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잡을 데 없는 괴수물의 한 가지 단점
[리뷰] 영화 <고질라 마이너스 원>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카미카제 파일럿으로 출격한 '시키시마'(카미키 류노스케). 그는 살아남으라는 부모님의 애원에 명령을 지키는 대신 오오도 섬에 비상착륙하지만, 바로 그날 고질라가 섬을 습격한다. 그나마 전투기에 달린 기관총이 유일한 희망인 상황. 그러나 시키시마는 두려움에 빠진 나머지 끝내 사격하지 못하고, 종전 후 일본으로 귀국하는 순간까지 전우를 지키기 못한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고향에 돌아온 후 '노리코'(하마베 미나미)를 만나 새로운 가족을 꾸린 시키시마. 돈이 부족한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 동안 설치된 기뢰를 제거하는 일에 자원하고, 새로운 동료 '아키츠'(사사키 쿠라노스케), '노다'(요시오카 히데타카), '미즈시마'(야마다 유키)를 만난다.
그러던 어느 날, 시키시마와 동료들은 파괴되어 뒤집힌 전함을 목격하고, 곧이어 방사능 때문에 더 거대해진 고질라를 조우한다. 이에 시키시마는 결심한다. 고질라를 죽이고, 지긋지긋한 트라우마를 끊어내겠다고.
준수한 첫인상, 찝찝한 뒷맛
한국에서 가장 찬밥 대우받는 영화 장르를 하나 꼽으라면 당연 괴수물이다. 마찬가지로 인기가 없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보다도 심하다. 그나마 스페이스 오페라는 꾸준히 관객을 불러 모으고 관심을 환기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으니까. MCU와 결합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듄> 시리즈, 이정재가 출연한 디즈니+ <에콜라이트> 등.
그에 반해 괴수물은 반등 포인트조차 잡지 못하는 중이다. 봉준호의 <괴물>, 피터 잭슨의 <킹콩>, 길예르모 델 토로의 <퍼시픽 림> 정도를 제외하면 유의미한 흥행 성적을 낸 경우가 많지 않다. 이름값으로는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을 <고질라> 시리즈도 예외는 아니다. 할리우드가 만든 몬스터버스의 <고질라> 시리즈만 해도 최근에는 100만 관객 돌파도 버거워한다.
그래서일까? 고질라 시리즈 70주년 기념작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국내 개봉 소식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다.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시각효과상을 받고, 북미에서만 5642만 달러를 벌며 역대 북미 개봉 비영어권 작품 사상 3위의 흥행을 기록했는데도.
그 <고질라 마이너스 원>이 6월 1일에 느닷없이 한국에 상륙했다. 넷플릭스를 통해 접한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첫인상은 기대 이상이었다. 괴수물로서의 매력은 출중했다. 괴수물이 흔히 간과하는 인간 캐릭터의 스토리도 몬스터버스가 배워야 할 정도로 탄탄했다. 하지만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뒷맛은 그리 개운하지가 않다. 일본이 전범국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태도가 의심을 자꾸 키우기 때문이다.
괴수물로서는 합격
괴수물로서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합격점을 주고도 남는다. 물론 기술적인 부분은 아쉬움이 없지 않다.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수상작이라기에는 어색한 CG가 종종 보인다. 일례로 긴자 습격 장면에서는 고질라가 배경과 분리되는 듯한 부자연스러움이 숨겨지지 않는다. 또 고질라가 방사열선을 내뿜기 전에 등지느러미가 발광하면서 돌출될 때도 미니어처를 조종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고질라의 외형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할리우드 표 고질라는 동물의 움직임을 본 딴 모델링을 토대로 움직임을 구현했다. 반면에 이번 고질라는 특촬물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인지는 두 발로 직립 보행한다. 할리우드의 자연스러운 CG를 선호하느냐, 아니면 일본의 고질라 시리즈를 오마주 했다고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일 지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어색한 CG는 금세 잊힌다. 비록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등장할 때마다 고질라의 분위기가 압도적이기 때문. 오오도 섬에서의 첫 조우, 긴자 습격 시퀀스, 바다에서의 마지막 결전까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꺾을 수 없는 괴수의 아우라를 제대로 각인시킨다. 가렛 에드워즈의 <고질라(2014)>처럼 아포칼립스적인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또 고질라가 방사열선을 쏜 후 열폭풍과 검은 비가 이어지는 연출도 인상적이다. 어찌 보면 가장 고질라스럽다. 본래 고질라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과 비키니섬 핵실험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존재니까. 모든 <고질라> 시리즈가 핵을 비롯해 인류가 개발한 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실제 핵폭발을 보는 듯한 경험은 이 메시지에 다시 한번 힘을 더해준다.
드라마는 기대 이상
인간 캐릭터들의 서사도 기대 이상이다. 보통 괴수물에서는 인간 캐릭터가 잘 안 보인다. 괴수와 인간을 이어 줄 관계성을 부여하는 데 실패하기 때문. 액션을 보는 쾌감만 남는 반쪽짜리 영화인 경우가 잦은 이유다.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다르다. 고질라 그 자체보다는 고질라라는 자연 현상을 주인공이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 덕분에 물리적으로는 대적할 수 없는 괴수와 인간 사이에 갈등 구도가 만들어진다.
카미카제 파일럿 시키시마는 비상착륙한 오오도 섬에서 고질라를 만난 뒤 간신히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는 기뻐하지 않는다. 두려움에 빠져 전투기 기관총 한 번 쏘지 못하는 사이 다른 일본군들이 고질라에게 무참히 학살당했기 때문. 일본에 돌아온 후에도 고질라는 시키시마를 괴롭힌다. 간신히 새로운 가족과 함께 일상을 재건하지만, 이내 일본에 상륙한 고질라 때문에 그는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
즉, 시키시마에게 고질라는 좀처럼 떨치지 못하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PTSD를 형상화한 존재다. 따라서 <고질라 마이너스 원>에는 고질라의 액션을 즐기는 단순한 쾌감 대신 아직 끝나지 않은 자기만의 전쟁을 시키시마가 어떻게 끝내는지 지켜보는 맛이 있다. 다만 후반부 전개는 물음표다. 죽은 아내가 살아 돌아오는 전개처럼 해피엔딩을 위해 부자연스러운 신파를 남발하기 때문.
극우는 아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흠잡을 데 없는 괴수물이다. 하지만 한 가지 단점이 영화 전체의 인상을 불편하게 만든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의 일본이 배경인데도 의도적으로 생략하는 지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품이 극우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일본군과 정부에 대한 불신과 비판을 드러내면서 군국주의를 비난하고 반전주의, 생명 존중 사상을 강조한다.
전쟁이 조금 더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미즈시마의 말에 시키시마가 멱살을 잡을 정도로 분노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군부나 정치인의 입장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관점에서 전쟁을 조명하며 시키시마의 이야기에 힘을 더한다. 일본군은 카미카제처럼 생명을 경시해 왔지만 고질라와의 전투에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노다 박사의 대사, 전쟁 중과는 달리 전투기에 낙하산과 탈출 장치를 달아주는 정비대 모습 등등.
고질라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불길한 암시가 엔딩을 장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을 사로잡은 군국주의 광기가 언제든 고질라처럼 부활할 수 있으니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그러지 못하면 카미카제나 옥쇄처럼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를 전쟁 이후 세대도 살아가야 할 테니까.
시대극으로서는 불합격
하지만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마지막까지 근본적인 문제점을 회피한다. 영화는 일본 군부와 민간인을 철저히 분리한다. 도쿄 대공습으로 고통받은 민간인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역사적 책임을 슬그머니 감춘다. 당연히 설득력은 없다. 일본 제국은 식민지 주민까지 징병, 징용한 군국주의 국가였으니까. 고질라 격퇴 작전을 입안한 노다 박사만 해도 일본 해군 소속으로 무기를 개발했는데, 그를 평범한 민간인으로 볼 수는 없다.
그 결과 영화 자체가 피해자 코스프레처럼 보일 여지가 충분하다. 제목부터가 그렇다. '고질라 마이너스 원'이라는 제목은 전쟁 때문에 일본이 제로(0)가 된 상태에서, 고질라가 등장해서 -1이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일본이 태평양 전쟁의 가해자라는 걸 고려하면, 피해자의 관점에서 고질라의 습격은 그저 합당한 처벌일지도 모른다. 도쿄대공습을 당하고 원자폭탄을 맞은 게 자업자득이듯이.
그러나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전쟁 이후 일본인의 집단적 트라우마만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맥락과 시점을 철저히 외면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해피엔딩은, 특히 과거 식민지 사람 입장에서, 그리 와닿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일본의 과거사와 절대 떼 놓을 수 없는, 고질라라는 복어를 제대로 요리할 용기까지는 <고질라 마이너스 원>에게 없었던 셈이다.
카미카제 파일럿으로 출격한 '시키시마'(카미키 류노스케). 그는 살아남으라는 부모님의 애원에 명령을 지키는 대신 오오도 섬에 비상착륙하지만, 바로 그날 고질라가 섬을 습격한다. 그나마 전투기에 달린 기관총이 유일한 희망인 상황. 그러나 시키시마는 두려움에 빠진 나머지 끝내 사격하지 못하고, 종전 후 일본으로 귀국하는 순간까지 전우를 지키기 못한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시키시마와 동료들은 파괴되어 뒤집힌 전함을 목격하고, 곧이어 방사능 때문에 더 거대해진 고질라를 조우한다. 이에 시키시마는 결심한다. 고질라를 죽이고, 지긋지긋한 트라우마를 끊어내겠다고.
준수한 첫인상, 찝찝한 뒷맛
▲ 넷플릭스 <고질라 마이너스 원> 관련 이미지. ⓒ 넷플릭스
한국에서 가장 찬밥 대우받는 영화 장르를 하나 꼽으라면 당연 괴수물이다. 마찬가지로 인기가 없는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보다도 심하다. 그나마 스페이스 오페라는 꾸준히 관객을 불러 모으고 관심을 환기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으니까. MCU와 결합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듄> 시리즈, 이정재가 출연한 디즈니+ <에콜라이트> 등.
그에 반해 괴수물은 반등 포인트조차 잡지 못하는 중이다. 봉준호의 <괴물>, 피터 잭슨의 <킹콩>, 길예르모 델 토로의 <퍼시픽 림> 정도를 제외하면 유의미한 흥행 성적을 낸 경우가 많지 않다. 이름값으로는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을 <고질라> 시리즈도 예외는 아니다. 할리우드가 만든 몬스터버스의 <고질라> 시리즈만 해도 최근에는 100만 관객 돌파도 버거워한다.
그래서일까? 고질라 시리즈 70주년 기념작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국내 개봉 소식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다.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시각효과상을 받고, 북미에서만 5642만 달러를 벌며 역대 북미 개봉 비영어권 작품 사상 3위의 흥행을 기록했는데도.
그 <고질라 마이너스 원>이 6월 1일에 느닷없이 한국에 상륙했다. 넷플릭스를 통해 접한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첫인상은 기대 이상이었다. 괴수물로서의 매력은 출중했다. 괴수물이 흔히 간과하는 인간 캐릭터의 스토리도 몬스터버스가 배워야 할 정도로 탄탄했다. 하지만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뒷맛은 그리 개운하지가 않다. 일본이 전범국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태도가 의심을 자꾸 키우기 때문이다.
괴수물로서는 합격
괴수물로서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합격점을 주고도 남는다. 물론 기술적인 부분은 아쉬움이 없지 않다.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수상작이라기에는 어색한 CG가 종종 보인다. 일례로 긴자 습격 장면에서는 고질라가 배경과 분리되는 듯한 부자연스러움이 숨겨지지 않는다. 또 고질라가 방사열선을 내뿜기 전에 등지느러미가 발광하면서 돌출될 때도 미니어처를 조종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고질라의 외형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할리우드 표 고질라는 동물의 움직임을 본 딴 모델링을 토대로 움직임을 구현했다. 반면에 이번 고질라는 특촬물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인지는 두 발로 직립 보행한다. 할리우드의 자연스러운 CG를 선호하느냐, 아니면 일본의 고질라 시리즈를 오마주 했다고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일 지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어색한 CG는 금세 잊힌다. 비록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등장할 때마다 고질라의 분위기가 압도적이기 때문. 오오도 섬에서의 첫 조우, 긴자 습격 시퀀스, 바다에서의 마지막 결전까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꺾을 수 없는 괴수의 아우라를 제대로 각인시킨다. 가렛 에드워즈의 <고질라(2014)>처럼 아포칼립스적인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또 고질라가 방사열선을 쏜 후 열폭풍과 검은 비가 이어지는 연출도 인상적이다. 어찌 보면 가장 고질라스럽다. 본래 고질라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과 비키니섬 핵실험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존재니까. 모든 <고질라> 시리즈가 핵을 비롯해 인류가 개발한 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실제 핵폭발을 보는 듯한 경험은 이 메시지에 다시 한번 힘을 더해준다.
드라마는 기대 이상
▲ 넷플릭스 <고질라 마이너스 원> 관련 이미지. ⓒ 넷플릭스
인간 캐릭터들의 서사도 기대 이상이다. 보통 괴수물에서는 인간 캐릭터가 잘 안 보인다. 괴수와 인간을 이어 줄 관계성을 부여하는 데 실패하기 때문. 액션을 보는 쾌감만 남는 반쪽짜리 영화인 경우가 잦은 이유다.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다르다. 고질라 그 자체보다는 고질라라는 자연 현상을 주인공이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 덕분에 물리적으로는 대적할 수 없는 괴수와 인간 사이에 갈등 구도가 만들어진다.
카미카제 파일럿 시키시마는 비상착륙한 오오도 섬에서 고질라를 만난 뒤 간신히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는 기뻐하지 않는다. 두려움에 빠져 전투기 기관총 한 번 쏘지 못하는 사이 다른 일본군들이 고질라에게 무참히 학살당했기 때문. 일본에 돌아온 후에도 고질라는 시키시마를 괴롭힌다. 간신히 새로운 가족과 함께 일상을 재건하지만, 이내 일본에 상륙한 고질라 때문에 그는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
즉, 시키시마에게 고질라는 좀처럼 떨치지 못하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PTSD를 형상화한 존재다. 따라서 <고질라 마이너스 원>에는 고질라의 액션을 즐기는 단순한 쾌감 대신 아직 끝나지 않은 자기만의 전쟁을 시키시마가 어떻게 끝내는지 지켜보는 맛이 있다. 다만 후반부 전개는 물음표다. 죽은 아내가 살아 돌아오는 전개처럼 해피엔딩을 위해 부자연스러운 신파를 남발하기 때문.
극우는 아니다
▲ 넷플릭스 <고질라 마이너스 원> 관련 이미지. ⓒ 넷플릭스
여기까지만 보면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흠잡을 데 없는 괴수물이다. 하지만 한 가지 단점이 영화 전체의 인상을 불편하게 만든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의 일본이 배경인데도 의도적으로 생략하는 지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품이 극우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일본군과 정부에 대한 불신과 비판을 드러내면서 군국주의를 비난하고 반전주의, 생명 존중 사상을 강조한다.
전쟁이 조금 더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미즈시마의 말에 시키시마가 멱살을 잡을 정도로 분노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군부나 정치인의 입장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관점에서 전쟁을 조명하며 시키시마의 이야기에 힘을 더한다. 일본군은 카미카제처럼 생명을 경시해 왔지만 고질라와의 전투에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노다 박사의 대사, 전쟁 중과는 달리 전투기에 낙하산과 탈출 장치를 달아주는 정비대 모습 등등.
고질라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불길한 암시가 엔딩을 장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을 사로잡은 군국주의 광기가 언제든 고질라처럼 부활할 수 있으니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그러지 못하면 카미카제나 옥쇄처럼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를 전쟁 이후 세대도 살아가야 할 테니까.
시대극으로서는 불합격
하지만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마지막까지 근본적인 문제점을 회피한다. 영화는 일본 군부와 민간인을 철저히 분리한다. 도쿄 대공습으로 고통받은 민간인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역사적 책임을 슬그머니 감춘다. 당연히 설득력은 없다. 일본 제국은 식민지 주민까지 징병, 징용한 군국주의 국가였으니까. 고질라 격퇴 작전을 입안한 노다 박사만 해도 일본 해군 소속으로 무기를 개발했는데, 그를 평범한 민간인으로 볼 수는 없다.
그 결과 영화 자체가 피해자 코스프레처럼 보일 여지가 충분하다. 제목부터가 그렇다. '고질라 마이너스 원'이라는 제목은 전쟁 때문에 일본이 제로(0)가 된 상태에서, 고질라가 등장해서 -1이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일본이 태평양 전쟁의 가해자라는 걸 고려하면, 피해자의 관점에서 고질라의 습격은 그저 합당한 처벌일지도 모른다. 도쿄대공습을 당하고 원자폭탄을 맞은 게 자업자득이듯이.
그러나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전쟁 이후 일본인의 집단적 트라우마만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맥락과 시점을 철저히 외면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질라 마이너스 원>의 해피엔딩은, 특히 과거 식민지 사람 입장에서, 그리 와닿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일본의 과거사와 절대 떼 놓을 수 없는, 고질라라는 복어를 제대로 요리할 용기까지는 <고질라 마이너스 원>에게 없었던 셈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potter1113)와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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