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뜨거웠던 '선업튀'... "여자들이 좋아하는 모든 걸 때려넣었다"
[기획 대담]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흥행 돌풍, 어떻게 봐야 할까
▲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포스터 이미지 ⓒ tvN
뜨거웠던 '선재 앓이' 열풍을 뒤로 하고 tvN 월화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가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 28일 방송된 <선재 업고 튀어> 최종회는 시청률 5.8%(아래 닐슨코리아 유료가구 플랫폼 기준)로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었다.
김빵 작가의 웹소설 <내일의 으뜸>을 원작으로 한 <선재 업고 튀어>(아래 <선업튀>)는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순간, 자신을 살게 해줬던 아티스트 류선재의 죽음에 절망한 열성팬 임솔(김혜윤 분)이 그를 살리기 위해 시간을 거스르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선업튀>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렸다. 최고 시청률 5.8%은 다른 흥행 드라마들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편이지만 화제성 면에서는 역대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 따르면, 5월 3주차 TV-OTT 드라마 화제성 조사에서 <선업튀>는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으며 배우 변우석, 김혜윤 역시 3주 연속 1, 2위에 올랐다. 방송 이후 12시간 기준 SNS 언급량과 유튜브 언급량 역시 2023 하반기 론칭한 tvN 월화 드라마 평균 대비 약 7배에 달하는 기록적인 수치를 달성했다.
예상을 뒤엎고 신드롬을 일으킨 <선업튀>의 인기 요인은 무엇일까. 그간 흥행 여부를 판가름 하는 객관적인 지표였던 시청률과 화제성의 간극이 이토록 크게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이 드라마에 열광했던 20대 청년세대들의 시각이 궁금했다. 지난 24일 고은 시민기자, 이진민 시민기자와 함께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 대화를 나누었고, 이날의 대화를 축약하고 재구성해 싣는다.
'선재 앓이' 신드롬, 어떻게 봐야 할까
올해 1월 방송된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 이어, <눈물의 여왕> <선업튀>까지 tvN 드라마국은 연타석 홈런을 날리고 있다. 그러나 <선업튀>의 흥행은 앞선 두 편의 드라마와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시청률은 각각 10%, 20%를 넘긴 두 작품에 비해 저조했지만, 다른 모든 지표에서는 신드롬에 가까운 수치를 기록하고 있고 두 주연 배우 역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새로운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진민 시민기자 : "저는 '신드롬'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이번에 깨달은 것 같다. 과거에는 10명 중에 9명이 봐야 신드롬이라고 불렀다면,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유튜브와 온갖 커뮤니티, SNS를 둘러보면 (예를 들어) 10명 중에 5명은 재밌다고 하고, 5명은 '나 이거 안 보는데 내 친구가 재밌다고 하더라', '나도 안 봤는데 직장동료가 좋아한다'는 식이다. 10명이 다 보는 게 아니라 5명이 미친듯이 여러 번 반복해서 보니까 신드롬이 되는 건 아닐까. 그만큼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는 생각도 든다."
고은 시민기자 : "방송 직후 SNS에 들어가면 '실시간 트렌드'에 항상 <선재 업고 튀어>가 올라 있었다. 주변인들도 리트윗을 정말 많이 해서 제 피드로도 넘어오더라. 저 역시 클립 영상을 자연스럽게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리고 전개가 빠르고 속시원하게 진행돼서, 클립 영상만 봐도 사람들이랑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드라마에 대해) 알 수 있겠더라. 물론 TV 대신, OTT로 한꺼번에 몰아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밥 먹으면서 유튜브로 조금씩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진득하게 앉아서 몰입해야 하는 콘텐츠는 아니지만, 일상에서 계속 회자될 수 있는 콘텐츠라서 시청률은 낮더라도 이만큼 화제성을 가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드라마의 주요 배경은 2008, 2009년이다. 임솔은 타임슬립을 통해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 싸이월드 미니홈피 꾸미기에 열중하고 남자친구에게 영상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등 그 시절의 풋풋한 추억을 소환한다. 이 드라마가 초반부터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던 지점도 바로 이것이다.
고은 : "저는 당시 인터넷 소설을 MP3에 넣어 다니던 세대다. (드라마에 나오는) '내가 양파냐' 이런 대사를 좋아하던 초등학생이었다. 드라마에서 재현하는 과거에 자연스럽게 이입이 됐다. 박태환의 수영 금메달, 장미란의 결승 장면은 저한테도 너무 생생하다. 미니홈피를 서로 오가면서 설레는 모습 등이 재밌었다. 시청자들이 공감하는 포인트도 그게 아닐까 싶다."
이진민 : "저는 류선재 캐릭터가 요즘 여성들이 좋아하는 요소를 다 때려넣은 캐릭터 같았다. 안전하고 무해하고, 나와 운명으로 엮여 있는데 순애보이지 않나. 또한 임솔 캐릭터는 로맨틱 코미디에 나오는 여자주인공 치고 망신살이 없다. 과거엔 창피하고 부끄러운 나를 왕자님이 도와주는 느낌이었다면, 임솔은 당차고 건강한 캐릭터여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과거를 바꾸고 비장애인이 되자, 사랑이 시작됐다
▲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스틸 이미지 ⓒ tvN
주인공이 반복해서 시간을 돌려 과거로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범죄로부터 벗어나, 류선재를 살리기 위해서다. 2008년 당시 임솔은 연쇄살인마 김영수(허형규 분)에게 납치되었고 도망치려다가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라는 장애를 얻는다. 그러나 드라마는 시간을 돌려서 임솔이 사고를 피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2023년의 두 주인공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시간을 돌려서라도 온전한 몸을 획득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결국 장애인을 '비정상'으로 규정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고은 : "너무나도 큰 찜찜함이 남는다. (그냥 로맨스 드라마니까)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고민이 남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 '장애'에 관한 논의가 너무 부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게 재현되는 장면들을 불편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계속 말해야 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 콘텐츠에 좋은 점이 있지만 이 부분은 불편하다고 얘기해야 되지 않을까."
이진민 : "그 장면에서 시청자들이 내심 안도하지 않았을까. 로맨스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이 장애인으로 나온 적이 있나. 이대로는 류선재와 이뤄지기 너무 힘들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 타임슬립을 하고 비장애인이 되었을 때 기뻐하는 솔처럼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같이 기뻐하지 않았을까. 그 장면을 보며 진짜 사랑 만큼 정상성을 강요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휠체어를 떼자마자 사랑에 빠지고 서사가 시작되는 모습을 보면서 비정상이라고 규정되는 것들을 치워버려야 사랑을 말할 수 있구나 싶어서 아쉬웠다."
극 중에서 연쇄살인범의 납치 범죄가 여러 번 반복되는 것에 대해 피로를 호소하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임솔은 시간을 아무리 돌려도 범죄자의 손아귀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마지막회가 되어서야 모든 걸 끝낼 수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여성 대상 무차별 폭행 및 살해 범죄 기사가 뉴스면을 장식하는 요즘, 여성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보며 공포를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고은 : "여기서 범죄는 두 주인공의 사랑을 계속 발전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두 주인공이 서로를 살리려고 하는 구원 서사를 더 강화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위기라, 시청자들도 단순히 '장치'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드라마가 범죄 스릴러 장르로서 스펙타클을 보여준다거나 혹은 범죄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는 것도 아니다. 잘생기고 예쁜 청춘들의 푸릇푸릇한 사랑 이야기니까, 범죄는 기능적인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다만 이 여성 대상 범죄를 기능적으로 쓰는 무심함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이 범죄가 누군가에겐 실제로 피부에 와닿는 범죄인데 반복적으로 재현하는 것이지 않나. 그렇지만 시청자에겐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주로 로맨스 장면들이 회자되고, 화제성이 있다. 두 주인공의 서사를 보기 위해 이 드라마를 보는 거니까."
이진민 : "웹소설 볼 때 한 회차에 뭐가 해결 안 되거나, 주인공이 답답한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악플이 많이 달린다. 주인공이 점점 성장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인데, 요즘은 완벽한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돈도 많고 성격도 좋아야 한다. <선업튀>의 두 캐릭터도 '정상 범주'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고, 개인에게 모자란 부분은 없다. 외부적 요소인 범죄가 위기로 작용할 뿐이지, 두 사람은 거의 성장하지 않는다. 무해해서 재밌지만 동시에 너무 무해해서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지점이)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 문화에 익숙해진 해외 시청자들
▲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스틸 이미지 ⓒ tvN
한편 <선업튀> 열풍은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OTT 라쿠텐 비키에 따르면, 방영 첫 주부터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등 전 세계 133개국에서 차트 1위에 올랐다. 일본 최대 OTT 플랫폼 유-넥스트에서도 전체 드라마 및 한류·아시아 조회수 1위를 기록했으며, 대만 아이치이 드라마 랭킹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고은 : "(대만 드라마) <상견니>가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었던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도 대만의 학창시절에 대해 모르지만 허광한에 꽂히지 않았나. 우리나라 고유한 문화를 모르더라도 (이 드라마에) 좋아할 수 있는 부분은 충분히 많은 것 같다. 류선재라는 캐릭터 역시 로맨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인물이라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이진민 : "우리도 미국 하이틴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보니까, '프롬 파티'에 대해 알고 있지 않나. 이제 해외 팬들도 한국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익숙해진 것 같다. 갑자기 드라마에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나와도, 제가 '프롬 데이트'를 신청하는 미국 드라마 속 주인공을 보는 것처럼 똑같이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고 볼 수 있는 것 같다. 이제 그만큼 한국 문화를 해외 시청자들이 익숙하게 느끼는구나 싶었다."
고은 : "더이상 한국 문화를 낯설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우리가 미국 문화를 봤을 때 동경의 마음도 있으니까, 알고 싶은 것이지 않나. 한국 콘텐츠를 보는 해외 팬들의 입장도 더 알고 싶은 나라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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