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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 덕에 루마니아에 대한 인상이 좋아졌습니다

[아들 손잡고 세계여행] 여행지에서 겪은 모든 경험은 다 배움이 된다

등록|2024.05.27 10:00 수정|2024.05.27 10:00
2022년 9월 30일부터 2023년 4월 14일까지 9살 아들과 한국 자동차로 러시아 동쪽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인 포르투갈 호카곶을 지나 그리스 아테네까지 약 4만 km를 자동차로 여행한(3대륙, 40개국, 100개 도시)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지난 기사 '세계여행한 아들이 진짜 행복했던 순간, 어른과는 달랐다'(링크)에서 이어집니다.

우리 부자는 부다페스트를 떠나 루마니아 서쪽의 작은 도시 티미쇼아라(Timişoara)로 향했다.

루마니아는 한반도 면적과 비슷한 크기의 나라이다. 원래는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쿠레슈티(Bucuresti)와 동쪽 연안으로 가서 흑해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발칸반도의 북동쪽에 있는 루마니아는 지금 러시아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그래서 동부 지역은 최대한 피해서 여행하기로 하고 루마니아의 서쪽 도시인 티미쇼아라를 여행하기로 했다.

자동차 여행의 천국

유럽은 자동차로 여행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유럽 내 27개국이 협약한 솅겐 협정으로 각 나라 사이에는 국경표지판만 있을 뿐 차량이나 사람에 대한 검문검색도 없고 우리나라의 도시를 여행하듯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가고 있는 루마니아는 '비 솅겐 국가'이므로 국경에서 여권과 차량 검사를 받아야 한다. 오랜만에 받는 검색으로 긴장한 채 루마니아 국경에 도착했다(루마니아와 불가리아는 2024년 3월 31일부터 솅겐 협정을 시행하고 있으나, 우리가 갔던 육로 국경은 적용하지 않고, 항공기를 통한 입국 시에만 적용하고 있다).

헝가리 국경에서 출국 검사를 받고 바로 옆에 있는 루마니아 입국 검문소에 도착했다. '러시아를 나올 때만큼 깐깐하게 검사하면 어떡하지?'하고 걱정하며 경찰에게 여권을 주었다. 그런데 경찰은 차량 검사도 하지 않고 바로 여권에 도장을 찍어줘서, 금방 국경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티미쇼아라의 유니온 광장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티미쇼아라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이다 ⓒ 오영식


티미쇼아라는 약 30만 명이 사는 루마니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도시 중앙에 있는 가장 큰 유니온 광장(Union Square)으로 갔다. 넓은 광장의 중앙엔 잔디와 분수대가 있고, 주변엔 노천카페와 함께 파스텔 톤의 건물들이 아늑하게 감싸고 있었다.

아들과 한 카페에 앉아 브런치로 샌드위치와 함께 커피를 마시는데, 파란 하늘 아래 보이는 광장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유니온 광장의 분수17세기에 만든 분수대, 물은 지하 400m에서 나오고 식수로도 사용된다. ⓒ 오영식


아들과 가까운 곳에 있는 빅토리 광장으로 갔다. 광장까지 이어진 거리를 걷는데 서유럽의 유명 도시와는 달리 거리와 인도가 널찍널찍한 게 왠지 유럽보다는 러시아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건물도 익숙한 성당보다는 정교회 건물이 더 웅장했고, 또 자주 볼 수 있었다.
 

메트로폴리탄 대성당1940년에 지어진 루마니아 정교회 건물이다 ⓒ 오영식

 
티미쇼아라는 도시 가운데를 '베가강(Bega River)'이 흐르고 있었는데 강변으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아들과 산책로를 걷다 강 풍경을 볼 수 있는 식당에서 늦게 점심을 먹었다.
   
공원에서 만난 당돌한 꼬마

아들이 점심을 먹는 동안 주변을 검색해 보니 가까운 곳에 어린이 공원이 있어 찾아갔다. 공원의 한쪽에 만들어진 작은 놀이터를 생각했는데, 가보니 생각보다 규모도 크고 놀이시설도 많아 아들도 만족했는지 발걸음이 빨라졌다. 아들은 저 멀리 보이는 카트를 보고 말했다.

"아빠, 나도 저 카트 타 볼래."
"그래. 가서 얼마인지 네가 물어봐."

 

이온 크레앙가(Ion Creang?) 어린이 공원어린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넓은 공원으로 가족들이 많이 찾는다 ⓒ 오영식

 
뛰어가는 아들을 따라가 가격을 들어보니 2시간에 3천 원 정도로 아주 저렴했다.

카트를 타는 아들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한쪽에 솜사탕을 파는 곳이 있어 하나 사주니 옆에서 놀던 루마니아 꼬마가 와서 말을 걸었다. 하지만,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해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우리는 손짓 몸짓으로 말했다.

"(이리 와서 이거 같이 먹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들과 솜사탕을 같이 먹었다. 솜사탕 먹는 아이에게 천천히 물어보니 이름이 '슈테판'이라고 했다.
 

어린이공원에서 만난 루마니아 어린이 '슈테판'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한참을 재밌게 놀았다 ⓒ 오영식

 
슈테판에게 몸짓을 섞으며 천천히 말했다.

"슈테판, 너랑 태풍이 형이랑 자전거 경주해 볼래?"
 

그러니 슈테판은 웃으며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도 재밌어하며 솜사탕을 먹다 말고 둘이 공원 한 바퀴를 돌며 경주했다. 그러더니 슈테판은 자기가 카트를 타 보고 싶다고 해 이번에는 자전거와 카트를 바꿔서 타게 했다.

아들과 슈테판 둘은 각자 모국어밖에 하지 못해 서로 말이 통하지 않지만, 한참을 재밌게 놀았다.

나는 의자에 앉아 아들과 슈테판이 노는 걸 지켜봤다. 그런데 한 20분쯤 지났을 때 슈테판이 다른 현지 아이들과 조금 과격하게 노는 걸 보게 됐다. 슈테판은 잘 모르는, 더 어린아이들을 넘어트리며 짓궂게 장난치고 있었다.

내가 제지 해봤지만, 마냥 웃으며 계속 다른 친구들 다리를 걸어 넘어트리고 있었다. 마침 우리도 숙소에 갈 때가 돼 아들을 데려와 슈테판에게 인사시켰다.

"슈테판, 우리는 이제 가야 해. 다음에 보자."
 

인사를 하고 돌아섰지만, 그 아이는 우리를 계속 따라왔다. 그래서 나와 아들은 웃으며 슈테판에게 다시 말했다.

"슈테판, 우리 진짜 가야 해. 미안해."
  
자전거로 위협하고 주먹질... 난감한 상황에서 만난 고마운 청년
 

루마니아 어린이와의 자전거 경주아들과 슈테판은 자전거 경주를 하며 재밌게 놀았다 ⓒ 오영식


그런데 그 아이는 계속 우리를 따라오며 이번엔 자기 자전거로 아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내가 막아서며 슈테판을 타일렀다. 그러자 갑자기 그 아이는 나에게 침을 뱉었다.

아이 행동이 무례하긴 했지만, 아직 어린 나이라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난감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우리 옆에 혼자 책을 보는 청년이 있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영어 할 줄 아시나요?"
"네."
"저흰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데 저 아이가 우리랑 놀다가 이제 가야 한다고 하니까 저희에게 침을 뱉어요. 혹시 잘 타일러 주실 수 있을까요?"


내 말을 듣더니 그 청년이 루마니아어로 아이에게 말을 걸었고, 그사이 나는 청년에게 눈인사하곤 아들과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 아이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우리를 쫓아왔다. 그리고 이번엔 아들에게 주먹질을 하려고 했다.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하게 아들이 태권도 겨루기 자세를 취하며 재빨리 주먹을 피했고, 나는 바로 아들을 내 뒤로 숨기며 아이에게 소리쳤다.

"하지 마! 저리가!"

하지만, 그 아이는 이제 막무가내였다. 주먹과 발로 위협하는 아이를 내가 막았지만, 아들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저 멀리서 아까 도움을 주었던 청년이 뛰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청년이 말했다.

"제가 막을게요. 어서 가세요. 아까부터 뒤에서 계속 보고 있었어요.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고맙습니다."
  

베가강(Bega River)티미쇼아라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 산책로와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다 ⓒ 오영식


당황한 나는 짧게 인사하곤 아들과 서둘러 큰길로 나와 택시를 타고 떠났다. 놀라서 눈이 동그랗게 커진 아들에게 택시 안에서 말했다.

"태풍아, 아까 그 꼬마는 우리랑 더 놀고 싶었는데 그런 걸 잘 표현하는 걸 배우지 못해서 그런 거 같아."
"그런가? 처음엔 재밌게 놀았는데. 근데 아빠, 아까 나 용감했지?"


한국에서 여행 출발 일주일 전 태권도 1품을 땄던 아들은 우쭐대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 엄청 빠르던데?"
"근데 아빤 왜 이렇게 빨라? 아까 걔가 때리려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피했어?"
"그럼, 아빠가 운동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아빠가 저 꼬맹이하고 싸우면 싸움이 되겠어?"
"아빠, 아까 진짜 멋있었어."
"그래? 그런데 저 꼬마가 저랬다고 루마니아 사람이 다 저런 거로 생각하지는 말자. 아까 그 아저씨가 우리 도와줬잖아."
"그래. 그 아저씨 고마웠어. 근데 그 아저씨가 뭐라고 한 거야?"

"우리 뒤에서 다 지켜봤는데, 자기가 봐도 그 친구 행동이 너무 심해서 가만히 두면 안 될 거 같아서 따라온 거래. 그리고 미안하다고 대신 사과도 했어."
"진짜 고마운 사람이네."
"그래, 어딜 가든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다 있는 거야."
"응, 아빠 근데 아까 나도 멋있었지? 내가 태권도 검빨간 띤데 그냥 확!"
"오~ 그러니까 아까 우리 아들 순간 태권도 자세 나오던데? 어떻게 그렇게 용감했어?"
"아빠, 나도 이제 다 컸어."
"그래, 아빠도 든든하네."


따뜻한 봄날 오후, 티미쇼아라의 베가강 변 어린이 놀이터에서 한국인 부자를 도와주신 루마니아 청년분! 정말 감사했습니다. 당신 덕분에 루마니아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떠납니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의 일부 내용은 기자의 저서<돼지 아빠와 원숭이 아들의 흰둥이랑 지구 한 바퀴>에 수록되어 있음을 밝히며, 개인 블로그(blog.naver.com/james8250)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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