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성공 궤도에 오른 사람이 있다. "저는 열심히 일하고 목표를 향해 정진해요"라고 말하는 그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원하는 바를 이룬다. 고철을 훔치던 '도둑'에서 특종 전문업체 '사장'이 되기까지. 그런데 그의 소매엔 피가 묻어 있다.
2015년에 개봉한 스릴러 영화 '나이트크롤러'는 '본 레거시', '리얼스틸'의 각본을 썼던 '댄 길로이'의 첫 연출작이다. 제87회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오르고,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95%를 기록하는 등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지난달 MBC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재조명돼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제이크 질렌할'이 주인공 '루이스 블룸'을 연기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범법도 서슴지 않는 '소시오패스' 루가 '특종'에 눈을 뜨고 벌어지는 이야기다.
극은 도심에 밤이 찾아오며 시작한다. 철조망을 자르던 절단기가 짐짓 멈춘다.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포위된 남자. 출입 금지 구역에 왜 들어왔냐는 경비의 호통에 아무것도 몰랐다며 순진한 태도를 보이다 돌연 공격한다. 스파크처럼 튀는 무자비한 폭행. 영화의 주인공 루이스 블룸(제이크 질렌할)의 첫인상이다. 밤거리를 달리는 그의 차엔 훔친 고철이 수북하다. 손목엔 경비에게서 빼앗은 시계가 서늘하게 빛난다. 건조한 표정엔 죄책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socio(사회)'와 'pathy(병리상태)'의 합성어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뜻하는 소시오패스(sociopath). 이들에겐 모든 게 자기 성공을 위한 '도구'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경쟁자라면 꺾고, 도움이 된다면 이용한다. 루는 그런 소시오패스의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다.
편도체 등 유전적인 영향으로 생기는 사이코패스와 달리 소시오패스는 후천적인 요인, 즉 환경에 의해 형성된다. 루는 "사람을 이해 못 하는 게 아니야. 싫어하는 거지"라며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어쩌면 제대로 된 관심과 사랑을 못 받고 자란지도 모르겠다. 루는 미국 LA 도심의 단칸방에 혼자 산다. 그에겐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범죄 이후 형사가 찾아오는 게 전부다. 부엌과 화장실이 딸린 방엔 침대와 소파, 텔레비전과 노트북이 전부다. 흐트러진 물건 하나 없다. 감정이 들지 않는 식물 하나 키울 뿐이다.
성공과 이익에 집착하는 소시오패스는 '효율'에 큰 가치를 둔다. 그런 그에게 인터넷은 최고 수단이다. 검색만 하면 모든 걸 알 수 있기에. 심지어 유혹할 여자에 대해서도 인터넷으로 알아본다. "인터넷으로 공부해요. 뭐든지요. 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죠".
그런데 최대의 효율을 따라 선택한 일이 '도둑질'이다. 이는 그가 제대로 배우지 못했음을, 부유하지도 않음을 암시한다. 훔친 물건은 제값을 못 받는다는 걸 알게 되자 고물상 직원이 되려 하지만 '도둑놈을 고용할 생각은 없다'며 단칼에 거절당한다. 좌절로 범벅된 그때 특종 사건을 포착해 팔아넘기는 촬영기사 '나이트크롤러'를 마주한다. 비릿한 돈 냄새가 루를 휘감는다. 캠코더와 경찰 무전 도청기를 마련해 본격적인 특종 사냥에 나선다.
"그림이 되는 거. 내 뉴스에 띄우고 싶은 건 여자가 악쓰며 도망가는 장면이에요. 그것도 목에서 피가 나면서요".
루는 거래처 방송국 보도국장 니나(르네 루소)의 말에 따라 자극적인 장면을 연신 찍어낸다. 사고 현장을 독점하기 위해 과속은 기본, 피해자 집에 무단 침입도 거리낌 없다. '그림'이 되는 장면을 위해 피투성이 환자를 길바닥에 질질 끄는 모습은 경악스럽기에 그지없다. 그의 질주는 살인강도를 목격하면서 극에 달한다. '사람 많은 그럴듯한 장소'에서의 피 튀기는 장면이 필요했던 루는 피의자 목격 사실을 은폐한다. 루의 덫에 걸린 시민과 경찰은 범인에게 총격을 입어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당한다.
루는 자신을 '샌 페르난도 밸리' 출신이라 소개한다. 이곳은 첨단 산업 지구로 여러 방송국, 영화사와 함께 경찰서, 법원 등 관청이 밀집한 곳이다. "가끔 가긴 하나 아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에서 실제가 아닌 포장에 불과함을 유추할 수 있다. 루의 말이 어디부터 사실이고 어디까지 거짓말인지 도통 헤아릴 수 없다. 그는 영화 내내 크고 작은 거짓말을 쏟아낸다. 신뢰를 얻기 위해, 궁지에서 탈출하기 위해 교묘하고 그럴듯한 거짓을 잘도 꾸며낸다. 한 치의 떨림도 없는 눈은 그의 위장을 돕는다.
이익과 효율을 중시하는 소시오패스는 협상에 능하고 모든 것에 계산적이다. 상대의 필요를 미끼로 삼고 반응을 보이면 약점을 공략해 설득에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하고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이는 '가스라이팅'의 전형이기도 하다. 단 몇 마디만으로 조수 릭(리즈 아메드)을 파악해 단물을 쪽쪽 빨아먹는다. 또 루는 성욕을 풀 대상으로 보도국장 니나를 점찍는다. 초반엔 외모 칭찬 등 일반적인 방법으로 접근하지만 넘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약점을 공격한다. 니나는 점점 궁지로 몰리다 거대한 '특종'으로 루에게 항복한다.
'공감: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해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루의 이 능력이 바닥을 친다. 타 촬영업체 사장 조 로더(빌 팩스톤)와의 경쟁에서 밀리자 그의 차에 결함을 만들어 반 죽게 만든다. 같은 처지니 찍지 말자는 릭의 제지에도 "이젠 아니지. 우린 프로야. 그는 상품이고"라며 번뜩이는 눈으로 피투성이 얼굴을 촬영한다.
싫어했던 사람이라 그랬을까? 조력자에게도 마찬가지다. 그간 순종적이던 릭이 자기 권리를 요구한다. 더 이상 빼먹을 단물이 없음을 인지한 루는 그를 죽음에 내몬다. 죽어가는 모습을 덤덤히 찍어 특종을 완성한다. 동료를 잃은 슬픔이란 눈곱만큼도 없다. 그 자리엔 피비린내 전 웃음이 대신한다.
2009년 방송된 '지식채널e 소시오패스'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4%, 즉 25명 중 1명은 소시오패스라고 한다. 성공이 우선시되는 현대 사회에서 당연한 수치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에서도 '루'만이 소시오패스는 아니다. 보도국장 '니나'에게서도 비슷한 양상이 보인다. 피가 범벅인 영상에 편집국장 프랭크는 인상을 찌푸린다. 방송 윤리에 어긋난다며 내보내지 말자고 건의하나 '시청률'을 높이는 데 혈안이 된 니나는 법적인 문제만 없다면 상관없다며 잔인한 영상을 여과 없이 송출한다. 니나는 계약 갱신에 성공해 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게 중요하다. 적어도 여기까진 공적인 부분이었다. 사적인 부분에 대해선 선을 긋던 그가 계속되는 루의 성공적인 행보에 그마저도 내어준다. 산산조각 난 양심. 완전한 소시오패스가 된다. 범죄를 규명할 증거를 방송국의 재산이라며 꽁꽁 싸매고, 진실을 은폐하기에 이른다.
"30분짜리 텔레비전 뉴스에는 정부 관련 뉴스, 즉 단속, 예산, 교통, 교육, 이민 등이 22초간 나가는 반면 범죄 사건은 톱뉴스로 5분 7초나 나가요. 14배에 달하죠."
범죄 뉴스의 비중을 들먹이며 자기 영상의 가치를 증명하는 루의 말이다. 언론은 시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공중파의 경우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니 더더욱 시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전체 뉴스에서 1/14밖에 안 된다. 시청률 높이기에 급급해 자극적인 내용으로 도배된 언론 현실을 날카로이 꼬집었다. 심지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은폐하는 모습도 그리 낯설지 않다.
니나는 루에게 "부유한 백인이 가난한 소수 민족에게 당한" 뉴스가 가치 있다고 말한다.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빈민가의 범죄는 '시시한' 일로 뉴스거리가 안 된다는 것이다. 빈부에 따라 화제성 너머 목숨값도 달라진다.
세상엔 좋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고개를 들면 나쁜 사람이 우글거린다. 사회는 발전을 원한다. 경쟁을 부추기고 승자를 반긴다. 루와 릭은 출발선이 비슷하다. 도둑질로 연명하던 루,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릭. 루는 온갖 범법으로 몸값과 명예를 올리며 가속을 밟는다. 규정 속도를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릭은 억울한 죽음에 이른다. 프랭크는 방송 윤리와 양심을 내세우며 니나의 폭주를 막으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쓴소리와 무시다.
니나는 2년 계약직 직원이다. 회사는 계약직으로 효율을 높인다. 높은 성과를 내면 유지, 그렇지 않다면 자르면 그만이다. 니나는 안정적인 생활이 필요하다. 그는 사회의 모순을 받아들이고 그곳에 자신을 맞춘다. 설령 잘못된 방향이라도. 어느 순간 틀에 완전히 맞춰지는데, 타인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괴물의 모습이다.
루는 강도의 추가 살인을 조장했지만, 증거가 없어 풀려난다. 여유로이 선글라스를 낀 그는 경찰차에서 흘러나오는 무전 음에 신난다는 듯 고개를 까딱거린다. 그의 손목엔 영화 초반 경비에게서 훔쳤던 시계가 버젓이 반짝거린다. 밝은 대낮에 당차게 거리를 활보한다. 자동차는 두 대의 밴으로, 릭의 빈자리는 세 명의 새로운 직원으로 더 좋은 '도구'를 마련한 루는 도심 곳곳으로 뻗어나간다.
▲ 나이트크롤러 스틸컷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2015년에 개봉한 스릴러 영화 '나이트크롤러'는 '본 레거시', '리얼스틸'의 각본을 썼던 '댄 길로이'의 첫 연출작이다. 제87회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오르고,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95%를 기록하는 등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지난달 MBC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재조명돼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제이크 질렌할'이 주인공 '루이스 블룸'을 연기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범법도 서슴지 않는 '소시오패스' 루가 '특종'에 눈을 뜨고 벌어지는 이야기다.
극은 도심에 밤이 찾아오며 시작한다. 철조망을 자르던 절단기가 짐짓 멈춘다.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포위된 남자. 출입 금지 구역에 왜 들어왔냐는 경비의 호통에 아무것도 몰랐다며 순진한 태도를 보이다 돌연 공격한다. 스파크처럼 튀는 무자비한 폭행. 영화의 주인공 루이스 블룸(제이크 질렌할)의 첫인상이다. 밤거리를 달리는 그의 차엔 훔친 고철이 수북하다. 손목엔 경비에게서 빼앗은 시계가 서늘하게 빛난다. 건조한 표정엔 죄책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 나이트크롤러 스틸컷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편도체 등 유전적인 영향으로 생기는 사이코패스와 달리 소시오패스는 후천적인 요인, 즉 환경에 의해 형성된다. 루는 "사람을 이해 못 하는 게 아니야. 싫어하는 거지"라며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어쩌면 제대로 된 관심과 사랑을 못 받고 자란지도 모르겠다. 루는 미국 LA 도심의 단칸방에 혼자 산다. 그에겐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범죄 이후 형사가 찾아오는 게 전부다. 부엌과 화장실이 딸린 방엔 침대와 소파, 텔레비전과 노트북이 전부다. 흐트러진 물건 하나 없다. 감정이 들지 않는 식물 하나 키울 뿐이다.
성공과 이익에 집착하는 소시오패스는 '효율'에 큰 가치를 둔다. 그런 그에게 인터넷은 최고 수단이다. 검색만 하면 모든 걸 알 수 있기에. 심지어 유혹할 여자에 대해서도 인터넷으로 알아본다. "인터넷으로 공부해요. 뭐든지요. 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죠".
그런데 최대의 효율을 따라 선택한 일이 '도둑질'이다. 이는 그가 제대로 배우지 못했음을, 부유하지도 않음을 암시한다. 훔친 물건은 제값을 못 받는다는 걸 알게 되자 고물상 직원이 되려 하지만 '도둑놈을 고용할 생각은 없다'며 단칼에 거절당한다. 좌절로 범벅된 그때 특종 사건을 포착해 팔아넘기는 촬영기사 '나이트크롤러'를 마주한다. 비릿한 돈 냄새가 루를 휘감는다. 캠코더와 경찰 무전 도청기를 마련해 본격적인 특종 사냥에 나선다.
▲ 나이트크롤러 스틸컷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그림이 되는 거. 내 뉴스에 띄우고 싶은 건 여자가 악쓰며 도망가는 장면이에요. 그것도 목에서 피가 나면서요".
루는 거래처 방송국 보도국장 니나(르네 루소)의 말에 따라 자극적인 장면을 연신 찍어낸다. 사고 현장을 독점하기 위해 과속은 기본, 피해자 집에 무단 침입도 거리낌 없다. '그림'이 되는 장면을 위해 피투성이 환자를 길바닥에 질질 끄는 모습은 경악스럽기에 그지없다. 그의 질주는 살인강도를 목격하면서 극에 달한다. '사람 많은 그럴듯한 장소'에서의 피 튀기는 장면이 필요했던 루는 피의자 목격 사실을 은폐한다. 루의 덫에 걸린 시민과 경찰은 범인에게 총격을 입어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당한다.
루는 자신을 '샌 페르난도 밸리' 출신이라 소개한다. 이곳은 첨단 산업 지구로 여러 방송국, 영화사와 함께 경찰서, 법원 등 관청이 밀집한 곳이다. "가끔 가긴 하나 아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에서 실제가 아닌 포장에 불과함을 유추할 수 있다. 루의 말이 어디부터 사실이고 어디까지 거짓말인지 도통 헤아릴 수 없다. 그는 영화 내내 크고 작은 거짓말을 쏟아낸다. 신뢰를 얻기 위해, 궁지에서 탈출하기 위해 교묘하고 그럴듯한 거짓을 잘도 꾸며낸다. 한 치의 떨림도 없는 눈은 그의 위장을 돕는다.
▲ 나이트크롤러 스틸컷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이익과 효율을 중시하는 소시오패스는 협상에 능하고 모든 것에 계산적이다. 상대의 필요를 미끼로 삼고 반응을 보이면 약점을 공략해 설득에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하고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이는 '가스라이팅'의 전형이기도 하다. 단 몇 마디만으로 조수 릭(리즈 아메드)을 파악해 단물을 쪽쪽 빨아먹는다. 또 루는 성욕을 풀 대상으로 보도국장 니나를 점찍는다. 초반엔 외모 칭찬 등 일반적인 방법으로 접근하지만 넘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약점을 공격한다. 니나는 점점 궁지로 몰리다 거대한 '특종'으로 루에게 항복한다.
'공감: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해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루의 이 능력이 바닥을 친다. 타 촬영업체 사장 조 로더(빌 팩스톤)와의 경쟁에서 밀리자 그의 차에 결함을 만들어 반 죽게 만든다. 같은 처지니 찍지 말자는 릭의 제지에도 "이젠 아니지. 우린 프로야. 그는 상품이고"라며 번뜩이는 눈으로 피투성이 얼굴을 촬영한다.
싫어했던 사람이라 그랬을까? 조력자에게도 마찬가지다. 그간 순종적이던 릭이 자기 권리를 요구한다. 더 이상 빼먹을 단물이 없음을 인지한 루는 그를 죽음에 내몬다. 죽어가는 모습을 덤덤히 찍어 특종을 완성한다. 동료를 잃은 슬픔이란 눈곱만큼도 없다. 그 자리엔 피비린내 전 웃음이 대신한다.
▲ 나이트크롤러 스틸컷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2009년 방송된 '지식채널e 소시오패스'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4%, 즉 25명 중 1명은 소시오패스라고 한다. 성공이 우선시되는 현대 사회에서 당연한 수치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에서도 '루'만이 소시오패스는 아니다. 보도국장 '니나'에게서도 비슷한 양상이 보인다. 피가 범벅인 영상에 편집국장 프랭크는 인상을 찌푸린다. 방송 윤리에 어긋난다며 내보내지 말자고 건의하나 '시청률'을 높이는 데 혈안이 된 니나는 법적인 문제만 없다면 상관없다며 잔인한 영상을 여과 없이 송출한다. 니나는 계약 갱신에 성공해 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게 중요하다. 적어도 여기까진 공적인 부분이었다. 사적인 부분에 대해선 선을 긋던 그가 계속되는 루의 성공적인 행보에 그마저도 내어준다. 산산조각 난 양심. 완전한 소시오패스가 된다. 범죄를 규명할 증거를 방송국의 재산이라며 꽁꽁 싸매고, 진실을 은폐하기에 이른다.
"30분짜리 텔레비전 뉴스에는 정부 관련 뉴스, 즉 단속, 예산, 교통, 교육, 이민 등이 22초간 나가는 반면 범죄 사건은 톱뉴스로 5분 7초나 나가요. 14배에 달하죠."
범죄 뉴스의 비중을 들먹이며 자기 영상의 가치를 증명하는 루의 말이다. 언론은 시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공중파의 경우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니 더더욱 시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전체 뉴스에서 1/14밖에 안 된다. 시청률 높이기에 급급해 자극적인 내용으로 도배된 언론 현실을 날카로이 꼬집었다. 심지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은폐하는 모습도 그리 낯설지 않다.
니나는 루에게 "부유한 백인이 가난한 소수 민족에게 당한" 뉴스가 가치 있다고 말한다.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빈민가의 범죄는 '시시한' 일로 뉴스거리가 안 된다는 것이다. 빈부에 따라 화제성 너머 목숨값도 달라진다.
▲ 나이트크롤러 스틸컷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세상엔 좋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고개를 들면 나쁜 사람이 우글거린다. 사회는 발전을 원한다. 경쟁을 부추기고 승자를 반긴다. 루와 릭은 출발선이 비슷하다. 도둑질로 연명하던 루,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릭. 루는 온갖 범법으로 몸값과 명예를 올리며 가속을 밟는다. 규정 속도를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릭은 억울한 죽음에 이른다. 프랭크는 방송 윤리와 양심을 내세우며 니나의 폭주를 막으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쓴소리와 무시다.
니나는 2년 계약직 직원이다. 회사는 계약직으로 효율을 높인다. 높은 성과를 내면 유지, 그렇지 않다면 자르면 그만이다. 니나는 안정적인 생활이 필요하다. 그는 사회의 모순을 받아들이고 그곳에 자신을 맞춘다. 설령 잘못된 방향이라도. 어느 순간 틀에 완전히 맞춰지는데, 타인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괴물의 모습이다.
루는 강도의 추가 살인을 조장했지만, 증거가 없어 풀려난다. 여유로이 선글라스를 낀 그는 경찰차에서 흘러나오는 무전 음에 신난다는 듯 고개를 까딱거린다. 그의 손목엔 영화 초반 경비에게서 훔쳤던 시계가 버젓이 반짝거린다. 밝은 대낮에 당차게 거리를 활보한다. 자동차는 두 대의 밴으로, 릭의 빈자리는 세 명의 새로운 직원으로 더 좋은 '도구'를 마련한 루는 도심 곳곳으로 뻗어나간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 게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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