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X세대 아저씨의 감성을 터트린 중학생 밴드 KBZ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만든 아마추어 밴드를 보며

등록|2024.05.25 14:15 수정|2024.05.25 14:15
밴드 KBZ를 아시나요? 먼저 그들의 영상을 본 이들의 인상적인 댓글들을 보시죠.

'발 구르면서 도입부 터질 때 제 도파민도 터져버렸습니다.'
'베이스랑 기타 톤이 고막에 닿고, 1.2초쯤 이미 좋아요를 누르고 있었다.'
'28살인데 밴드부 들어가고 싶다.'
'삶에 이런 장면 하나쯤은 있어야지.'


KBZ는 김치볶음밥의 줄임말입니다. 이 밴드의 소속사는 태안여중이고, 멤버는 전원 태안여중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밴드 KBZ는 성공을 위해 어른들에 의해 기획된 프로 그룹이 아니라 아이들이 행복을 위해 스스로 만든 아마추어 밴드입니다.
 

▲ 태안여중밴드부가 멤버모집을 위해 올린 유튜브 영상 화면 ⓒ 빌리지팝스


2024년 3월 초, KBZ는 밴드부원을 모집하기 위해 '실리카겔'의 'NO PAIN'을 커버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이 영상은 10일 만에 조회수가 10만에 이릅니다. 작은 화제가 일자 소녀들의 영상을 본 밴드 '실리가겔'의 멤버가 학생들의 영상을 자신의 SNS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JTBC 뉴스가 짤막한 뉴스로 보도를 하더니, 급기야 이 소녀들은 2024년 5월에 유퀴즈에 출연하며 X세대 아저씨인 제 감성을 터트렸고 이 글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이 밴드의 시작은 기타를 배우고 싶은 중학교 1학년 리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베이스, 세컨드 기타, 보컬까지 구했지만 드럼을 치는 여중생을 구하는 일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20대의 과학 선생님이 새로 부임해 왔고, 선생님에게 첫사랑에 대한 질문을 하다 그가 드럼을 칠 줄 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리더는 선생님에게 수줍게 제안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밴드랑 축제 나가실래요?"

학생의 말을 들은 선생님은 뜻밖의 제안을 합니다.

"좋아!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 너네 4명이 합쳐서 과학 240점을 넘겨야 해."
"선생님! 그건 너무 어려워요. 한 명이 평균 60점은 맞아야 하는데, 저희가......"
"시험 한 번이 아니고, 중간, 기말 합쳐서 240점이야."
"그럼 한 사람이 30점만 넘으면 되는 거네요?" 


밴드 멤버들은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고, 연주 연습과 함께 잠시 보류했었던 공부를 하느라 신경성 대장과민증에 걸리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밴드의 과학 점수는 241점이었고, 과학 선생님은 학생들과의 약속대로 축제에 함께 나가 신명 나게 드럼을 치고 대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어느 분의 댓글처럼 혹시 여러분의 인생에도 이런 장면 하나는 있으신가요? 저는 없어서 너무나 부럽습니다. 저는 청춘의 시절에 이런 장면을 만들진 못했지만, 청춘을 빛나게 하는 과학 선생님 같은 어른이 될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한 어른들은 저뿐만이 아니었나 봅니다. 아마추어 밴드의 영상에 용기를 얻었다는 어른들의 댓글을 보실까요?

'나라에서 무조건 지원,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
'실리카겔의 무대는 청춘의 열기, 태안여중은 청춘의 추억이 강렬하게 느껴져요.'
'별안간 울고 잇는 나를 발견. 이 청춘이 너무 예쁘다.'
'베이스의 미래가 밝아요.' - 베이스 좋아하는 할머니가
'홍대에서 90년대부터 20년간 밴드하다, 생업으로 악기에 손도 못 대고 있는데, 이 영상이 제 피를 끓게 하네요. 감사합니다.'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밴드의 실력도 뛰어나지만 음향과 디테일을 도와준 이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영상을 촬영한 곳은 기타 학원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연예인들도 나가고 싶어 하는 유 퀴즈에서 기타 학원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그가 좋은 사람, 훌륭한 어른이란 것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아이들은 기타 학원에서 연습을 하다 지치면 눈을 붙이고, 힘이 나면 다시 합주를 하는 과정이 살면서 가장 기뻤다고 말합니다.

청춘이란 무엇일까요? 청춘을 지나고 있는 아이들은 유재석의 물음에 쉽게 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보컬이 뜬금없이 '나는 청춘이 좋아요'라고 말하는 순간 제 눈에서 액체가 흘러내렸습니다.

제가 흘린 건 호르몬의 변화 때문에 나온 눈물일까요? 아니면 저의 염려보다 청춘들이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흘린 안도의 땀일까요? 자신들의 대답에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고 조세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청춘은 어른이 되기 위한 대기실 아닐까요? 무대에 나가기 전에 청춘이 조금 편하고 자유로웠으면 좋겠습니다.' 

KBZ의 부모님들은 그냥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밴드 KBZ는 자식의 행복을 바라는 부모님(가정교육), 드럼을 치며 축제에 함께 나간 과학 선생님(공교육), 기타 학원 선생님 (사교육) 그리고 청춘을 응원하는 - 초능력 중에 최고라는 공감능력을 가진 - 생면부지 타인들의 응원을 등에 업은 재능 있는 청춘들이 함께 만든 궁극의 하모니 그 자체가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포함한 기자의 글은 브런치 ‘X의 사유’에서 https://brunch.co.kr/@jy3180  보실 수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