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모른다" 손가락질에도... 저는 부모와 절연한 자식입니다
[가족 절연①] '가정의 달' 5월이면 몸이 아픈 사람들... 가정폭력 등 오랜 학대 시달리다 절연 선택
가정의달 5월이 반갑지 않은 이들이 있다. 부모 자식 관계를 끊어낸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절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탈가정’ 후 어려움에 대해 들어보았다. 또 가족이 일방적인 종속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변화도 모색해보았다.[편집자말]
▲ 가정의 달 5월이 즐겁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바로 부모와의 관계를 끊어낸 절연자들이다. 사진은 어버이날 효도잔치에 참석한 부모들의 모습. ⓒ 연합뉴스
"절연하기 전에도 이미 부모님과 관계가 힘들었기에 매년 '가정의 달'이라면서, 어김 없이 돌아오는 5월이 싫었다. 5월이나 명절을 앞두고는 스트레스를 받아 몸이 아플 지경이었다."
지난 2022년 부모와 절연한 더블유(필명·43) 웹툰 작가는 '가정의 달' 5월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더블유의 소소생각'(@w_sosothink)에 부모와의 절연한 과정을 인스타툰(인스타그램 연재 만화)으로 그리고 있다.
지난 12일 만난 더블유 작가는 올해 어버이날에도 부모님께 연락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면서 보냈다고 전했다. 매년 어버이날마다 부모님께 준비해둔 카네이션을 내밀었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정신적인 학대"였다.
그의 인스타툰에는 고단했던 과거가 잘 묘사돼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눈치를 보면서 지나치게 불안해 했고, 갈등이 있는 날이면 공황 증세가 나타나는 등 몸이 먼저 반응했다. 23살 무렵에는 부모가 자녀인 그의 명의로 카드 돌려막기를 해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럼에도 그는 차마 부모를 탓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가 절연을 결심하게 된 건, 결혼 후 남편과 남편의 부모님에게도 부모님이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는 "그동안은 나 혼자만 참으면 되는 거였지만 이제는 내게도 가정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했다. 무엇보다 그동안 미처 챙기지 못했던 내 자신의 행복도 챙기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부모의 연락처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부모와 절연했다. 그의 계정에는 "힘내라"는 격려와 함께 "고맙다"라는 댓글도 달린다.
"최근에는 내가 그린 인스타툰을 보고 부모와 절연을 결심했다는 독자님이 계셨다. 가족 문제로 심리 상담을 받았을 당시 글이나 그림으로 생각을 풀어내는 게 건강한 방법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2차적으로는 내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그리고 나누면서 비슷한 상황에 놓인 분들과 댓글이나 메시지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것이 도움이 됐다. 그 모든 과정이 나를 살렸다."
절연 후엔 "은혜도 모른다" 비난... 성정체성 이유로 절연당하기도
▲ 더블유 작가가 인스타그램에 연재하는 연재 중 일부. 그는 부모와 절연한 이야기를 올린 후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 더블유
하지만 응원 메시지만 있는 건 아니다. "부모님이랑 연 끊었다더니 행복하신가 보다, 그 죄의 대가 나중에 돌려받을 것"이라거나 "부모님이 먹여주고 재워주면 되지 은혜를 모른다"라는 비난도 뒤따른다. 더블유 작가 또한 양가감정을 느낀다.
"절연하면 5월이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진 않았다. 어버이날이라고 손에 카네이션을 들고 외출한 단란한 가족을 거리에서 마주치면 죄책감과 우울감이 든다. 그럼에도 더 이상 부모님의 말 한 마디, 표정 하나에 내 일상이 파괴되진 않는다. 훨씬 편안하다."
김지민(가명·34)씨는 2년 전 동성 애인이 있다고 커밍아웃을 한 이후로 엄마에게 전화번호를 차단당했다. 기억 속 엄마는 늘 남들과 자녀인 자신을 비교하면서 본인이 정해둔 기준에 맞추라고 강요하던 사람이었다. 최근 만나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시달리다가 동성인 연인이 있음을 밝히면서 커밍아웃했지만, 엄마는 더이상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부모로부터 절연당한 김씨는 5월이나 명절이면 자신이 선택한 가족인 동성 연인과 시간을 보낸다. 그럼에도 그는 "현실적으로 계속 절연 상태가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봤다. 동성혼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김씨의 연인은 법적 가족이 될 수 없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는 절연의 형태가 임시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수술을 하기 위해 동의서를 받거나 장례식을 치를 때도 오직 혈연이어야 가능하지 않나. 지금은 비록 엄마와 절연했어도 수술한다면 내가 병원에 불려간다. 내가 나서서 간병을 할 일은 없겠지만 애증 관계에 있기 때문에 엄마가 아프면 그냥 내버려두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
폭력과 학대 수반하는 절연... 결코 사적이지 않은 '절연'
"어느 날 엄마를 생각하다가 썼다.
나는 엄마와 사이가 좋다
나는 엄마에게 맞았다
이 두 문장은 양립할 수 없다. (중략)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맞은 사실을 문제 삼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화목하다고 굳게 믿었고, 화목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울타리에서 절대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 김혜미의 책 <박순애, 기록, 집>에서 발췌
김혜미(32) 작가도 대학생이던 7년 전 '가정폭력' 부모와 절연했다. 몇 년간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엄마에게 '사과해달라'는 말을 겨우 꺼냈는데 엄마는 "미안하다고 했는데, 도대체 무엇을 더 바라냐"고 화를 냈다. 갈등이 커지는 날에는 "여기 내 집이니까, 나가"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이웃에게 아빠는 그저 '아이가 아프다'고 둘러댔다. 그는 가족과 절연하는 일을 사적인 문제로만 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가정 내에서 폭력 등이 발생했으니 분명 심각하게 다뤄야 할 문제인데 절연을 그저 개인의 불행이나 타고난 팔자로 잘못 여겨지면서 부모를 끊어낸 자녀가 '불효자(불효녀)'가 되고 만다. 절연은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가족을 버리고 싶어도 보호막이 없으니 절연하지 못해 나를 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나에게는 '나를 버리지 않는 일'이 중요했다."
▲ 미성년자이거나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경우 절연 이후에 주거 등에서 매우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사진은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 전경. ⓒ 민달팽이유니온
2017년 집을 나온 김 작가는 셰어하우스에서부터 시작해 지금은 자립에 성공했다. 여기에는 청년 주거권 단체인 민달팽이유니온의 도움이 컸다. 그는 민달팽이유니온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부모와 절연하지 못했거나 자살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는 운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절연하고서 삶이 만족스러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삶의 형태가 다시 바뀌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그는 "나는 과거를 끊어낸 것이 아니라 (원치 않는 가족과 참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예정된 미래'를 끊어내면서 다르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그는 '부모를 버린 자식들'(가제)이라는 책을 쓰고 있다.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 관념에서 벗어나 좀더 넓게 가족의 형태를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소수자 콘텐츠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 282북스 강미선 대표는 "한 번은 청년들에게 가정폭력과 '탈가정' 이야기를 하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는데, 탈가정이 무서워 폭력을 고스란히 당하지 말고 나 같은 사람도 나와서 잘 살고 있으니 자기 자신의 삶을 선택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더라"라고 전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도 차츰 다양한 가정의 형태가 생겨나고 있지 않나. 1인 가구나 동성 애인이 있거나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그 속에 다양한 행복이 있다. '탈가정' 또한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자 선택이라고 받아들여지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 '가족 절연'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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