년 4월13일 로마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바티칸 가는 거리 풍경 ⓒ 임명옥
여행 당일날, 이른 아침부터 바티칸 근처는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깃발 앞에 모인 패키지 여행객도 많았고 예매하지 않은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 바티칸의 원형 계단바티칸 박물관 내 원형 계단 ⓒ 임명옥
바티칸의 교황궁은 전체 방 개수가 1400여 개에 이르는 대규모 궁전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전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또한 역대 로마 교황들이 수집한 조각과 회화, 공예품과 고문서 등은 양의 방대함과 더불어 작품의 가치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박물관으로 평가받는다.
궁전 내부에는 고대 이집트의 유물과 그리스 시대 조각품,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고지도가 있는 지도의 방 황금빛 천장은 화려하고 섬세한 그림들로 가득차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 바티칸 박물관 지도의 방 천장2024년 4월 13일 방문한 바티칸 내부 사진 ⓒ 임명옥
고대 조각품으로 가장 인상깊게 본 것은 기원전 1세기 그리스의 조각가가 제작한 <라오콘 군상>이다. 포세이돈 신전의 사제였던 라오콘이 두 아들을 뱀으로부터 구하려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순간을 조각한 작품이다.
▲ 라오콘 군상 바티칸 박물관 내 소장품 <라오콘 군상> ⓒ 임명옥
이 작품은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 인간의 몸부림을 역동적으로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발끝의 움직임과 근육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조각했다. 돌 속에서 사람을 꺼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생동감이 넘친다.
회화로는 라파엘로(1483~1520)의 유명한 <아테네 학당>이 인상적이었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주문으로 교황의 개인 서재에 그려진 <이테네 학당>은 1509~11년에 걸쳐 그려진 프레스코화(석회를 바른 벽에 그것이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다.
철학을 주제로 한 <아테네 학당>에는 성 베드로 성당을 배경으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와 디오게네스 등 고대 그리스 시대 철학자들이 다양한 포즈로 묘사되어 있다. 르네상스 시대 중요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명성을 떨치던 27세 라파엘로의 상상력과 그림 실력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바티칸 박물관 서명의 방 벽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 임명옥
시스티나 성당에는 보티첼리와 같은 르네상스 시대 유명 화가들의 벽화가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미켈란젤로(1475~1564)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다.
30대의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령으로 천장화 <천지창조>를 그렸다. 4년 여 동안 천장을 아홉 부분으로 나누어 성경 창세기의 중요 장면들을 그렸는데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그림이 신과 인간의 만남을 손과 손이 맞닿을 듯 교감하는 모습으로 그린 프레스코화다. 조화와 균형, 색채감이 갖춰진 천장화는 화려하고 웅장하고 경건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시스티나 성당에서 우리는 운 좋게도 의자에 앉을 수 있어서 한참 동안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어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제단화로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벽화 <최후의 심판>에는 수백 명의 인간 군상들이 묘사되어 있다. 단테가 <신곡>이라는 책을 통해 천국과 연옥, 지옥을 표현했다면 미켈란젤로는 그림으로 최후의 심판 날을 표현했다. 그림 속에 자신은 살껍데기가 벗겨진 채 성 바르톨로메오의 손에 들려진 모습으로 그려 넣었다.
미켈란젤로는 왜 자신을 그렇게 끔찍한 모습으로 표현했을까. 7년 동안 최후의 심판을 그리면서 그는 60년 이상 살아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떠올리고 참회의 심정으로 그렇게 그린 게 아닐까. 어쩌면 그것은 미켈란젤로의 회개이고 정직함이며 용기가 아닐까... 벽화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박물관 내부는 계속해서 밀려드는 사람들로 북새통인데 그런 바티칸에도 여유롭게 숨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곳은 바티칸의 정원이다.
잘 가꿔진 잔디밭 사이로 관광객은 산책하듯 정원을 거닐고 벤치에 앉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나도 동생들과 함께 정원에서 휴식을 취했다. 나무와 풀이 품고 있는 다양한 초록빛을 보면서 자연이 마련한 소박하고 일상적이고 다채로운 향연을 즐겼다.
사월의 생명력을 터트리는 나무들, 눈에 휴식을 주는 잔디, 청명하게 푸른 하늘, 따뜻한 햇살... 그 속에서 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평화로웠다. 인간은 신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들었지만 어쩌면 신은 나무와 풀, 하늘과 대기, 햇살 같은 자연 속에 있는 게 아닌가, 바티칸의 정원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티칸의 정원은 바티칸이 보유하고 있는 수많은 예술품 중에서도 가장 친근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든 예술품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바티칸을 나섰다.
▲ 바티칸 궁과 정원2024년4월13일 바티칸 풍경 ⓒ 임명옥
덧붙이는 글
제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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