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다버린 특강 강사 신청서를 다시 쓴 결과
포기하긴 아까우니 해봅시다, 찍은 점은 연결되기도 하니까
4대보험 없는 주부들이 쓰는 '점을 찍는 여자들'은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그 무엇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작년 9월 초, 서울시 지원의 강사 역량 교육이 있었다. 주1회 어린이 글쓰기 강사를 하고 있던 나도 자격이 된다길래 일단 신청했다. 가서 보니 이 교육을 주관하는 회사는 전국 중고등학교에 특강 강사를 파견하고 있었다. 이번 교육을 수료하면 강사지원 할 수 있는 자격을 준다고도 했다. 다들 신청서를 받아가길래 나도 받아왔다.
신청서를 버렸다. '살림 유튜버도, 육아 인플루언서도 못하는 무능한 나'로 계속 수렴되던 내게 '지원도 안 해보고 포기한 나'가 추가됐다. 입추가 지나면서 쾌청한 저녁이 시작됐지만 나는 습도 높은 쓰레기장에 쑤셔 박혀 있는 것 같았다. 설거지가 끝난 밤 10시, 랜선을 뒤져 신청서를 다시 찾았다. 새벽 2시까지 빈칸을 채웠다. 눈도, 어깨도 빠질 거 같았다.
면접 연락이 왔다. 강남 테헤란로 한복판에 있는 11층 건물이었다. 1년에 한 번도 나갈 일이 없던 강남에서 약속이 생겼다. 떨어져도 강남 나들이 하나로 괜찮을 거 같았다. 편한 마음이라 그랬을까, 일대일 30분 면접이 수월했고, 통과했다.
면접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할 수업 30분짜리 3개와 15분짜리 18개를 영상으로 찍어 보내야 했다. 오 마이 갓, 나는 살림과 육아는커녕 한국말도 못하는구나. 30분짜리 영상 찍는데 닷새가 걸렸다. 이걸 계속해야 하는 건가.
▲ 촬영을 해야한다고?이렇게 멋진 카메라 대신 핸드폰으로 찍었다 ⓒ 픽사베이
막상 하나를 완성하니 이대로 포기하긴 아까웠다. 꾸역꾸역 다 만들어 보냈고 최종합격 연락을 받았다.
12월부터 수업을 나갔다. 서울경기권을 돌다가 제주도에 있는 중학교도 갔다. 월요일 수업이라 일요일 아침 일찍 가서 난생 처음 스쿠터도 타봤다. 15년 만의 첫 혼자 여행이었다.
하루 나가면 이틀간 집에 눕는, 호모누워엔스 재질인 내게 이런 하루 특강은 딱 맞는 일이었다. 수업은 연습할수록 익숙해졌다. 익숙함은 두려움을 몰아냈다. 작은 성공이 쌓였다. 작은 입금도 쌓였다.
무작위로 찍은 점의 연결이었다. 강제성도 없는 역량교육을 내용도 모르고 찾아간 것부터 점찍기 시작이었다. 버렸던 서류를 찾아서 채운 것도, 면접에 간 것도, 영상을 찍은 것도 다 점이었다. 그 중 뭐 하나라도 안 찍었다면 12월의 제주도를 스쿠터로 누비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소용없는 짓 같아도 다양한 점을 찍어보려 한다. 점들이 만들어내는 일을 기다린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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