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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꿩이 죽었다... 막을 방법이 없을까요?

[서홍댁의 서귀포 연가] 자연과 더불어 살려면 알아야겠다

등록|2024.05.30 14:09 수정|2024.05.30 14:24
집으로 올라오는 산길을 운전하다 걷고 있는 꿩과 내 차가 딱 마주칠 때가 있다. 꿩은 느린 새라 그는 순간 얼음이 된다. 나는 차를 멈추고, '얼음 땡!' 해주고 기다린다. 잠시후 그는 사부작사부작 몇 걸음 걷다가, 호드득 날아 풀숲으로 들어간다.

"꿩이 나나?"

궁금할 정도로 시원스레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반응도 늦고 뒤뚱거리며 걷는다. 그 모습에 걸음마 배우는 아이의 기저귀 찬 궁뎅이가 떠올라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집 아래 관리하지 않는 감귤농장이 있는데, 그 무성한 풀숲 사이에서 사는 새들인 것 같다. 가끔 수컷과 암컷이 함께 걷고 있을 때도 있다. 두 마리의 아름다운 모습은 더 숨죽이게 만든다. 시동도 끄고 그들의 산책을 지켜본다.

때로 어린 꿩이 외길을 막는다. 조금 걷다 멈춰 놀고 또 조금 걷는다. 영화 보듯 그 걸음에 심취한다. 5분쯤 기다리자 어린 새는 겨우 길을 건넜고 나는 시동을 켰다.

오늘 아침 2층 침실 창을 여니 베란다에 꿩이 죽어 있었다. 선연한 털 무늬의 수컷이었다.

'아니, 꿩이 날아서 2층 창에 부딪혔다고?'

퀑이 이렇게 높이 나는 줄 몰랐다. 짧은 걸음만 걷다 폴짝 곁의 나무에 오르는 모습만 봤는데 대체 어떻게 2층까지 날아올랐을까.
 

▲ 선연한 털 무늬의 수컷 꿩. ⓒ elements.envato


우리 집은 창이 크다. 실내에 있을 때 간혹 집이 흔들릴 정도로 쾅 소리 날 때가 있다. 새가 창이 있는 줄 모르고 날다가 부딪쳐 기절하거나 죽기도 했다. 새는 눈이 옆에 있어 측면을 잘 보지 못해 부딪친단다. 사람의 문명으로 인해 창공을 힘차게 나는 새들이 죽는 게 기막힐 뿐이다.

우리 부부는 제주로 이주한 지 올해로 만 10년이 된다. 이주 전, 5년을 제주에 다니며 답사했고, 서귀포를 노년의 거주지로 골랐다. 제주는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8년 전에 서귀포 중산간 해발 190m에 땅을 구입해서 집을 지었다.

60대 부부는 아직도 일을 하고 있다. 모든 생활이 만족스러웠고 다시 서울로 돌아갈 생각도 없다. 서귀포에 사는 기쁨 중 으뜸은 사람보다 자연이다. 여름밤 북창을 열어놓고 자면 서늘한 바람이 내 이부자리를 휘돌았다. 나는 그 기분 좋은 청량함을 밤새 느낀다.

아침에 일어나면 고요한 정적 속에서 귀 기울이지 않아도 들리는 새들의 노래가 잠 덜 깬 몸을 깨운다. 텃밭의 먹거리는 크게 자라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어린잎이나 고추를 따서 저녁 찬거리를 하고, 겨울에는 내내 파를 키운다. 버섯도 몇 년마다 나무를 갈아가면서 수확한다. 굳이 꽃이나 나무가 주는 기쁨까지 가지 않아도 숱하게 이곳에 사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산다. 물론 그에 따른 일거리는 기꺼이 맞는 덤이다.

자연 속에서 우리는 이렇게 많은 즐거움을 얻는데, 정작 우리는 몇 달에 한 번씩 새를 죽인다. 잊을 만하면 새가 유리창에 부딪쳐 죽었다. 기절한 건지도 모르지만, 나는 차마 새를 붙잡고 심폐소생술을 할 용기는 없다. 떨어진 새는 반은 살아나 날아갔고, 반은 죽었다. 꿩같이 크고 느린 새가 죽는 것은 더 마음 아팠고, 더 미안했다.

어떤 대책이 없을까.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도 있는 모양인데, 집 유리에 충돌 방지 스티커를 온통 붙이기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 말만 계속 반복한다. 우리 탓에 죽은 목숨의 명복을 빈다. 뭔가 더 효과적인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고민을 함께 나누며 이번에야말로 방법을 연구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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