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10년 전도, 지금도 최저임금… 불안한 노후에 갑갑"

[최저임금 여성노동자로 살아가는 이야기 ①] 3인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요양보호사 이명숙씨

등록|2024.06.11 09:29 수정|2024.06.11 10:40
최저임금의 시간이 돌아왔다. 최저임금위원회는 5월 21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2025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논의를 본격화했다. 최저임금제도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 안정을 목적으로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데 기여할 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임금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BR> <BR>이처럼 최저임금이 본래의 취지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저임금을 받아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최저임금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노인돌봄, 마트, 학교비정규직, 콜센터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를 만나 일과 생활, 노후(미래) 준비, 최저임금의 적절성, 본인의 노동가치에 대한 보상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BR> <BR>이들은 올해 최저임금이 2.5% 올랐지만 물가 폭등으로 실질임금이 하락해 생활이 점점 어려워진다고 하소연했다. 일상생활에서 포기하는 것도 많았다. 이들이 숨통을 좀 트고 살아가려면 최저임금은어떻게 결정돼야 할까. 실제 물가 인상률을 반영하고 가구 생계비를 기준으로 생활임금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의 일과 삶의 이야기를 통해 최저임금이 갖는 의미를 짚어보려 한다. [기자말]

요양보호사 이명숙씨(가명, 56세)지난 5월 26일 경기도 기초자치단체의 한 시립요양원에서 일하는 명숙씨를 만나 최저임금 여성노동자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 서비스연맹


이명숙(가명, 56세)씨는 경기도 기초자치단체의 시립요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다. 2012년 9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곧바로 요양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23살에 결혼하고 아이 둘을 키우면서 전업주부로 살던 명숙씨가 일을 시작한 것은 가정경제가 어려워지면서다. 남편의 사업이 잘 안돼 빚을 지게 됐다. 당시 50대 중반이었던 남편은 사업을 접고 나서 재취업이 어려웠다.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해 한참 돈이 많이 들 시기라 어쩔 수 없이 생업 전선에 나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생활을 했던 '경력단절여성' 명숙씨, 고민 끝에 요양보호사를 선택했다.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도입돼 이듬해부터 자격시험을 봤기 때문에 직업 전망이 밝아 보였다. 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노인 돌봄 수요가 늘어나고 정부의 정책도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점은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이 직업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고 지원도 많을 것이라는 거였죠. 내가 건강만 하면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다고 생각도 했죠."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기대는, 현장에 가자마자 산산이 부서졌다. 노인을 돌보는 일은 고됐고, 처우는 열악했고,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동료들에게조차 "이 나이에 왜 여길 왔어요?"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대부분 50대 중반에서 60대였던 동료들은 상대적으로 젊었던 명숙씨에게 왜 더 나은 일자리를 선택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요양보호사들도 자신의 직업에 대한 사회의 낮은 인식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던 셈이다.

처음 민간요양원에서 일했던 명숙씨는 2년이 지나 시립요양원으로 옮겼다. 시에서 운영하면 처우가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 기대도 곧 사라졌다. 시에서 요양병원을 운영하는 의료재단에 위탁을 맡긴 곳이었는데 민간요양원과 처우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립요양원이라고 해서 다를 거라고 희망에 차 들어갔는데 말만 시립이지, 실질적인 대우나 월급은 차이가 없었어요. 사설요양원과 똑같았어요."

"식비가 최저임금 월급의 절반… 적금은 엄두도 못내"
  

최저임금 노동자로 살아가는 어려움노인돌봄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글로 표현하고 있다. ⓒ 서비스연맹


그래도 명숙씨는 요양보호사로 오래 일하고 싶다. 물론 생계 유지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어르신을 보살피는 일이 보람 있어서다.

"어르신을 보살펴주는 일의 만족도는 굉장히 높아요. 제가 어르신들을 좋아하는구나, 천직이구나 이런 생각을 해요. 다만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이 너무 낮아요."

명숙씨는 돌봄의 가치에 비해 사회적 인식과 임금이 낮은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제가 여기서 일한 지 딱 10년이 됐는데 그때도 최저임금이었어요. 첫사랑이 기억에 남듯이 첫 월급이라 기억에 남는데 120만 원 정도였어요. 그런데 지금도 최저임금을 벗어나질 못했어요. 10년을 일해도 경력 인정을 받지도 못해요."

명숙씨는 3인 가족의 생계 부양자다. 남편은 장기 실직자이지만 정년퇴임을 할 나이를 훌쩍 넘겨 은퇴자나 다름없다. 함께 사는 딸은 진로변경을 위해 학원을 다녀서 벌이가 없다. 아들은 좁은 빌라에서 같이 살기 힘들어 원룸을 얻어줬다.

그렇다 보니 한 달 살기가 빠듯하다.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인데 세금 제하고 나면 200만 원에도 못 미쳐요. 제일 많이 나가는 게 식비예요. 3인 가족이다 보니까 100만 원 정도는 지출하는 것 같아요. 또 아무리 없어도 '보험은 필요하다'는 신조여서 보험료 지출이 한 40만 원 돼요."

그래서 다른 지출은 최대한 줄일 수밖에 없다는 명숙씨, 높은 물가에 시장 가기가 무섭다.

"시장 가면 정말 (물건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몇 번이나 고민하고 장바구니에 넣어요. 좋아하는 과일은 못 사 먹고, 백화점 가는 것, 브랜드 옷은 꿈도 못 꿔요."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허리, 어깨를 무리하게 쓰다 보니 물리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못하다. 그런데 한 달에 몇 만 원 지출하는 병원비도 부담스럽기만 하다.

명숙씨의 월급으로 오롯이 한 달을 살기에 "적금은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우리는 베이비부머 세대잖아요.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도 없고 그렇다고 축적해 놓은 적금도 없어 갑갑한 상황이죠. 100세 인생 시대라서 노후가 더 불안한 것 같아요."

명숙씨가 믿는 것은 국민연금과 건강뿐. 몸이라도 건강해야 시설을 그만둔 뒤에 재가 요양보호사로라도 계속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딱 정년까지만 일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었거든요. 근데 그건 진짜 꿈에 불과한 거고 최대한 일할 수밖에 없어요. 부끄럽지만 노후 준비는 '0'점이거든요."

"AI나 로봇으로 대체 불가 '돌봄' … 가치에 걸맞은 대우 해줬으면"
  

요양보호사의 손명숙씨는 자신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과 긍지만큼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또한 돌봄의 가치를 존중하는 만큼 요양보호사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 서비스연맹


명숙씨는 자신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과 긍지만큼,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또한 돌봄의 가치를 존중하는 만큼, 요양보호사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으면 좋겠다.

"초고령화 시대에 돌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좀 높아지고 열악한 처우가 개선돼야 합니다. 코로나 시기 3년을 거치며 필수노동자라는 게 입증됐듯, 거기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어 명숙씨는 "인력난이 심하다고 해서 AI나 로봇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게 돌봄노동이다. 감정노동을 하기 때문에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돌봄노동의 중요성을 짚었다.

"최저임금이 얼마가 되면 적절할까"라는 물음에 한참을 고심한 명숙씨는 "최저임금이 1인 한 달 생활비(비혼 단신 근로자 실태생계비) 평균 246만 원보다 높아야 하지 않나. 최저임금을 받아 3, 4인 가족이 생계를 유지하니까 생활임금 수준은 돼야 한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270만 원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명숙씨는 윤석열 정부가 시도하는 돌봄업종에 대한 차등 적용에 대해서도 말했다.

"돌봄에 대해 차등 적용하겠다고 해서 지금 난리잖아요. 그게 말이나 돼요. 현대판 노예제도 아닌가요?"

명숙씨는 돌봄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야 젊은 사람들이 찾는 일터, 지속가능한 돌봄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돌봄 노동현장이 이렇게 열악한 상황인데 젊은이들이 일하려고 하겠어요?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우리 요양보호사를 위한 임금 가이드라인을 제도화 해야 합니다. 저는 정말 돌보는 일에 만족하는데 거기에 대한 가치나 대우를 제대로 보장해 줬으면 합니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 반대! 돌봄노동자들이 지난 5월 1일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최저임금 차등 적용 반대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 서비스연맹

 
덧붙이는 글 황경의 기자는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입니다. 이 기사는 <노동과 세계>에도 게재됩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