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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한 정거장 전에 내렸지만, '오히려 좋아' 외친 이유

내 삶의 기록, 어반스케치... 청주 오창 호수도서관에서 북토크를 하다

등록|2024.05.13 16:17 수정|2024.05.13 17:24

▲ 천안 아산역에서 대기중인 승객들. 그림에 새로 발권한 열차표를 붙였다. ⓒ 오창환


청주의 오창 호수도서관에서 북토크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작년 5월에 책을 낸 이후에 책 관련 북토크를 종종 하게 되는데, 어반스케치에 대한 소개나 책과 관련된 이야기 또는 간단한 그림 그리기 등을 두어시간 정도 하는 것이다.

북토크는 주로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한다. 그동안은 고양시나 파주시에 있는 도서관에서 북토크를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충북 청주에서 연락이 와서 기꺼이 가기로 하고 오송으로 가는 KTX 기차표를 일찌감치 예매했다.

북토크는 5월 11일 오후 3시에 잡혀있지만 기왕 청주에 가는 김에 청주 수암골에 들러서 스케치를 하려고 아침 일찍 집을 떠났다. KTX를 타고 창밖의 경치도 감상하고 이런저런 구상을 하면서 가다가, 천안 아산역에 도달해서 서둘러 내렸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수암골을 검색을 해보니까 1시간 40분이나 걸리는 게 아닌가. 뭔가 잘못된 건가...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원래 내가 내려야 할 곳은 오송역인데 한 정거장 전에 내리고 말았던 것이다. 매표소에 무려 1시간 12분 후의 입석표를 끊어 주셨다. 버스를 타고 갈 생각도 해 봤는데 몇 번을 갈아타야 되고 간단치 않은 길이라 그냥 천안 아산역에서 다음 열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당황하지 않고 시작하는 일 
 

▲ 무심코 내린 천안 아산역에서 1시간 이상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이럴 때는 스케치가 정답이다. ⓒ 오창환


하지만 어반스케쳐는 이럴 때 당황하지 않는다. 어차피 일찍 나선 길이니까 북토크에 늦을 일은 없고, 여기서 스케치 한 장 그리고 가면 되는 것 아닌가. 공항, 대합실, 버스 정류장 등에서는 사람들이 무심히 기다리는 모습이 재미있고, 비교적 긴 시간 같은 자세를 취해서 인물 그리기에 좋다.

나는 커피를 한 잔 시켜 놓고 커피샵 밖의 벤치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그렸다. 한 명 두 명 그리다 보니 어느새 기차 시간이 되었다. 그림에다 임시로 발급받은 티켓을 풀로 붙였다.
 

▲ 벽화가 정겨운 수암골 전경. ⓒ 오창환


오송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수암골을 향했다. 거의 1시간 정도를 달려 우암초등학교 정류소에서 내렸다. 우암초등학교 근처에서 보면 도무지 이런 곳에 달동네가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지도 앱을 따라서 조금 올라가니 <제빵왕 김탁구> 촬영 장소가 나오고 그 위로가 수암골이다. 수암골은 청주 우암산 자락의 골목길로 한 때 쇠락한 모습이었으나 2000년대에 벽화 마을로 조성되었고, 특히 영화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하다.

청주 이곳저곳을 검색하다가 그릴 곳이 많고 예쁠 것 같아서 찾아왔는데, 동네 곳곳을 둘러보고 마을이 너무 깨끗하고 정갈해서 놀랬다. 보통 벽화 마을에 가보면 오래된 벽화는 퇴색하거나 관리가 잘 안 된 경우도 많은데, 수암골 벽화는 선명한 색을 유지하고 있었고 공중 화장실도 두 군데나 있다. 마을 사람들과 지자체의 마음씀씀이가 느껴졌다.
 

▲ 수암골 마을로 올라가는 골목을 그렸다. 큰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고 그 아래에 드라마 <카인과 아벨> 주인공인 소지섭과 한지민의 입간판이 있다. ⓒ 오창환


동네 입구 느티나무 아래에는 드라마 <카인과 아벨> 주인공 소지섭과 한지민의 입간판이 있는데, 그 입간판과 함께 동네 전경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려고 앉아 있어 보니, 동네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쉬지 않고 온다. 젊은 학생들도 여럿이 어울려서 많이 오고, 어린아이들을 앞세운 가족들도 있고,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나온 근처 직장인들도 많다. 그림을 서둘러 마치고 다시 오창면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자기 삶을 기록하는 일기인 스케치

 

▲ 오창호수 도서관 전경. 도서관 5층 카페에 가면 호암저수지가 보인다. ⓒ 오창환


오창 호수도서관은 규모가 크고, 호숫가에 있어서 경관이 좋다. 청주시의 중앙 도서관 역할을 하는 3개 도서관 중 하나라고 한다. 도서관 사서님과 인사를 하고 PPT 자료를 보여줄 기기를 정리하다 보니 수강 신청 하신 분들이 하나둘씩 오신다.

보통 도서관에서 하는 북토크는 20명 정도를 선착순 모집을 하고 예비로 5명 정도를 받는데, 이번 북토크도 공지가 뜨자마자 마감되었다고 하니 어반스케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알 수 있다.

이 날의 주제는 <내 삶의 기록, 어반스케치>다. 어반스케치가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또 어떻게 접근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이날은 특히 어반스케치를 그림 그리는 기술의 관점으로 접근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일기로 접근하자는 말씀을 드렸다.

북토크에서는 그림 그리는 실기 과정을 넣으면 분위기도 좋아지고 이야기를 끌어가기도 좋다. 이번에는 다함께 교실에 놓여있던 빨간 소화기를 그렸다. 그림을 처음 그려본 분들도 많았지만, 정해진 틀에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개성을 살릴 수 있어야 좋은 그림이라는 것을 말씀드렸다. 강좌의 반응이 뜨거워서 예정된 시간에서 30분이나 넘긴 뒤 강좌를 끝냈다.

강좌를 끝내고 도서관 5층 카페에 올라가서 호암 저수지를 그렸다. 시간이 30분 밖에 없었지만 내 삶의 기록으로 호수 그림을 남겼다.
 

▲ 오창 호수도서관 5층에서 내려다본 호암저수지. 시간이 없어서 30분만에 그렸다. ⓒ 오창환


춤을 배울 때 보니, 선생님이 동작을 한방에 가르치신다. 체조처럼 동작을 조각조각 나누어서 가르치면 배우기 쉬울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가르치는지 늘 궁금했는데, 한 동작을 한 번에 느끼게 하려고 그렇게 가르친다는 답변을 들었다.

일기는 자신의 삶을 하나하나 구분동작처럼 기록하는 편이고, 그림은 어떤 상황을 한 장면에 전체적으로 묘사한다. 어떤 쪽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임은 확실하다.

돌아오는 길, 오송역에서 기차를 타는데 비가 많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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