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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갈대 상자, 베이비박스… 2143명의 아이를 지켜내다

[인터뷰] 베이비박스 운영 15주년 맞은 이종락 목사

등록|2024.05.20 14:26 수정|2024.05.21 09:05
2007년 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새벽에 주사랑교회의 전화기가 울렸다. 교회 앞에 아이를 뒀으니 잘 보살펴달라는 전화다. 이종락 목사는 서둘러 교회 밖으로 나섰다. 대문 앞에는 덩그러니 놓인 굴비 상자가 있었고 그 안에는 갓 태어난 아기가 시퍼렇고 차갑게 누워 있었다.
  

▲ 2007년 4월 주사랑공동체 교회 앞에서 발견된 굴비 상자 안에 아기가 누워 있다. 후에 이종락 목사에게 입양돼 '온유'라는 이름으로 자라고 있다. ⓒ 주사랑공동체


"새벽 3시 20분, 전화를 받고 나오니 교회 앞에 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다운증후군 신생아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미숙아에 저체온증으로 굉장히 위험한 상태였죠. 그 아이를 품으며 베이비박스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종락 목사를 지난 7일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만나 위기 영아 긴급보호센터(베이비박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주사랑공동체 교회의 이종락 목사 ⓒ 한시은


이종락 목사의 둘째 아들 은만씨(1987~2019)는 외상 장애(최중증 장애로 장시간 누워서 지냄)로 14년간 병원에서 지냈다. 이 목사는 병실에서 생활하는 그 시간 동안 아픈 이웃을 많이 만났다며 베이비박스 사역의 시작을 이야기했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좌절하고 낙심한 환자와 부모를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보내신 이유도 깨닫게 됐죠. 병원에서 4명의 방치된 아이들도 거두어 돌보게 됐어요. 부모들 사이에서 주사랑공동체가 아이들을 밝고 행복하게 보육한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서인지 아기들이 교회 대문 앞, 주차장, 담벼락 밑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견됐고, 그 아이들을 한 명씩 품으며 베이비박스가 만들어졌지요."

이종락 목사가 장애아이를 정성껏 돌본다는 소문이 퍼지자 버림받은 아이가 교회 근방에서 하나둘씩 발견됐다. 이 목사는 길거리에 나앉은 아이들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몇 번이고 겪으니, 아이의 귀한 생명을 덧없이 잃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버려진 아이를 안전하게 거두어 살리는 일'이 자신의 사명임을 느낀 것이다. 그 후 교회 담벼락을 뚫어 '한국형 베이비박스'를 만들었다.
 

▲ 주사랑공동체의 베이비박스 ⓒ 한시은

가로70㎝ x 세로40㎝ x 높이60㎝ 크기의 갈대 상자(아기 모세가 나일 강물에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던 구원의 그릇).
아기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만든 '생명 보호 장치'다.
2009년 12월 이종락 목사가 우리나라 최초로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다.
현재까지 베이비박스를 통해 구해진 생명은 2143명이다.

- 베이비박스에 아이가 들어오면 어떤 절차를 거치나요?

"아이가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오면 경찰서에 바로 신고해야 합니다. 진술서를 작성한 후 182(미아신고)로 전화해요. 구청에도 연락해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러면 담당자가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가 건강검진을 한 후 입양기관이나 시설로 보냅니다."

-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이는 어떻게 자라나요?

"아이는 원가정, 입양, 시설에서 자랍니다. 친부모가 아이를 양육하고자 하는 뜻을 품었으나 당장 키울 형편이 되지 못한 경우엔 거주 공간과 양육 물품 지원, 의료 지원 등을 통해 원가정에서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상담을 해 다시 키우겠다고 결심한 부모는 28% 정도 됩니다.

두 번째는, (부모가 양육을 포기할 경우) 아이가 입양될 수 있도록 상담합니다. 입양은 출생신고가 돼야 가능하기에 아이의 미래를 위해 친부모가 출생신고를 하도록 설득하죠. 세 번째로, 친부모가 아이를 키우지도, 출생신고도 하지 않는 경우에는 보육원으로 보내집니다. 아이는 시설에서 6개월 정도 지내다가 보육원 원장이 후견인이 돼 출생신고를 하게 됩니다."

-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와 '버린 엄마'라는 대중의 인식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버려진 아이가 아닙니다. 아이를 버린 엄마가 아닙니다. 엄마로 하여금 '지켜진 아이'입니다. 버리고 싶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죠. 엄마의 본능적인 모성으로 '이 아이만큼은 살리겠다'고 생각해 베이비박스까지 데리고 온 거죠. 베이비박스 아이들은 지켜진 아이들이고 보배로운 생명들입니다."   
   

▲ 미혼모와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베이비룸 ⓒ 한시은

 
베이비박스는 정부의 지원 없이 자원봉사로만 운영된다. 정부의 인정을 받지 못한 미인가 시설이라 철거 지침도 받았다. 정부는 베이비박스가 유기를 방조하고 조장한다며 처벌하겠다는 공문을 수없이 보냈다. 그럼에도 베이비박스의 운영을 지속하는 이유에 대해 이 목사는 이렇게 답했다. ​

"저 또한 베이비박스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베이비박스를 없앨 수 없는 환경과 현실이지요. 베이비박스는 이 땅에 한 생명이라도 버려져 죽는 일이 없을 때까지,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필요합니다."

- 그간 베이비박스를 대체할 수 있는 국가의 공적 시스템이 마련됐나요?

"정부는 지금까지 무반응, 무대책, 무관심으로 일관했습니다. 베이비박스가 없어서는 안 될 환경과 현실을 만들어놨어요. 2012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출생신고의 사각지대를 만들었습니다. 친생모가 입양시설에 아이를 맡기기 전 출생신고를 하도록 규정합니다. 친생부모의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아이의 존재가 기록되죠. 공적 기록에 자녀의 존재가 남는 것에 부담을 느낀 부모는 베이비박스로 향하는 현실입니다. 아이의 출생신고를 의무화하기 위해 만든 법이, 출생신고 없는 아이를 만들었어요.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는 10대의 아이, 근친상간과 외도로 태어난 아이, 미혼부, 이혼 후 300일 안에 태어난 아이, 불법 노동자의 아이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국민임에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 베이비박스 아이를 위해 마련돼야 할 법안은 무엇인가요?

"아이를 유기하지 않도록 하는 법. 태아의 생명도, 태어난 생명도 지키며 엄마도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이 마련돼야 합니다. 더불어 곧 '부성애법'의 도입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부성애법은 DNA 검사를 통해 아이 아빠를 추적해 양육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법안으로, 아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면 운전면허 취소, 여권 취소, 월급 차압 등의 순서로 압박하는 제도입니다."

- 오는 7월부터 실시하는 '보호출산제' 도입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는 7월에 시행될 '보호출산제'는 주사랑공동체의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했지요. 이 법은 임신부터 출산까지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양육하고자 하면 바로 지원하는 '선지원 후행정' 시스템이 가능한 법이에요.
또한 신분 노출을 꺼리는 임산부는 '가명출생신고'를 적용합니다. '출생통보제'는 출생신고 의무를 부과해 산모의 정보가 자동적으로 등록되게 합니다. 이에 출산 사실을 숨기고자 하는 경우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을 위험이 커졌죠. 이를 보완한 '가명출생신고' 제도는 산모가 익명을 보장받은 채 아이를 출산할 수 있게 합니다. 안전한 환경에서 익명으로 출산하고 가명으로 출생신고를 해 아이와 산모를 보호합니다."
 

▲ 주사랑공동체교회 ⓒ 한시은


베이비박스는 설치 초기, 영아 유기를 방조하고 조장한다는 오명을 입기도 했다. '생명보호'냐 '영아유기'냐의 논란 속에 베이비박스의 운영은 햇수로 15년이 됐다.

- 15주년을 맞이하는 현재, 부정적 인식의 변화가 있나요?

"영아 유기를 조장하는 시설물이라는 범죄 취급 인식이 많이 변화했습니다. 2년 전 KBS의 한 아침 방송에서 베이비박스의 필요 여부를 논했을 때, 84%가 존재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베이비박스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생명을 살리는 모습을 보고 감사하다며 이야기하곤 하죠. 70% 정도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베이비박스를 왜곡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싶나요?

"베이비박스는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보호하는 곳입니다. 왜곡된 시선으로 태어난 생명에 대해 저주하지 않았으면, 돌 던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생명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아이와 엄마를 품어주고 안아줘야 합니다."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며 행복해하는 모습, 엄마 품에서 아이가 재롱을 부리며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며 '이게 사람 사는 모습이지'라고 생각한다는 이종락 목사. 아버지로서 그들을 바라볼 때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며 미소를 띤다. 이 목사의 아버지 역할은 아이가 청년으로 클 때까지 이어진다.

"보육원에서 성장해 사회로 나오는 아이들을 아버지로서 어떻게 지원할까 고심합니다. 아이들에게 정착 자금을 조금이라도 더 쥐여줄 수 있도록 적금을 들고 있어요. 베이비박스 아이가 청년이 돼 꿈을 세워나가는 일에, 아버지로서 그 역할을 끝까지 잘 감당해야겠다고 생각하죠."

"베이비박스 아이들이 자라나 대학을 가고 군대도 가며 청년이 되어가네요. 참 대견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마음으로 굉장히 사랑해요."

 

▲ 이종락 목사가 입양한 자녀 ⓒ 주사랑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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