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저서 <내 인생의 역사 공부 / 되돌아보는 역사인식>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 44] '강만길 역사학'은 간단하지 않다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15일 저녁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0주년 기념 학술회의 및 만찬'에서 '6.15 10주년 역사적 의미와 한반도 미래'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자서전을 쓰고 나자 그에게 여유가 찾아왔다.
"그동안 쓴 글 중에 단행본이 될 수 없으면서도 저작집에 넣어야 할 것 같은 글"들을 모아 <내 인생의 역사 공부/되돌아보는 역사인식>(창비, 2018)을 펴냈다.
그의 마지막 저서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내 인생의 역사 공부> 등 자전적 기록, <진흥왕비(眞興王碑)의 수가신명(隨駕臣名) 연구>를 비롯해 몇 편의 학술논문과 <남사 정재각 선생님을 추모합니다>등 '학은과 인연'에 얽힌 이야기 등을 싣고 있어서 책의 성격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닭의 갈비와 같이 버리기에는 아까운 글들인 것은 분명하다.
'내 인생의 역사 공부'에 이어지는 부는 강만길 선생의 학은과 인연, 대담, 인터뷰, 논문과 서평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일정한 주제와 일관된 흐름에 맞춰 집필된 연구사나 개설 등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그렇다 하여 그 의미가 퇴색되거나 작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쩌면 '인간 강만길' '역사학자 강만길'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정보와 메시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매우 흥미롭고 의미 있는 내용이라 생각된다. (주석 1)
맹장 밑에 약졸이 없다는 말처럼 강만길은 스승 못지않은 훌륭한 제자들을 키웠다. 유신 시절 강만길이 제자들과 나눈 대화를 들어보자.
제자 : 역사학자로서 제일 기쁜 일은 무엇입니까?
스승 : 내가 쓴 논문이나 학설이 정설이 되어 적어도 10년 정도 개설서나 교과서에 실리는 것이 제일 기쁘지.
제자 : 왜 10년입니까?
스승 : 10년이나 지나서도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 역사학계의 후속 성과가 그만큼 지지부진하다는 것이잖아. 그만큼 후배 학자들을 키우지 못한 셈이 되기도 하고, 그런데 그것보다 더 기쁜 일이 뭔지 아냐?
제자 : ?
스승 : 내가 키운 제자가 내 이론을 비판·극복해 제자의 학설이 정설이 되는 것이지.
제자 : 다른 사람이 키운 제자가 비판하고 극복하면 안 됩니까?
스승 : 그건 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못 키웠다는 것밖에 더 돼? (주석 2)
이 책에는 그가 상지대학 총장 시절 <월간 말>(2004년 12월호)의 김재중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이 실렸다. 기자의 북한 인권 문제 질문에 강만길은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남북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위기감에 몰린 한국 보수세력이 북한 인권 문제를 들고나와 화해정책에 어깃장을 놓을 때였다.
현재 '북한인권법' 등 북한 인권 문제 이전에 생존권 문제와 체제보장 문제를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생존권 문제와 체제 문제가 해결되고 난 위에 인권 문제가 논의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해요. 북한의 인권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일단 그들의 생존권과 체제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고 또 원조 개혁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북한인권법' 등 북한 인권 문제를 체제 붕괴와 연결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북한의 입장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강해진다면 문을 더 굳게 닫을 것입니다. 만일 북한체제가 붕괴된다 할지라도, 남한이 그 빈 자리를 채우기는 어려운 겁니다.
과거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당시, 북한 정권의 붕괴를 가정한 두 가지 시나리오가 논의된 바 있죠. 하나는 북한이 붕괴되면 중국이 군사적으로 북한을 점령할지 모른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중국이 그렇게까지는 못 하더라도 친중국 군사정권을 세울 것이란 가설이었습니다.
중국은 북한 땅을 미국과 일본 사이에 완충지대로 두고 싶어 합니다. 6.25 전쟁 당시 이런 목적을 위해 중국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까. 그런 사정은 지금도 다르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북한 인권 문제는 체제 붕괴를 목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경제지원 등 생존권 보장 및 인도주의적 목적으로 고민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석 3)
북한이 붕괴하면 곧 통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빈자리를 중국이 채울 것이라는 주장은 한국의 진보·보수세력에 큰 충격을 주었다. 과거에 이런 견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권위 있는 학자의 일갈이었기에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더 큰 자극과 깊은 깨우침을 주었다.
'강만길 역사학'은 간단하지 않다. 무엇보다 선생 자신에게 평생 자신의 논지를 끊임없이 고치고 심화해 간 학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역사학은 언뜻 보면 평이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넓고 깊은 바다를 보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이는 학문적 측면에서 보자면 선생이 '총체적인 역사'를 추구한 역사학자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 추구한 사상도 강만길 역사학을 간단치 않게 만든다. 선생은 우리에게 반식민 민족주의자, 공동체를 중시하는 사회주의자, 반전 평화주의자로서의 모습을 모두 보여 주었다. 다만 분단 대립 극복과 민족문제 해결을 최우선시했으나, 국가주의로 경도된 민족주의를 비판하면 했지 혈연·문화의 동질성을 중시하여 민족주의를 강조한 적이 없기에 민족주의자로 규정하기는 어렵다.(주석 4)
주석
1> 박은숙, <내 인생의 역사 공부/되돌아보는 역사인식>, 창비, 2018, 467쪽.
2> 박한용, <해제, 화두가 있는 역사학자가 되라>, 위의 책, 462쪽.
3> 위의 책, 242쪽.
4> 허은, <평화주의자 강만길을 기리며>, <창작과 비평>, 2023년 가을호, 창비, 349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실천적 역사학자 강만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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