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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금성관에서 작은 궁궐을 상상해 봅니다

11일까지 전라남도 국제사격장, 제4회 홍범도장군배 전국사격대회 개최

등록|2024.06.08 14:51 수정|2024.06.13 16:58
 

▲ 나주객사 금성관을 옛날 지도 처럼 그렸다. 원근법을 무시하고 중요한 정보만 담는다. ⓒ 오창환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나주시 전라남도 국제사격장에서 제4회 홍범도장군배 전국사격대회가 열리고 있다. 홍범도장군 기념사업회에서 발간하는 소식지 표지 작가로 행사장을 찾았다. 사격대회는 5일부터 시작이지만 하루 전에 오프닝 행사가 있어서 4일에 나주로 향했다. 아침 6시에 KTX 행신역에서 출발해서 나주역에 도착하니 아직 8시 38분이다.

나주는 평야와 포구가 있어 예로부터 살기 좋은 고장이었고 고대 왕국 마한의 터전이었다. 후삼국 시대에 궁예의 장수였던 왕건이 수군을 이끌고 나주를 점령하고 통일의 발판을 마련한 이후로 나주는 그의 주요한 정치적 기반이었다.

나주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내내 전라도의 주요 도시이자 해상 교통의 중심지였으며 일본 식민지 시대에는 우리나라의 물자를 수탈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철도와 도로가 놓이면서 육상 교통은 중심은 광주가, 해상 교통의 중심은 목포가 되면서 나주가 좀 애매한 위치가 되기는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나주 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나주는 예로부터 작은 한양이라 불렸다. 배산임수로 금성산을 뒤로하고 영산강이 앞으로 흐른다. 읍성을 둘러싼 성벽이 있으며, 동서남북에 4대 문이 있다. 그러니 한양에 가기 힘든 남도 사람들은 나주읍성에 와보고 한양을 상상했다.
 

▲ 나주객사 금성관과 양익헌이 보인다. 우익헌이 좌익헌 보다 크다. 금성관은 수리가 시급해 보인다. ⓒ 오창환


그 중심에 나주 객사(客舍)가 있는데, 객사 중앙에는 작은 궁궐인 금성관(錦城館)이 있어서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린다.

금성관 현판은 원교 이광사의 글씨로 알려져 있는데 공적인 건물의 현판을 초서체로 쓰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금성관과 양쪽으로 동익헌(東翼軒)과 서익헌(西翼軒)이 있는데 외국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이 나주에 머물 때 사용하던 숙소였다. 전봉준 장군이 나주 목사와 담판을 지으러 왔을 때도 이 객사에 묵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나주 군청 건물로 사용해 오면서 원형이 파괴되었던 것을 지속적인 발굴과 복원으로 원형을 많이 찾았다.

궁궐 상상하기 좋은 곳

나주 객사의 출입문인 망화루(望華樓)를 거쳐 중삼문(中三門)을 지나면 금성관과 양익헌( 동익헌과 서익헌)이 보인다. 금성관의 규모가 생각보다 엄청 크다. 넓은 공간에 아름드리 나무, 그리고 한쪽에 모여있는 비석들, 모두 잘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이 공간의 중심 건물인 금성관이 너무 낡았다. 새로 복원한 양익헌이 늙은 금성관을 부축하고 있는 것 같다. 금성관 내부는 개방되지 않아서 내가 문틈으로 살짝 봤더니 내부에 지지대를 세워 놓았다. 상태가 그만큼 안 좋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건축 유산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궁궐과 사찰일 텐데... 사찰은 내부에 들어가서 살펴볼 수 있지만 임금이 계시던 궁궐에는 들어가서 볼 수 없고 밖에서 봐야 한다.

금성관은 궁궐은 아니지만 궁궐에 준하는 곳이니, 잘 복원해서 내부에서 살펴볼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다. 옛날에 작은 한양인 나주에 와서 한양을 상상하듯 소궁궐인 금성관에 와서 궁궐을 상상하면 좋을 것 같다.

나주 객사가 바로 앞에 카페가 있어서 카페 2층에서 객사를 내려다보고 스케치했다. 요즘 우리나라 옛 지도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어서, 금성관을  옛날 지도처럼 그렸다. 원근법을 약간 무시하고 지붕기와를 수직선으로 그렸다. 나주 객사는 명성에 비해 관람객이 너무 적다. 금성관도 수리하고 더 많은 관람객이 오라고 사람도 많이 그려 넣었다.

객사 바로 앞에 유명한 나주 국밥집들이 몰려 있어서 국밥을 한 그릇 먹고 행사장으로 갔다.
 

▲ 위는 50M 화약총 경기 장면. 아래 왼쪽은 경기에 사용되는 5.5mm구경 실탄이다. 작아도 엄연한 실탄이라 개인적으로 소지할 수 없다. 아래 오른쪽은 경기중 이상이 생긴 총기를 즉석에서 수리하는 장면이다. ⓒ 오창환



다음날 아침 사격대회를 보러 전라남도 국제 사격장으로 갔다. 이번 대회는 국가대표 선발전 및 대한 사격연맹 공인대회 승격기념 경기로, 작년 춘천 경기에 비해 질적인 면이나 양적인 면에서 엄청난 발전이 있었다.

작년 춘천 경기가 총 364명이 참가한데 반해 올해는 무려 2646명이 참가하는 큰 경기가 되었다. 작년에는 주로 공기총 종목 경기였던데 반해 올해는 거의 전 종목의 경기가 치러진다.

50m와 25m 화약총 종목을 가서 보니 총소리와 매캐한 화약 냄새로 경기가 실감나고 박진감 넘친다. 야외에서 하는 클레이 사격 경기를 하고 있었는데 총알을 장전하고 대기했다가 총을 쏘고 또 탄피를 버리는 동작이 참 절도 있고 멋지다. 클레이 사격은 일반인들도 좋아하는 종목이라고 한다. 클레이 사격하는 선수의 포스 넘치는 동작을 그렸다.

(나주 사격대회 여행 2편으로 이어집니다)
 

▲ 클레이 사격 장면을 그리고 경기 포스터로 만들어 봤다. 클레이 사격은 산탄총을 사용하기 때문에 총알이 퍼져서 발사된다. ⓒ 오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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