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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러닝타임 영화 만들려면 좀 더 계산적이어야 해요"

[인터뷰]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J비전상 수상작 <너에게 닿기를> 오재욱 감독

등록|2024.05.22 11:22 수정|2024.05.22 11:22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건 언제나 어렵다. 형식적인 말은 성의가 없어 보이고 늘어지는 말은 변명처럼 들릴 수 있다. 잘못된 사과는 상대의 화를 돋우기도 한다. 제대로 사과하기 위해서는 자기방어적인 태도를 내려놓고 자기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상대가 사과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과하는 사람은 미움 받을 용기에 거절당할 용기까지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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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너에게 닿기를> 스틸컷. ⓒ 센트럴파크


영화 <너에게 닿기를>은 사과하는 사람 '수진'과 사과 받는 사람 '주연'을 통해 진심이 닿는 과정을 그렸다. 학급 반장인 수진은 청각 장애를 가진 주연의 한쪽 눈을 실수로 다치게 한다. 수진은 학교에 나오지 않는 주연의 집을 찾아가 총 세 번의 사과를 건넨다.

변명 섞인 첫 번째 사과는 주연을 화나게 하고, 진심보다 억울함이 부각된 두 번째 사과는 마음에 없는 말처럼 들릴 뿐이다. 두 번의 거절에도 수진은 세 번째 사과를 시도한다. 세 번째 사과에는 어떠한 변명도 억울함도 없다.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와 진정성 있는 눈빛과 말들의 떨림만 있을 뿐. 주연은 한쪽 눈을 가리던 안대를 풀고 수진을 바라본다. 마치 그 사과를 받아들이겠다는 암묵적 대답인 듯이.

일종의 청춘물처럼 뻔한 이야기를 다루지만 이 영화는 뻔하지 않다. 단편 영화의 시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서사적 구조를 통해 수진이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주차장의 밤>(2022), <거품>(2023)에 이어 <너에게 닿기를>(2024)까지, 3년 연속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작품을 상영하며 올해 J비전상을 수상한 오재욱 감독과 지난 15일 화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오 감독과의 일문일답.

- <너에게 닿기를>은 어떤 계기로 만드셨나요?
"언젠가 죄의식을 다룬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사과하는 사람과 사과 받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가정하면, 누군가는 진심이 담긴 사과를 원해요. 그런데 '진심'이 담긴 사과란 어떤 걸까 궁금해졌죠. 진심은 사과하는 사람의 태도나 노력에 따라서 혹은 사과 받는 사람의 기분이나 상태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상대가 진심으로 사과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그냥 느껴지는 거죠. 추상적이고도 모호한 이 마음이 상대에게 닿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 러닝타임이 20분으로 다소 짧지만, 서사가 짜임새 있다고 느꼈습니다.
"단편 영화는 시간 제약이 있어서 시나리오 단계에서 늘 고민해요. 어떻게 하면 관객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을까. 우선 이야기 전체를 놓고 구획을 지어요. 구간마다 어떤 내용을 담을 건지, 어떤 방식으로 리듬감 있게 전개할지 계속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립니다. 짧은 시간 내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면 조금 더 계산적이어야 해요."

- 영화 시작과 동시에 약 3초 동안 검은 화면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수진과 주연의 갈등을 일으킨 사건을 암시하는 화면인데 소리만 들리게 한 의도가 무엇인가요?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수진이 주연에게 저지른 실수가 아니라, 수진이 주연에게 사과하는 태도입니다. 수진이 저지른 실수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면 관객은 사과하는 태도보다 실수의 경중을 따질 거예요. 관객들이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 집중하길 바랐습니다. 너무 빠르게 지나가다 보니 그런 화면이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그래도 넣는 걸 선택했어요. 관객 중 누군가 이 장면의 의미를 발견하면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거라 생각했습니다."

- 어떻게 보면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거군요.
"우리는 소설을 읽을 때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립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뿐만 아니라 말하지 않는 것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죠. 책은 비어 있는 부분을 독자의 경험으로 채우게 하는 반면에 영화는 비어 있는 부분이 별로 없어요. 이미 시각적으로 전부 보여주니까요. 어떤 것을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을지 늘 고민합니다."
 

▲ 영화 <너에게 닿기를> 스틸컷. ⓒ 센트럴파크


- 감독님 작품은 대부분 열린 결말로 끝납니다. 이것도 관객의 경험으로 채우게 하기 위한 장치인가요?
"저는 답이 정해진 결말을 선호하지 않아요. 소설을 비유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열린 결말은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줍니다. 물론 열린 결말도 끝을 잘 마무리하는 게 중요해요.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영화가 끝나버리면 당황스러우니까요. 관객이 생각하는 엔딩과 감독이 생각하는 엔딩의 싱크가 맞아야 하는 거죠. 맞지 않더라도 결말을 납득시켜야 하는 게 감독의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 이야기를 구체화할 때 영향을 받은 영화가 있었나요?
"대런 애러노프스키의 <더 웨일>이요. 영화는 아빠와 딸의 갈등과 화해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주인공 찰리는 자신의 귀책 사유로 아내와 이혼 후 어린 딸인 엘리와 연락을 끊고 지내요. 몇 년 후 병에 걸린 찰리가 죽음을 앞두고 고등학생이 된 엘리를 부릅니다. 오랜만에 보는 딸은 매우 엇나간 불량아가 되어 있었죠. 찰리는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요. 엘리가 아무리 모진 말을 쏟아 내도 죽기 전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엘리는 결국 찰리의 용서를 받아들이고요.

최근 영화들은 극중 인물이 어떤 말썽을 일으키거나 문제가 있으면 용서하기보다 벌하는 쪽을 택합니다. 비난의 대상에게 정당한 벌을 줄 때는 관객을 설득할 필요가 없어요. 자연스럽게 납득이 되는 거죠. 그런데 문제를 가진 누군가를 용서할 때는 관객을 납득시켜야 해요. 그런 점에서 용서보다 벌을 내리는 게 쉬운 거죠. 부녀가 화해하는 과정과 엘리의 용서, 잔상이 오래 남았어요."

- 앞선 전작에서는 소외 계층의 이야기를 주로 다뤘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전에 박찬욱 감독님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제 영화를 보면 도덕적인 딜레마를 다룹니다. 그 안에서 질문을 하는 게 감독의 몫이고, 답을 내리는 게 관객의 몫이죠.' 저 또한 딜레마적인 상황을 만들고 이러한 상황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제 주변을 둘러봤을 때 <거품>과 <주차장의 밤>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겪고 있는 일입니다. 누군가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죠."

- 사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창작자의 열쇠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독으로서 목표하는 바가 있다면요?
"어떤 감독이 되겠다는 거창한 목표는 없어요. 다만 인생을 길게 보고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평생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파악을 해야겠죠.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며 지금까지 꾸준히 작품을 만들고 있는 이유입니다. 나의 장단점을 파악하려면 직접 만드는 것만큼 좋은 게 없어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알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포기하지 않은 수진의 마음이 마침내 주연에게 닿은 것처럼요."
 

▲ 영화 <너에게 닿기를> 오재욱 감독. ⓒ 센트럴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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