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스턴에서 '탈북자'를 만나다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읽을 즈음 알게된 스피치 행사... 그들의 마음이 조금 만져졌다
분기에 한 번 한국 대형서점에서 책을 주문해 해외 택배로 받는다. 전자책으로 읽기에 섭섭한 책이나, 아이들을 위한 한국 작가의 동화책, 지구 반대쪽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이고 지고 가고 싶은 책들이 주로 태평양을 건너 내가 사는 보스턴까지 온다. 나에게 해외살이의 고단함이란 장바구니에 넣은 책을 추리고 추려야 하는 것, 읽고 싶은 책을 모두 주문하기엔 해외 택배비가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기 때문이다.
가끔 작가 이름은 들어봤지만, 미처 글로 만나지 못했던 작가의 소설을 찾아 읽는다. 그렇게 조해진 작가의 <로기완을 만났다>를 만났다. 이야기에 대한 그 어떤 실마리도 없이 읽어 내려간 소설이었다. 북한에서 탈출해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벨기에까지 와야만 했던 탈북자 '로기완'과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작가 '나'의 이야기이다. 여러 장면에서 가슴이 먹먹했고,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해 손에서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북한에서 왔냐' 농담이랍시고 던지는 미국인들의 질문
미국에서 살면서 아주 가끔 남한과 북한 중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대부분 짓궂은 장난이랍시고 이런 질문을 던지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북한에서 왔다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하곤 했다. 싸우스 코리아(South Korea)와 노쓰 코리아(North Korea)라는 단어를 수시로 듣게 된 아이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그리하여 한국 전쟁, 남한과 북한, 이산가족 상봉,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만남, 남북이 함께 출전한 평창동계올림픽,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만남 등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 미국에 사는 노쓰 코리아 사람은 없어?
<로기완을 만났다>를 읽을 즈음 아이들과 나는 BBC를 비롯한 해외 미디어에서 제작한 탈북자 관련 다큐멘터리를 즐겨 찾아봤다. 그들이 북한에서 탈출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중국과 제3국에서 생사가 오갈 정도의 위험과 어려움, 한국 정착의 고단함, 앞으로 그들의 꿈을 들으며 우리는 북한 사람을 만났다. 한국에서도 실제로 탈북자를 만나본 적이 없었기에 그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로기완'을 만나고, 탈북자를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할 즈음 신기하게도 미국 보스턴에서 탈북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보스턴 하버드 대학교 강당에서 탈북자들의 영어 스피치 대회가 열렸다. 한국에서 탈북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기관이 있는데 보스턴에서 해당 행사를 열었고, 우연히 그 소식을 알게 되었다.
총 일곱 명의 탈북자가 영어로 스피치를 했고, 그들은 탈북 후 한국에 도착해 해당 기관을 통해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영어 발음에서 북한 사투리가 느껴질 때, 비로소 '북한 사람이 내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일곱 명의 이야기 모두 코끝이 찡해지고 아찔한 기억들로 가득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두 번째로 발표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제3국에서 태어난 북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부분의 탈북자가이 탈북 후 중국에 머무르며 다음 루트를 결정하게 된다고 한다. 중국을 거쳐, 라오스나 태국으로 이동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사이 태어난 아이들은 '제3국 출생 탈북민'이라 하는데 이들은 탈북민이 받는 정착 보조를 받을 수 없다고 한다.
발표자 역시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 북한에서 중국으로 이동해 열네 살까지 중국에서 살았기에 본인은 스스로를 중국인이라 여기고 지냈다고 했다. 자기 가족은 북한 출신이고,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부모가 했을 때 현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녀처럼 제3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북한 어린이와 청소년이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으면 그 충격이 상당할 것 같았다.
또한 부모는 북한 사람임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 등이 있지만 아이들은 출생국이 북한이 아니기에 북한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에 따른 정부 보조도 받을 수 없다. 생활한 곳이 중국 또는 동남아 국가였기에 한국어를 잘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 언어와 문화 장벽으로 인해 남한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은 처지라고 한다.
대부분의 탈북자가 가족 단위로 탈북 후 남한에 입국하기에, 가족 단위로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을 거로 생각했다. 제3국에서 태어난 탈북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고 자란 땅을 떠나보니 그들의 마음이 조금 만져졌다
스피치를 마친 분들과 잠깐 대화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남한까지 오는 여정도 힘들었지만, 남한에서 적응하는 것도 힘들긴 마찬가지라고 했다. 급성장과 화려함 뒤에 어둠이 있고, 사회 변화 속도도 빠르고, 탈북자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히 있기에 남한 사회 적응은 녹록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을 꿈꿀 '자유'가 있고, 오늘보다 나을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어서 만족한다고 했다.
느닷없이 탈북자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남한 사회에서 겪는 일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나 역시 나고 자란 땅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살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180도 다른 체제에서 생활한 그들이 남한에 와서 받은 충격은 내가 싱가포르와 미국에서 겪은 어려움에 견주지도 못할 정도로 힘들고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에게 한국어는 같은 언어라 할 지라도 말에 담긴 세계와 의미가 다르니 그 간극은 더 넓고 깊을 것이다. 차라리 언어와 문화가 달라 이해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고 체념하고 접근하는 게 더 쉬울 수 있으니 말이다.
목숨을 걸고 북한에서 탈출해 남한에 자리 잡은 이들은 먼 훗날 남북 관계가 회복되고 정상화가 되면 남북한을 오가며 민간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을까? 혹은 개인의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남겨두고 떠나온 북한에 그 어떤 미련도 없을까? 북한에 남아있는 이들에게 어서 그곳에서 탈출해 남한 사회로 하루라도 빨리 오라고 말하고 싶어 할까?
아직 그들에게 못다 물어본 질문이 많다.
가끔 작가 이름은 들어봤지만, 미처 글로 만나지 못했던 작가의 소설을 찾아 읽는다. 그렇게 조해진 작가의 <로기완을 만났다>를 만났다. 이야기에 대한 그 어떤 실마리도 없이 읽어 내려간 소설이었다. 북한에서 탈출해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벨기에까지 와야만 했던 탈북자 '로기완'과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작가 '나'의 이야기이다. 여러 장면에서 가슴이 먹먹했고,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해 손에서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 조해진 작가의 <로기완을 만났다> 책표지, 소설을 읽으며 소설의 배경이 되는 벨기에와 탈북자의 아픔과 살아가는 이유를 상상했다. ⓒ 김보민
미국에서 살면서 아주 가끔 남한과 북한 중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대부분 짓궂은 장난이랍시고 이런 질문을 던지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북한에서 왔다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하곤 했다. 싸우스 코리아(South Korea)와 노쓰 코리아(North Korea)라는 단어를 수시로 듣게 된 아이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엄마, 왜 한국은 두 개야?" (역사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엄마, 왜 사람들이 노쓰 코리안은 나쁜 사람들이라고 하는 거야?" (도대체 이런 말은 누가 한 거지)
"엄마, 왜 우리는 노쓰 코리아에 갈 수 없어?" (나도 한번은 가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만, 우리가 휴전 상태라 갈 수 없다는 정도로 갈음한다)
"엄마, 왜 노쓰 코리아는 가난해?" (정치경제 체제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한국의 비약적인 성장까지 압축해서 들려줘야 하기에 대답이 길어지는 질문이다)
"엄마, 왜 싸우스 코리아는 노쓰 코리아를 도와주지 않는 거야?" (한때 퍼주기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만큼 정치적으로 예민한 주제다.)
"엄마, 우리는 영원히 이렇게 각각 다른 나라로 살게 되는 거야?" (나도 어릴 땐 곧 통일이 될 줄 알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단다)
그리하여 한국 전쟁, 남한과 북한, 이산가족 상봉,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만남, 남북이 함께 출전한 평창동계올림픽,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만남 등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 미국에 사는 노쓰 코리아 사람은 없어?
<로기완을 만났다>를 읽을 즈음 아이들과 나는 BBC를 비롯한 해외 미디어에서 제작한 탈북자 관련 다큐멘터리를 즐겨 찾아봤다. 그들이 북한에서 탈출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중국과 제3국에서 생사가 오갈 정도의 위험과 어려움, 한국 정착의 고단함, 앞으로 그들의 꿈을 들으며 우리는 북한 사람을 만났다. 한국에서도 실제로 탈북자를 만나본 적이 없었기에 그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로기완'을 만나고, 탈북자를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할 즈음 신기하게도 미국 보스턴에서 탈북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보스턴 하버드 대학교 강당에서 탈북자들의 영어 스피치 대회가 열렸다. 한국에서 탈북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기관이 있는데 보스턴에서 해당 행사를 열었고, 우연히 그 소식을 알게 되었다.
▲ 탈북자들의 영어 스피치 대회가 열린 보스턴 하버드 대학교 파이저 렉처 홀(Pfizer Lecture Hall) ⓒ 김보민
총 일곱 명의 탈북자가 영어로 스피치를 했고, 그들은 탈북 후 한국에 도착해 해당 기관을 통해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영어 발음에서 북한 사투리가 느껴질 때, 비로소 '북한 사람이 내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일곱 명의 이야기 모두 코끝이 찡해지고 아찔한 기억들로 가득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두 번째로 발표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제3국에서 태어난 북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부분의 탈북자가이 탈북 후 중국에 머무르며 다음 루트를 결정하게 된다고 한다. 중국을 거쳐, 라오스나 태국으로 이동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사이 태어난 아이들은 '제3국 출생 탈북민'이라 하는데 이들은 탈북민이 받는 정착 보조를 받을 수 없다고 한다.
발표자 역시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 북한에서 중국으로 이동해 열네 살까지 중국에서 살았기에 본인은 스스로를 중국인이라 여기고 지냈다고 했다. 자기 가족은 북한 출신이고,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부모가 했을 때 현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녀처럼 제3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북한 어린이와 청소년이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으면 그 충격이 상당할 것 같았다.
또한 부모는 북한 사람임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 등이 있지만 아이들은 출생국이 북한이 아니기에 북한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에 따른 정부 보조도 받을 수 없다. 생활한 곳이 중국 또는 동남아 국가였기에 한국어를 잘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 언어와 문화 장벽으로 인해 남한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은 처지라고 한다.
대부분의 탈북자가 가족 단위로 탈북 후 남한에 입국하기에, 가족 단위로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을 거로 생각했다. 제3국에서 태어난 탈북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고 자란 땅을 떠나보니 그들의 마음이 조금 만져졌다
▲ 스피치 참가자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행사 전 강당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 김보민
스피치를 마친 분들과 잠깐 대화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남한까지 오는 여정도 힘들었지만, 남한에서 적응하는 것도 힘들긴 마찬가지라고 했다. 급성장과 화려함 뒤에 어둠이 있고, 사회 변화 속도도 빠르고, 탈북자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히 있기에 남한 사회 적응은 녹록지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을 꿈꿀 '자유'가 있고, 오늘보다 나을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어서 만족한다고 했다.
느닷없이 탈북자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남한 사회에서 겪는 일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나 역시 나고 자란 땅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살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180도 다른 체제에서 생활한 그들이 남한에 와서 받은 충격은 내가 싱가포르와 미국에서 겪은 어려움에 견주지도 못할 정도로 힘들고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에게 한국어는 같은 언어라 할 지라도 말에 담긴 세계와 의미가 다르니 그 간극은 더 넓고 깊을 것이다. 차라리 언어와 문화가 달라 이해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고 체념하고 접근하는 게 더 쉬울 수 있으니 말이다.
목숨을 걸고 북한에서 탈출해 남한에 자리 잡은 이들은 먼 훗날 남북 관계가 회복되고 정상화가 되면 남북한을 오가며 민간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을까? 혹은 개인의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남겨두고 떠나온 북한에 그 어떤 미련도 없을까? 북한에 남아있는 이들에게 어서 그곳에서 탈출해 남한 사회로 하루라도 빨리 오라고 말하고 싶어 할까?
아직 그들에게 못다 물어본 질문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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