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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 루이스, 불혹의 '검은 짐승'은 멈추지 않는다

10년 넘게 UFC 헤비급에서 경쟁중인 베테랑

등록|2024.05.23 15:22 수정|2024.05.23 15:22

▲ 호드리고 나시멘투를 상대로 펀치를 휘두르는 데릭 루이스(사진 오른쪽) ⓒ UFC 한국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제공


갈수록 캐릭터, 플레이 스타일이 획일화되어 가고 있는 UFC 무대서 '검은 짐승' 데릭 루이스(39‧ 미국)는 자신만의 콘셉트로 오랜시간 동안 생존해오고 있다. 초창기만 해도 덩치만 컸지(191cm‧평체 130kg이상) 정상권에서 경쟁하거나 롱런할 타입으로 평가되지는 않았다. 공격 패턴이 단순하고 온갖 감정을 온몸으로 노출하는 모습이 파이터로서는 마이너스 요소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루이스의 파이팅 스타일은 마치 거친 뒷골목 싸움꾼을 연상시킨다. 터프하면서도 때론 어설픈지라 정교한 현대식 파이터와는 거리가 있다. 데미지를 입어도 표정 관리를 하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상당수 선수들과 달리 루이스는 아픈 기색을 온몸으로 드러낸다. 트레비스 브라운전에서는 복부에 충격을 입자 '복부가 너무 아프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복부를 움켜쥐고 싸우는 우스꽝스러운 장면까지 연출했다.

이것이 묘한 인간미(?)로 작용해 루이스에게 호감을 느끼는 팬들도 적지 않다. 귀여운 야수 캐릭터로 인기를 모았던 밥 샙과 비슷한 부분이다. 루이스는 밥 샙과는 다르게 위기에 몰려도 맷집과 투지로 상황을 뒤집는 능력이 있다. 정타를 맞으면 어쩔 줄 몰랐던 밥 샙과 달리 루이스는 아픔을 호소하면서도 경기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때문에 위기가 닥치면 여지없이 패했던 밥 샙과 달리 루이스는 유독 역전승이 많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의지가 꺾이는 것은 아니다. 복부를 맞으면 힘들어하는 것을 많이 파이터들이 알고 있고 실제로 같은 공격을 자주 허용하고 힘들어한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반격을 준비하던가 외려 페이크로 쓰는듯한 패턴이 반복되자 루이스가 데미지를 입은 것 같아도 쉽게 못 들어가는 파이터가 상당수다.

루이스의 공격 옵션은 단순하다. 성큼성큼 전진 스텝을 밟으며 타이밍을 노린다. 상대가 펀치 거리에 들어오면 주저하지 않고 훅과 어퍼컷 등을 휘두른다. 앞손 잽, 뒷손 카운터 등 대부분 파이터들이 즐겨 쓰는 정돈된 패턴은 찾아보기 힘들다. 상대가 눈에 들어오면 바로 주먹을 내지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상대들은 루이스와 정면 펀치 대결을 꺼린다. 맞으면서도 더 세게 돌려주는 루이스의 특성상 어설프게 카운터를 시도하다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덩치에 비해 몸이 유연하고 맞추는 능력이 뛰어나 자칫 방심하다 큰 충격을 받기 십상이다. 펀치 자체가 워낙 묵직해 정타가 들어가기 시작하면 상대는 급격하게 페이스가 흔들린다. 그런 상황에서 진흙탕 난타전이 벌어질 경우 루이스의 짐승 모드에 빨려 들어간다.

스타일과는 별개로 루이스가 이 정도로 롱런할 것으로 예상한 이들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루이스는 2010년 격투무대(UFC는 2014년)에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41경기를 뛰며 28승 12패 1무효의 성적을 내고 있다. 강펀치의 소유자답게 자신이 거둔 승리 중 23번(82%)을 넉아웃으로 장식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확실히 루이스도 예전같지는 않다. 2021년부터 최근까지 9경기의 강행군을 이어가는 가운데 4승 5패로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스는 여전히 옥타곤에서 경쟁하기를 원하고 있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그는 지난 12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엔터프라이즈 센터에서 있었던 'UFC 파이트 나이트: 루이스 vs 나시멘투' 메인 이벤트에서 여전한 경쟁력을 증명했다.
 

▲ 한국나이 40살이지만 데릭 루이스(사진 왼쪽)의 펀치는 여전히 옥타곤에서 통한다. ⓒ UFC 한국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제공


이전 5경기에서 4승 1패로 부진하자 루이스는 더이상 헤비급 무대서 생존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틈을 노리고 들어온 선수가 호드리고 나시멘투(31‧브라질)다. 그는 경험은 루이스만큼 많지 않았지만 3연승의 상승세를 타고 있던 기대되는 신예였다. 그런 그에게 루이스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나이로 인해 기량은 떨어지고 있지만 이름값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하듯 경기 전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루이스는 유명하고, 인기가 많다. 경기에서 이긴다면 모두가 내 이름을 알게 될 것이다"고 기대를 드러낸 바 있다. 물론 루이스의 패기는 여전했다. 그는 "내가 나이가 많다고 약해진 줄 알아? 지금이야말로 내 전성기라고 느낀다. 20대 때나, 30대 초반에는 이렇게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큰소리쳤다.

겉보기에는 단순 무식해 보이지만 루이스는 상대 분석에도 꼼꼼하다. 일단 나시멘투가 '아메리칸탑팀(ATT)' 소속이란 점을 경계했다. 주니오르 도스 산토스, 세르게이 파블로비치 등 많은 ATT 선수들이 루이스와 싸워 데이터를 축적했다. 루이스는 "ATT 선수들과 너무 많이 싸워서 그들은 내 스타일을 잘 알고 있다. 다른 패턴도 준비할 예정이다"고 밝힌 것이 이를 입증한다.

경기는 루이스의 승리였다. 루이스는 초반 나시멘투의 테이크다운에 고전했다. 하지만 2라운드부터 강력한 연타를 선보이며 흐름을 반전시켰다. 결국 3라운드에는 트레이드 마크인 오른손 오버핸드훅을 적중시켰다. 나시멘투는 쓰러지며 루이스의 다리를 붙잡았지만 후속타를 속수무책으로 허용해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켰다.

루이스는 경기복 하의와 급소 보호 기구를 차례차례 관중석으로 집어던지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급기야 속옷까지 내려 맨살의 엉덩이를 공개하는 돌발 행동까지 벌였다. 여기에 대해 그는 "오늘 밤 내 벌거벗은 엉덩이를 보여주게 해줘서 세인트루이스 관중들에게 고맙다. 브라질에서 온 택시 운전사가 날 이기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이 친구 이름도 이번에 처음 들어봤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이 일을 계속 하기에는 점점 늙어간다. 일단 내 검은 엉덩이를 붙이고 좀 쉬어야겠다. 하지만 난 지금이 전성기다. 방금 봤나? 거의 40살 먹은 사람이 이런 활약을 보여주는 일은 드물다"며 복귀를 예고했다. 나시멘투를 무너뜨린 루이스는 UFC 최다 (T)KO 기록을 15번으로 늘린 상태다. 이는 더스틴 포이리에, 맷 브라운과 함께 최다 피니시 공동 4위의 기록이다. 한국 나이로 40살인 루이스의 옥타곤 행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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