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인연을 긋다>의 한 장 ⓒ 시네마뉴원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남편과 함께 귀국한 인숙(김지영)이 시댁을 찾은 건 무려 20년 만의 일이다. 강산이 두 차례 바뀌는 동안 주변 환경 역시 참 많은 게 변했다. 작은 며느리인 인숙에게 그토록 모질게 굴었던 시어머니(정영숙)는 치매에 걸려 인숙마저 알아보지 못 하는 처지가 됐다. 인숙의 손윗동서 혜란(조은숙)은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실 계획이라며 인숙이 동행해 줄 것을 요청해 온다.
인숙은 과거의 상처 때문에 시어머니와 잠시도 함께하고 싶지 않았으나 등 떠밀리듯 동행에 합류하게 된다. 작은 며느리, 큰 며느리 그리고 시어머니 이렇게 세 사람만의 특별하고도 짧은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영화 <인연을 긋다>는 두 며느리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가 요양원으로 향하는 여정에 함께하면서 벌이는 좌충우돌 이야기다. 따로 살던 남녀가 부부의 인연을 맺고 가족이 되어 함께 살다보면 크고 작은 갈등과 상처가 생기기 마련, 싫든 좋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긴 세월을 함께해온 이들의 특별한 동행에 어느새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빗장도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 영화 <인연을 긋다>의 한 장 ⓒ 시네마뉴원
인숙에게 신혼생활 3년은 말 그대로 지옥과도 같은 시기였다. 시어머니는 가난한 집안과 가방 끈이 짧다는 이유로 막내아들과 인숙의 결혼을 애초부터 반대하였고, 결혼 후에는 아예 철저한 무시로 일관했다. 동서인 혜란과 달리 인숙에겐 툭하면 '본데없다'며 하대하기 일쑤였다. 동서와의 비교가 심해질수록 인숙의 고통은 배가되었으며, 시어머니 앞에만 서면 주눅이 들어 얼굴도 제대로 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영화 <인연을 긋다>의 한 장 ⓒ 시네마뉴원
혜란의 삶도 인숙만큼이나 사연이 깊다. 시어머니로부터 이쁨을 독차지하며 인숙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던 그녀였으나 동서를 시어머니 몰래 미국으로 떠나보낸 뒤, 막내아들과의 인연을 강제로 끊게 했다는 이유로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인숙이 한국에 머물렀더라면 응당 짊어지었을 고된 시집살이의 짐을 혜란이 고스란히 걸머진 셈이다.
미국에서 죽도록 고생하며 남편을 교수로 성장시키고 자식을 의대에 진학시킨 인숙은 시어머니에게 보란 듯이 자신의 성과를 과시하고 싶었다. 이제껏 무시 당하며 살아온 과거를 이렇게나마 보상받으면 조금은 마음이 편치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치매를 앓아온 시어머니는 인숙이 어떤 마음을 먹고 무슨 행동을 하든 그저 해맑게 웃을 뿐이다.
▲ 영화 <인연을 긋다>의 한 장 ⓒ 시네마뉴원
세 사람은 가족이라는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졌으나 어쩌면 남보다 더 못한 관계에 머물러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동안 얽히고설킨 인연 속에서 서로 주고 받은 상처는 채 아물기도 전에 덧나기 일쑤였다. 그 상처의 두께는 살아온 세월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두터운 것이었다.
자신을 매몰차게 대했던 과거의 상처가 여전히 인숙을 괴롭히는 상황에서 그녀는 요양원으로 향하는 시어머니의 쓸쓸한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며 응어리졌던 감정을 일정 부분 털어낼 수 있으리라는 나름의 계산에 의해 요양원행 승용차에 냉큼 올라 탔다. 그러나 치매 탓에 어린 소녀가 돼버린 시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그녀의 속내는 되레 복잡해진다. 좁은 차 안에서 티격태격 몸싸움까지 벌이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이들이 함께 나선 여정은 과연 순탄할까. 인숙의 계획은 뜻대로 이뤄질까?
▲ 영화 <인연을 긋다>의 한 장 ⓒ 시네마뉴원
영화 속 캐릭터를 통해 드러난 인식처럼 요양원은 늙고 병들어 버림 받으면 가게 되는 통과의례쯤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경향이 있다. 누구나 노인이 되고 병들어 죽는 과정을 피해갈 수 없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젠간 결국 요양원을 거쳐 가게 된다는 의미다. 이렇듯 요양원이 필수불가결한 시설이라면 영화에서처럼 자식들이 더 이상 부모에게 죄를 짓는 심정으로 보내는 곳이 아닌, 모두가 만족하며 이용 가능한 진정한 의미의 복지시설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영화 <인연을 긋다>는 아주 가끔 제정신으로 돌아오긴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 치매 앓는 시어머니와 그녀의 며느리들이 함께하는 짧은 여정 속에서 서로 용서를 구하고 상처입은 마음을 치유받으면서 관객의 마음까지 따듯이 보듬는다.
▲ 영화 <인연을 긋다>의 한 장 ⓒ 시네마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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