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풍선 차단 실패, 9.19 군사합의는 효력정지...충돌 원하나
[진단] 한반도 긴장감 고조... 유엔사, 남북정전협정 위반 제대로 중재해야
▲ 지난 3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측 초소에서 북한군이 남측을 바라보고 있다. 2024.6.3 ⓒ 연합뉴스
한반도에 다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이 오물 풍선을 남으로 날려보내고 GPS(위성항법장치) 전파 교란 공격을 가하자 우리 정부는 9.19 남북군사합의 전부 효력 정지와 대북 확성기 가동 등으로 맞서는 모양새다. 남북 대화는 물론, 통신연락선 마저 단절된 상태에서 서로를 향한 적대행위가 가중되고 있다.
북한 오물풍선은 명백한 군사 위협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다. 왜 '오물'을 실어보냈을까? 이와 관련해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5월 29일 담화를 통해 "께끈한 오물짝들을 주우면서 그것이 얼마나 기분 더럽고 피곤한가를 체험하게 된다면 국경 지역에서의 살포놀음을 놓고 표현의 자유라는 말을 감히 쉽게 입에 올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힐난했다. 정리하면, 북한인권단체 등이 전단 등을 실어 북으로 날려 보낸 풍선에 대한 보복이란 거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단순한 '오물투척'으로 보기엔 너무도 위험천만하다. 필자는 북한이 단순히 오물을 내려보내 '화풀이'를 했다고 보지 않는다. 이는 심각한 군사 위협이다. 북한은 우리 군의 방공망을 아무런 저항 없이 뚫고 수도권 등에 적게 잡아도 500개가 넘는 '의심 물질'을 투하했다. 우리 국민 누구라도 '저 풍선에 생화학 무기가 실렸다면?' 하고 걱정했을 것이다.
우리 군은 '위험물질' 의심 풍선을 저지하지 못했다
▲ 인천서 발견된 북한 오물 풍선 2일 오전 인천시 미추홀구 용현동 도로에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이 떨어져 있다. 2024.6.2 [인천소방본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연합뉴스
이런 엄중한 사건에 우리 군의 초기 대응은 어떠했나. 어떻게 우리 방공망을 뚫고 북한의 풍선이 내려올 수 있었나.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5월 30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풍선을 격추하게 되면 낙하하는 힘에 의해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그 안에 위험물이 들어있을 수 있다. 그것이 오히려 확산되면 더 회수가 어려워진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발언이다. '풍선에 위험물이 들어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음에도, 전방에서 '의도적으로' 격추하지 않고, 풍선에 실렸을 가능성이 있는 위험물질이 서울에 투척 될 때까지 기다렸다는 말인가? 필자는 북한의 풍선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이 매우 안일했다고 평가한다.
풍선 격추가 남북간 또 다른 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따는 우리 군의 지적은 타당하다. 하지만 총기로만 북한의 풍선을 격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군이 총기 격추 외에 대응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윤 정부는 이번 오물 풍선 남하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고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
윤 정부의 9.19 남북군사합의 전부 효력 정지, 충돌 원하나?
북한의 오물 풍선 남하를 저지하지 못한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9.19 남북군사합의 전부 효력을 정지하는 것이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6월 4일 국무회의를 통해 '남북한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9.19 남북군사합의 '전부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의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곧바로 이를 재가했다.
'9·19 남북군사합의(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서 남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고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도 상대방의 관할구역을 침입 또는 공격하거나 점령하는 행위를 하지 않기"로 합의한 바 있다. 다만, 윤석열 정부는 2023년 11월 이미 9.19 남북군사합의의 일부 효력을 정지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북한의 위험천만한 풍선 남하를 저지하지 못한 윤 정부가 9.19 군사합의의 준수를 북한에 요구하진 못할망정 그나마 남아 있던 안전장치를 스스로 해제해버렸다는 점이다. 9.19 군사합의가 효력을 발휘했다면 북한의 오물 풍선도, GPS 교란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윤석열 정부는 남북 접경지대에서 군사적 안전장치를 스스로 해체해버린 셈이 됐다. 이제는 언제라도 남북의 물리적 충돌이 가능한 위험천만한 상황이 한반도에서 펼쳐지고 있다.
▲ 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4.6.4 ⓒ 연합뉴스
유엔사, 남북의 정전협정 위반을 방치할 것인가?
더 큰 문제는 윤 정부의 9.19 군사합의 전부 효력 정지가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런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은 한반도에서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하기 위해 "쌍방은 모두 비무장지대 내에서 또는 비무장지대로부터, 비무장지대에 향하여 어떠한 적대행위도 감행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 정전협정이 규정하고 있는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 행동의 완전한 정지"는 남북이 '비무장지대'를 '무장화'하면서 무력화됐다. 9.19 남북군사합의가 체결되기 전까지 말이다. 이런 이유로 9·19 남북군사합의는 정전협정과 함께 작동하고 있다.
9.19 군사합의가 정전협정에서 규정한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 행동의 완전한 정지' 조항을 되살린 상황에서, 이제 9.19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 내지 폐기는 정전협정 위반과 직결되는 문제가 됐다(관련 기사: 이상하다, 왜 군사합의 일부만 효력 정지했을까, https://omn.kr/26iy7 ). 지난해 윤 정부가 9.19 군사합의를 폐기하려다가 일부의 효력만을 정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유엔군사령부(유엔사)가 이 문제에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놔야 한다. 다행히 유엔사는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가 정전협정 위반'이라며 공식 조사를 진행하고 중립국감독위원회 또한 참관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사는 최근 발생한 남북의 정전협정 위반 행위에 책임 있는 자세로 중재에 나서야 한다. 또한, 9.19 남북군사합의를 무력화하려는 남북의 어떤 행동도 정전협정 위반에 준해 대응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정일영씨는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으로, <한반도 오디세이>, <한반도 스케치北>,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등 집필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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