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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남긴 작품들... 현대인의 상처는 뭘로 그려질까

<베르나르 뷔페 : 천재의 빛, 광대의 그림자>, 예술의전당에서 9월 10일까지

등록|2024.05.30 09:17 수정|2024.05.30 09:23

전시장 입구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뷔페 전시장 풍경 ⓒ 황융하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전쟁이 없던 날은 겨우 며칠에 불과하다. 영토확장부터 식량과 노예를 확보하기 위해서, 최근에는 국가 또는 민족 간의 이해 충돌이 고조되는 가운데 발발한다.

게다가 핵무기 위협도 심심찮게 들리니,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핵보유국은 저마다 세계 주요 도시를 겨냥하고 있다. 모두 합치면, 핵이 대략 만 기가 넘으리라는 추측이 괜한 소리는 아닐 것이다. 전쟁 억제는 요원해 보인다.

20세기 초중반에 전개되었던 두 번의 커다란 전쟁을 현재의 우리는 책과 영상으로 배웠다. 모든 전쟁이 그러하지만, 일찍이 경험한 적 없던 거대한 무기가 투하되었고 거의 모든 지형이 풍비박산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고약한 생존을 이어갔고 예술가는 피폐해진 자신과 세상을 캔버스에 담았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베르나르 뷔페 : 천재의 빛, 광대의 그림자>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그의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조망할 기회이다. 광기의 전쟁이 인류에게 끼친, 피폐해진 삶의 단면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뷔페의 예술 경향을 탐구하는 절차로써 그의 삶을 들여다보기에도 적합한 테마이다.
 

▲ 전시장 내에서 ⓒ 황융하


전시회는 그의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전 시기를 아우르며, 뷔페의 다양한 스타일과 주제 의식을 체감하도록 구성되었다. 작품들은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로 나뉘며 그의 독특한 스타일인 날카롭고 선명한 선묘와 어두운 색채는 곳곳에서 돋보인다.

특히, '광대' 시리즈는 그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하는 상징성을 지닌다. 전쟁이 가져다준 혼란과 불안, 인간 존재의 미약함에 대한 깊은 고뇌가 담겼다.

장 폴 사르트르의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라는 실존주의의 기본 명제가 뷔페의 작품에 투영된다. 그의 작품 속 인물은 모두 고독하되 그들만의 고유한 세계 속에 존재(갇힘)한다.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과 고뇌마저 표현한 것이다. 뷔페의 작품은 단순한 그림이기를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을 천착하고 탐구했다는 그의 예술가적 깊이가 넘친다.
 

▲ 전시장 내에서 ⓒ 황융하


어쩌면 뷔페는 자기 작품을 도륙 내려 하지 않았을까, 이런 허튼 생각마저 스친다. 곳곳에 스크래치(자가용의 '문콕'보다 더 깊고 살벌하다)가 난발한다. 분사된 화살촉이 스치고 지나가듯 어디는 예리하게 어디는 묵직한 흉터를 박아버렸다. 전쟁의 파괴가 자행하는 무질서, 그러나 뷔페의 그림에는 질서가 도사리고 있다. 삶의 터가 무너진 폐허에서 바둥거리는 생존, 이 자체가 질서이다. 마치 카오스처럼.

현대인들은 전쟁이 가져올 폐허와 죽음의 두려움보다, 연일 찌들어 살아가는 일상의 하루하루를 더 무거워한다. 그렇다면 베르나르 뷔페의 스크래치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얼굴에는 어떤 상흔으로 그려지게 될까.

전쟁은 그의 작품을 어둡고 무거운 톤으로 짓눌렀으며, 인물의 표현과 색채의 사용에서 두드러진다. '광대' 시리즈는 전쟁 후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사회적 혼란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이러한 작품들은 당시 사람들의 감정과 경험을 대변한다. 전쟁은 인류에게 해악일 수밖에 없다는 분명한 명제와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 지친 삶에도 열렬하게 살아간다."

그의 말년은 파킨슨병으로 고통의 나날이었다고 한다. 전시실에서 그의 영상을 보노라면, 붓질하는 손은 떨리고 기력이 붙지 않는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이 시기 그는 25점의 죽음 시리즈를 제작했으며, 특히 전신 해골 그림이 많다. 죽음에 대한 담대한 시선이자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진실을 일깨워준다.
 

▲ 광대 ⓒ google


그는 마지막을 선택해, 자기 서명을 기재한 검정 비닐봉지를 사용하여 질식사로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져 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 우리는 전쟁이 없는 오늘과 내일을, 부침이 많은 삶일지언정 연속되기를, 가슴 시린 내 안의 소망을 다독이게 된다.

전쟁의 발발 위험 경고가 빈번하지만, 마치 에피소드를 대하듯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전면전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근거 없는 안심이, 실제로 겪지 않았기에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에서 안도하는 게 아닌지.

전쟁과 광기로 얼룩진 20세기를 붓으로 증언한 예술가의 삶을 조명한 이 전시. 전시는 오는 9월 10일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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