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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에이트 쇼'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리뷰] 넷플릭스 드라마 <더 에이트 쇼>

등록|2024.05.30 11:45 수정|2024.05.30 11:45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다른 높이는 다른 계급을 의미한다. ⓒ 넷플릭스



버티는 시간만큼 돈을 받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 그것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금액을. 각기 다른 8명의 사람들이 그곳에 모였다. 서로 알지 못하는 그들은 누군가의 초대를 받아 이곳에 오게 되었다. 얼핏 큰 스튜디오 같기도 한 이곳에서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한 생존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더 에이트 쇼'는 웹툰 머니게임과 파이게임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다. 언뜻 <오징어 게임>을 떠올리게 하는 흡사한 설정들이 눈에 띄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결이 달랐다. 그럼에도 굳이 비교하자면 <오징어 게임>에 비해 훨씬 더 현실에 가까웠다.

이 드라마는 인간 군상에 더 중점을 둔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들이 모인 순간부터 불공평이 전제된 가운데 쇼와 게임이 이뤄진다는 점이었다. 유일하게 공정한 순간은 인물들이 입장하면서 선택한 숫자 뽑기뿐이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참가자들의 자율에 맡겨져 있고 공평하게 설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층수가 높아질수록 같은 시간 동안 누적되는 돈이 훨씬 많다. 숙소의 크기 역시 커질 뿐 아니라 창문 개수도 늘어난다. 결정적인 것은 음식과 식수의 배급이었다. 무조건 8층에서부터 시작해 차례로 아래층을 향해 내리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것은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한 사람에게 일종의 권력이 부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극단적으로 말해 맨 위인 8층의 거주자가 도시락과 식수를 독식하게 되면 아래층 사람들은 모두 굶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8층 여자는 이 점을 이용해 초반부터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발아래에 둔다. 아래층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권력에 굴복해야만 했다.

소름 돋을 만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꼭 닮았다. 만인은 평등하다 말하지만,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돈이 곧 권력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말았다.

사실, 8층 여자가 잘한 것이라고는 들어올 때 '8'이라는 숫자를 뽑은 것뿐이다. 다른 층의 사람들과 비교해 더 많은 노력을 하거나 특출 난 실력이 있어서 8층에 배정된 것이 아니다. 이는 현실에서 우리가 늘 말하는 다이아몬드수저, 금수저를 떠올리게 한다.

개천에서의 용은 죽어버린 지 오래다. 어떤 지위로, 어느 배경을 가지고 태어나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게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마치 과거 어느 때의 계급구조가 다시 살아난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우리가 사는 현실 안에서 이러한 비관론이 넓게 퍼져있는 것 같다. 전형적인 피라미드 계급 구조 아래 이미 나의 신분은 정해져 있는 것으로 믿으라고 말이다.

드라마 속에서 계급 구조를 파괴하고 쇼를 끝낸 건, 다름 아닌 아래층 사람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낮은 층에 있던 1층 남자의 목숨이 희생되고 만다.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큰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탈출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씁쓸하게 다가왔다.

1층 남자의 장례식장을 나서는 인물들. 카메라의 앵글은 아주 높은 곳에서 그들의 뒷모습을 비춘다. 높은 빌딩 숲 한가운데서 발걸음을 멈춘 뒤 고개를 치켜든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지는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드라마는 끝이 난다.

많은 돈을 받았지만 이들은 여전히 가장 낮은 곳에 있다. 그럼에도 주목할 부분은 쇼를 탈출한 그들은 이제 서로 같은 위치에 서 있다는 점이다. 남보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인간됨을 포기하지 말라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높이에 나란히 서서 걷는 그런 세상을 꿈꾸라고. 드라마 '더 에이트 쇼'는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쇼를 끝내고 나가야만 한다.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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