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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나오는 다큐 누가 볼까, 처음엔 별로라고 생각"

[인터뷰] EBS < PD로그 > 참여한 정석희 PD

등록|2024.05.21 14:31 수정|2024.05.22 08:50
 

EBS <다큐프라임>'PD로그'-해녀가 된 정PD ⓒ EBS


바다는 육지보다 한 계절 느리게 흐른다. 3월의 바다는 아직 겨울이다. 두꺼운 해녀복을 입고 테왁을 움켜쥔 채 물속으로 뛰어든 사람이 있다. 그는 9년 차 EBS PD로,  프로그램 홍보 예고편이나 캠페인 영상을 만들고, '지식채널e' 연출을 맡고 있다.

지난 6일 첫 방송한 EBS 다큐 < PD로그 >는 취재진이 아닌 PD가 직업을 경험하는 체험자가 돼 보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11일 방송 첫 타자가 된 정석희 PD를 인터뷰했다.

-왜 해녀였나요?
"바다에 관심 가지게 된 이유가 스노클링을 해보고 싶어서예요. 수영을 취미라고 해도 되겠다 싶었던 때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죠. 몸으로 부딪칠 수 있는 아이템이고 바다 그림도 있을 테니까요."

-촬영은 어떠셨어요?
"일을 안 하고 헤엄만 치면 편안했을 거예요. 하지만 카메라가 저를 찍고 있고 물질하는 동료도 있고 몇 번이고 자맥질해야 하니까 힘들었죠."

-'PD로그'에 어떻게 참여하시게 됐나요?
"방송국이 봄 개편에 맞춰 PD의 직업 체험기를 기획한다고 들었어요. 처음엔 'PD가 나오는 다큐를 누가 볼까, 되게 별로다'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저에게 프로그램에 합류하라는 제의를 받았어요. 일상이 지루하다고 생각하던 차였죠. 새로운 일을 해보면 재밌겠다 싶어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그는 "해녀에게 제일 중요한 건 인간관계다"라고 했다. 해녀는 홀로 묵묵히 일할거라고 생각했다. 농촌에서 텃세가 심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어촌도 마찬가지다. 집단에 속하지 않으면 해녀 일을 할 수 없는 구조다. 허가를 받거나 계약을 맺는 과정이 필요하다.

"생각보다 제가 숨을 잘 참더라고요"
  

▲ 정석희 PD ⓒ 김아영



-(촬영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물 속)추위요. 그리고 제가 숨을 잘 참더라고요. 4분을 버텼어요. 대신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해요. 몸에서 산소를 소비하는 걸 최대한 줄여야죠. 생각하는 것에도 산소가 필요해요. 멍 때리고 있으면 숨을 오래 참을 수 있어요. 제가 멍을 잘 때리나 봐요."

-왜 PD가 되셨나요?
"저는 영화를 즐겨 봤어요. PD보다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죠. EBS에 입사하기 전 독립 영화 관련 일을 몇 년 했어요. 여러 이유로 포기했지만요."

-(꿈을) 포기한 이유가 뭔가요?
"감독의 보조 일을 하면서 배우는 게 있지만 제 작품은 아니니까요. 영화는 작품 단위로 계약해요. 한 작품이 끝나고 다음 작품에 또 스태프로 참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죠.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야 했어요. 그동안 배웠던 걸 써먹을 수 있으면서 덜 세속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곳이 어딜까 찾아봤죠. EBS를 알게 됐고, 30대에 조연출로 시작했어요. 대학교를 갓 졸업한 20대 친구들과 꾸역꾸역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개인 작품이 있나요?
"졸업작이 있긴 한데 부끄러워서 말씀드릴 수 없고 볼 수 있는 방법도 없어요. 스태프로 참여한 영화는 있죠. 홍상수 감독님 영화 두 편을 연출했고, 윤성호 감독, 부지영 감독과도 일했습니다."

-살면서 숨비 소리를 낼 정도의 순간이 있었나요?(*숨비 소리:해녀가 바다 깊이 잠수했다가 물 밖으로 나와 숨을 한꺼번에 토해낼 때 나는 숨소리-기자주).
"요새가 그런 것 같아요. 숨 가쁘게 살고 있죠. 저는 게으른 사람이고 아등바등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염세적인 사람이라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망도 없죠. 본의 아니게 'PD로그'를 하게 되면서 제일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자의는 아니지만 팀원들이 열심히 뛰다 보니 같이 뛰게 돼요."

- 촬영 전날에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연출하는 분들은 비슷한 생각을 할 거예요. 촬영 전날에는 온갖 생각이 들어요. '뭐가 안 되면 어떡하지' 하고요. 근데 모든 걸 제가 통제할 순 없거든요. 걱정을 안 할 수도 없죠. 최선을 다해 걱정해 보고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해요. 일찍 자고 체력을 비축해서 문제가 생겼을 때 방전되지 말자는 마음으로 해요."

- 앞으로 어떤 다큐를 찍고 싶으신가요?
"사람 사는 얘기를 온전히 담아보고 싶어요. 다큐멘터리가 논픽션이라고 하지만 어느 정도 조미료가 들어가죠. 한정된 기간과 예산안에서 제작해야 해서 타협을 할 수밖에 없어요. 기회가 된다면 진득하게 긴 호흡으로 영화적인 다큐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한편, < PD 로그 >는 1부 '해녀가 된 정 PD'를 시작으로 지난 13일 2부 '로프공이 된 이 PD'를 방영했다. 7명의 PD가 매번 다른 직업을 체험하며 총 15편이 방송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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